올해 국정감사의 핫이슈는 사립유치원 비리와 공공기관 채용비리였다. 국회의사당. 박은숙 기자
이번 국정감사 초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사립유치원 비리였다. 이를 주도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겐 전국 각지에서 제보가 끊이질 않았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게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 의혹으로 촉발된 공공기관 채용비리다. 어려운 취업 여건, 그리고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 등이 맞물리면서 메가톤급 이슈로 격상됐다. 이와 관련된 제보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를 위해 만난 의원실 관계자들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례에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친인척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준 것은 그나마 양반이라고 할 정도로 빙산의 일각이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채용비리들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 귀띔했다. 민주평화당 한 의원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믿을 수가 없다. 지금도 밤낮 가리지 않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젊은이들이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한 공공기관 자회사는 지난해 20여 명의 계약직원을 뽑을 때 채용 공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처음부터 내부 직원들에게만 채용 사실을 알려 친인척 또는 지인들로 하여금 원서를 내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채용됐던 직원 중엔 이 자회사 간부의 자녀도 여럿 포함돼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제보 받은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들이 과연 어떤 절차를 거쳐 회사에 입사했을지도 의문이다. 선착순은 아니었나 모르겠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 자회사의 경우 입사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내부 고발자의 폭로가 접수됐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내부 고발자가) 채용 실무를 담당한 전직 직원이어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자회사 복수의 고위 임원들이 입사 시험에 출제될 문제들을 사전에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채용 인원 중 대략 10%가량이 미리 빼돌린 문제지로 시험을 치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면접 과정에서의 채용 비리는 한두 건이 아니다. 면접관에게 내부 직원과 연관이 있는 지원자를 미리 알려줘 편의나 특혜를 주도록 하는 방식이다. 한 기관장은 지인이 낸 원서를 아예 직접 면접관에게 건네준 사례도 드러났다. 자신의 자녀를 대상으로 직접 면접을 본 공공기관 임원도 있었는데, 이 사실이 도마에 올랐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공기관 기관장 출신의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면접을 앞두고는 사방에서 민원이 들어온다. 누가 면접까지 갔는데 한 번 봐달라는 식이다. 들어줘선 안되는 게 맞지만 거절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동료 정치인이나 지역구 유지들이 부탁하면 면접관들에게 귀띔을 해두곤 했다. 솔직히 이를 인맥 유지에 적극 활용하는 기관장들도 적지 않다. 기관장들부터가 다 정치권 낙하산 아니냐. 그리고 면접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험 문제를 빼내거나 이런 것보단 죄의식이 덜하다는 얘기다.”
한 공기업은 지난해 연말 최종 합격한 지원자를 뺀 뒤 친인척을 채용했다는 제보가 여러 건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융감독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해 검찰 수사가 이뤄졌고,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이 공기업에 재직 중인 임원은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한 최고위급 간부의 조카였다. 그는 원서도 내지 않고 공채를 통과했다. 그러나 다들 쉬쉬했다. 공공연하게 관행처럼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이 공기업 입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 사이에선 이 최고위급 간부 조카가 화제였다고 한다. 최소한의 ‘스펙’도 갖추지 않았고, 면접장에서 봤다는 사람조차 없었는데 합격자 명단에 포함된 이후다. 한 수험생은 “그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 일부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심증만 있었지 물증이 없어 흐지부지됐었다. 이번에 채용비리가 불거진 후 이런 내용을 국회에 제보한 이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제보를 받은 의원들은 공공기관 전수조사와 함께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야권이 더욱 강경한 분위기다.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문재인 정부 최대 역점 과제이자 아킬레스건인 일자리 정책의 부작용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공공기관 신규 채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실적을 중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일자리 정책의 가시적 효과를 조기에 내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평화당의 한 중진 의원도 “누군가 부적절하게 채용이 됐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뒷배가 없는 젊은이들은 기회조차 뺏겨버렸다”면서 “검찰에서도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여권에선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원칙론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내부들 들여다보면 곤혹스러워하는 반응이 나온다. 야권의 프레임이 먹힌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한 민주당 친문 의원은 “과거 정권 때부터 이어져왔던 비리일 가능성이 높은데 현 정권 고용 문제와 연관 짓는 것은 억지”라면서 “채용비리에 분노하는 젊은층의 정서를 이용하려는 정치공세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야권에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박근혜 정권 때 있었던 강원랜드와 은행권 채용비리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던 것을 거론하며 쓴소리를 냈다. 앞서의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 정부 때 사례만 거론하자는 게 아니다. 지난 정부 채용비리도 다 까자는 게 야권의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비리도 정치적 유·불리가 있는 것이냐. 사립유치원 비리는 그렇게 목소리를 내더니 왜 채용비리엔 입을 닫고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