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4대강 청문회를 요구하는 모습.
이명박 정부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해서 감사원은 지금까지 총 네 차례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이 특정 사업에 대해 이렇게 여러 번 감사를 실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명박 정부 감사는 ‘면죄부용’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박근혜·문재인 정부 감사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는 게 중론이었다. 정치권에선 정권마다 달라지는 감사 결과를 꼬집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에서 이뤄진 감사를 통해 사업 전반에 대한 문제점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30조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은 낙제점을 받았고, 치수 효과도 의문부호가 달렸다. 사업 과정에서 국토부와 환경부 등 주무 부처들은 청와대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부 감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결과 역시 이와 비슷했다. 총체적 부실이라는 결론 속에 담겨 있는 내용은 박근혜 정권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비자금 의혹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박근혜 정권 초반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던 이른바 ‘4자방 비리’의 4는 4대강 사업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면 4대강 비자금이다. 실제 검찰은 몇몇 건설사와 설계업체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나섰지만 용두사미에 그쳤다.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권과 건설업체 간 커넥션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후 4대강 사업 비자금과 관련된 공식 수사는 없었다.
현 정부 핵심 인사들 역시 ‘4자방 비리’를 적폐로 규정했다. 그중에서도 4대강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여러 번 문제점을 제기했을 정도로 그 사안이 중대하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특히 소문만 무성한 비자금 실체가 드러날지가 관심사였다. 사정당국은 4대강과 관련해 수많은 자료와 첩보들을 수집했지만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확보하지 못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이제 와서 4대강 비자금 수사를 재개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의 한 수사관은 “우선 시간이 많이 지나 자료가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대부분 폐기됐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 때 여러 번 파헤치려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느냐”면서 “건설사나 정치권 등 당사자들 제보가 없다면 수사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건설 공사 비자금 수사는 내부 제보 없인 풀어내지 못한다”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8월경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4대강 사업을 겨냥한 조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복수의 사업 관계자들로부터 의미 있는 진술과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민정수석은 고 김영한 수석이었고, 민정비서관은 우병우 전 수석이었다. 몇몇 민정수석실 직원들은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업체의 내부 관계자들을 광범위하게 만났다고 한다. 4대강 사업 비자금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한 시행사 대표는 이렇게 기억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를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4대강과 관련해 논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4대강 비자금에 대해 청와대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4대강 사업에 뛰어들었던 업체 치고 비자금에서 자유로울 곳은 없었다. 그 직원이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대충 알고 있더라. 나에게 구체적인 (비자금) 내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건네주면 면죄부를 주겠다는 식으로 말해서 고민 끝에 비자금이 적힌 장부를 건네줬다. 그 후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봐서 묻힌 것으로 생각한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업체는 공사비 10%가량을 빼돌려 비자금을 만들었고, 이 중 상당액을 다시 건설사에 상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우리가 건설사에 준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건설사가 갖거나 또는 입찰을 따내기 위한 로비 등에 쓰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러한 일은 건설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귀띔했다. 이어 “청와대가 비자금 출처를 우리 쪽에서 확인했으니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 건설사 전직 임원도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과 만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 역시 구체적인 비자금 규모가 담긴 파일을 USB에 담아 건넸다고 했다. 여기엔 하청업체 등과의 비자금 입출금 내역, 구체적인 조성 방법 등이 저장돼 있었다. 이 전직 임원은 “협조를 하면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했다. 민정수석실 직원이 이렇게 접촉해온 이상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USB를 건넸다”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비자금이 누구에게로 가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몰랐다. 비자금만 따로 관리하는 회사 임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전직 임원은 다소 납득하기 힘들었던 대목을 떠올렸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내가 준 USB엔 은행명과 계좌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그 파일만 보면 비자금 흐름, 규모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선처를 약속받긴 했지만 어느 정도 처벌을 감수하고 이를 건넨 것은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도 잘못하긴 했지만 수십조 혈세를 갖고 장난을 친 정치권이 더 큰 문제 아니냐. 공사에 쓰여야 할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다면 4대강 사업은 부실공사라는 얘기 아니냐. USB를 바탕으로 수사를 조금만 진행했다면 비자금을 받은 권력자들도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USB를 돌려받진 못했다. 이대로 사라지나 싶어 안타까웠다.”
이를 종합하면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작성된 여러 건의 비자금 리스트를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 추가 조사나 검찰 수사는 이어지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을 향한 박근혜 정권의 강경한 기류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시행사 대표 등이 건넨 자료들은 폭발성이나 신빙성 측면에서 가치가 높았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 사정기관 고위인사를 지낸 친박 정치인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권 초반 MB 인사들을 손보자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맞다. 4대강 비자금을 들쑤셨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비자금 장부를 살펴보니 여권 전체가 위험하게 생겼더라. 또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이 연루돼 있는 것도 집권 2년차 경제 살리기에 나선 상황에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일단은 덮고 가자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자료들은 어디로 갔을까. 폐기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사정기관 전직 관계자는 “4대강을 담당했던 직원들이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 “어떤 내용의 보고서가 만들어졌는지는 담당자가 아닌 이상 알기 어렵다”고 했다. 현 정부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박근혜 정권 때 중요한 제보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도 파악한 상태다. 당시 민정수석실 직원들에게 자료를 준 관계자들을 만나 확인했다”면서 “그때 민정수석실이 전해 받은 자료를 찾으면 비자금의 새로운 국면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제보를 받았는데 왜 추가로 수사하지 않았는지도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