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더 이스트라이트의 멤버 이석철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더 이스트라이트 맴버 폭행 피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앞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그런 이들의 해체가 가시화됐던 것은 지난 10월 19일의 일이다. 최연장자로 팀의 리더를 맡고 있던 드러머 이석철이 단독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연장자라곤 해도 그 역시 고3의 나이로 아직 10대였다.
이날 이석철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약 4년 가까이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문영일 PD로부터 상습적으로 맞았으며, ‘(폭행 사실을) 집에 가서 부모님께 알리면 죽는다’는 협박도 상습적으로 받았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같은 멤버이자 그의 동생인 이승현 역시 문 PD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자줏빛 멍이 든 엉덩이나 허벅지 사진을 공개하며 폭행의 정도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 역시 문 PD에게 폭행을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는 것이 이석철의 이야기다. 이승현은 문 PD로부터 가장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이석철, 이승현의 부모가 미디어라인에 문 PD의 해임을 요구했다. 당시 김창환 회장이 이를 받아들였으나, 1년 4개월 만인 지난 10월 4일 다시 문 PD의 재영입을 통보했다. 이에 이승현이 거세게 반발하자 “회장님께 감히 대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만에 그와 계약을 해지했다고 한다.
멤버들을 주로 폭행한 것은 문 PD였지만, 김창환 회장이 이를 방조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이석철의 주장에 따르면 김 회장은 폭행현장을 목격하고도 문 PD를 말리거나 꾸짖지 않고 ‘살살해라’는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이에 더해 이석철과 김 회장이 나눈 대화 녹취록에는 “시키는 거 열심히 하고 따라와도 될까 말까 한 판에 자꾸 문제를 만들어서 회사를 들쑤시고” “잘못 행동 하면 엄마, 아빠, 너 다 폭탄 맞아” 등 김 회장의 욕설과 폭언이 담긴 것으로도 확인됐다.
상습 폭행·폭언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미디어라인 측은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미디어라인의 현 대표인 이정현 대표와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김창환 회장이 내놓은 카드는 그룹에서 방출된 이승현이 “원래 문제가 있던 아이”였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 이승현의 문제는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지적되던 것”이라며 문 PD의 재영입과 관련해 갈등이 빚어진 것 역시 “이승현의 인성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정현 대표 역시 “이승현 아버지가 오죽하면 ‘아들을 체벌해서라도 똑바로 가르쳐 달라’고까지 했다더라”라며 “멤버들, 회사 직원, 스태프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급기야 회장님한테까지 대들었단 말을 듣고 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석철이 기자회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아들이 퇴출될 위기에 놓이니 형사인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소속사’ 프레임을 짜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이석철, 이승현의 소송을 수임한 법무법인 남강의 정지석 변호사는 “(미디어라인의 이야기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더러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폭행·폭언 논란이 불거진지 3일 만인 지난 10월 22일 미디어라인이 더 이스트라이트의 해체를 밝혔다. 사진=더 이스트라이트 제공
이어 “이후 형인 이석철을 따로 불러 이정현 대표와 김창환 회장이 6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과정에서 이석철을 협박·회유하려 했다. 조용히 있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석철도 퇴출시키겠다며 이 사실을 외부로 알리지 말 것을 강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특히 미디어라인의 이른바 ‘프레임 짜기’에 불쾌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미디어라인이 체벌과 퇴출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승현의 인성을 계속해서 거론하고 있는데 이건 상당히 잘못된 태도”라며 “멀쩡한 애들도 4년간 지속적인 폭행이 가해지면 성격이 변화될 수도 있다. 더욱이 애초에 어린 아이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미디어라인 아닌가. 폭행 사실이 존재하는 한, 이건 결코 양측 간 ‘진실 공방’의 문제가 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연예가에서도 미디어라인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 연예기획사 홍보팀장은 “대형기획사는 몰라도 중소기획사의 경우, 특히 보이그룹이라면 연습생들에게 ‘정신 교육’이라는 이유로 얼차려를 주는 일이 종종 있긴 하다. 프로듀서나 매니저 등 스태프들이 같은 성별이라서 훈육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러나 데뷔 후 거의 2년 가까이 지난 애들을 데리고 저 정도로 심하게 폭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을 90년대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현재 이석철, 이승현 측은 미디어라인의 문영일 PD와 이정현 대표, 김창환 회장 등을 아동복지법 위반, 상습·특수폭행, 상해, 폭행방조 등 혐의로 지난 10월 22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당초 김창환 회장은 “근 30년 동안 수많은 가수들을 발굴해오면서 단 한 번도 폭행을 사주하거나 방조한 적이 없으며 멤버들을 가르치거나 훈계한 적은 있어도 폭언이나 폭행을 한 적이 없다”라며 “과장된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피소 이후 미디어라인의 누구도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 언론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이들은 “경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만 짧게 밝혔을 뿐이다. 이 사건은 10월 26일 고소인인 이석철, 이승현의 조사를 시작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현재까지 미디어라인 측은 이석철, 이승현 측에 별다른 대응이나 연락은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더 이스트라이트의 남은 4명의 멤버들도 지난 10월 22일자로 전속 계약을 해지하면서 그룹 역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에 따라 미디어라인 소속 가수는 현재 클론만 남은 상황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