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시즌을 앞두고 발표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뜨거운 열기속에 막을 내린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비록 16강에서 탈락했지만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꺾으며 자존심을 지켰다. 독일에 승리하며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킨 한국 축구였지만 유니폼만은 세계 축구 열강과 격을 같이하지 못했다. 브라질, 프랑스, 잉글랜드 등의 유니폼과 재질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월드 클래스’ 공격수 손흥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부는 축구열풍에도 여전히 스폰서 시장은 위축되어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유니폼이 공개되자 일부에선 잡음이 일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수 있는 디자인적인 면을 떠나 유니폼의 소재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도 스포츠 용품사 나이키가 자랑하는 드라이핏(Dri-Fit) 소재가 적용됐지만 이는 잉글랜드 등이 착용하는 ‘베이퍼니트(Vaporknit)’에 비하면 오래된 기술이다.
업계에서는 같은 나이키 제품임에도 대한민국과 잉글랜드 유니폼이 차이를 보인 이유가 ‘시장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월드컵에서 나이키 유니폼을 입은 국가 중 드라이핏 소재가 적용된 나라는 한국, 호주, 사우디 등 아시아 3국이다.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적은 국가다. 다만 지역예선 탈락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한 국가인 중국은 최신 기술이 탑재된 유니폼을 입고 뛴다. 중국은 최근 축구 시장에서 금전적으로 가장 큰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 축구의 시장성은 최근 수년간 내리막을 걸어왔다. 국내 프로축구 무대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더욱 어둡다. 야구계에서 1995년부터 함께한 두산 베어스와 휠라 코리아의 20년이 넘는 우정과 같은 사례는 축구계에서 더 이상 보기 힘들어졌다.
아디다스에서 자이코로로 옷을 갈아입은 수원. 사진=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 같은 현실과 관련해 한 스포츠 용품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구단 후원으로 직접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브랜드 홍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기대하며 후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직원은 수익 구조는 없고 업무만 늘어나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아디다스의 K리그 철수’와 함께 ‘이러다 K리그에 대형 브랜드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구단과 리그의 스폰서는 그 가치를 대변하는 척도가 된다. 용품사 외에도 기타 스폰서의 연쇄 철수가 우려됐다.
K리그 내 가장 큰 규모 계약을 자랑하는 팀은 FC 서울이다. 서울은 지난 2011년 프랑스 브랜드 ‘르꼬끄 스포르티브’와의 최초 계약에서 4년 종합 80억 원 상당을 지원 받는다고 발표했다. 연간 현금 10억 원, 현물 1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서울 구단은 계약 당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대규모’라고 전했다. 이들의 관계는 재계약으로 오는 2019년까지 이어졌다.
서울과 르꼬끄는 지난 8년간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다. 당초 첫 만남에선 어색함도 있었다. 프랑스 현지에서 라이센스를 따와 한국에서 자체 생산을 병행하는 르꼬끄는 첫 유니폼 디자인에서 팬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K리그 구단 최초로 구단 용품을 판매하는 상설매장 ‘팬 파크’. 사진=FC 서울
하지만 국내 축구 시장의 가치가 하락세를 보이고 지난해 아디다스가 구단 후원에서 철수하자 많은 시선이 서울과 르꼬끄의 재계약에 쏠렸다. 팬들 사이에선 ‘다른 브랜드가 접촉을 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오는 2019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르꼬끄에서는 재계약에 부정적이었다. 더 이상 서울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사내에 공공연하게 돌아다녔다. 다만 재계약 여부와는 관계 없이 다음 시즌을 위한 새 디자인 유니폼 제작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상황이 바뀌었다. 10월 중순을 전후로 내부 방침이 재계약으로 뒤집어졌다. 다만 계약 규모는 축소된다. 현금 후원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르꼬끄 관계자는 “FC 서울 구단과도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이므로 단독으로 답변할 수 없다. 차후 변동사항이 생길 경우 공식적으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단 관계자 또한 “지금으로선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서울은 우여곡절 끝에 재계약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국내 축구단 스폰서 시장은 밝지 않다. 아디다스에서 자이크로로 갈아탄 수원은 올해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용품과 현금이 지급하기로한 날짜를 넘겼다. 유니폼 등의 품질에서도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축구 관계자들은 결국 스폰서 계약의 어려움은 시장의 영향력이 작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단 스폰서를 무리없이 맡을 수 있는 대형 용품사는 국내 축구 시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앞서 2013년 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전 구단의 유니폼과 각종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을 서울시 중구 동대문 인근에 열었다.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은 이내 문을 닫게 됐다. 직접적 비교는 터무니 없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영국의 축구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디다스의 계약 규모는 연간 7500만 파운드(한화 1297억 원)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이후 ‘봄’을 맞고 있다. 최근 대표팀 4경기가 모두 매진 또는 매진에 가깝게 성황을 이뤘다. K리그도 조금이나마 낙수효과를 누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다. 이같은 대중의 관심은 곧 그간 부족했던 시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와중에 대표팀은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 종료(2019년)를 앞두고 있다. 나이키와 결별하고 다른 브랜드와 인연을 맺을지, 재계약이라면 어떤 규모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무엇보다 국내 축구의 가치가 어떻게 평가 받을지 지켜 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