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세미나를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만난 정혜림.
[일요신문]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2위 수성에 실패한 것은 24년 만의 일이었다. ‘기초종목 부진’에 대한 지적이 반복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육상 금메달리스트 정혜림의 활약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자 100m 허들에서 13초 20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뒤이어 10월 중순 익산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육대회에서도 국내 정상자리를 지켰다. 이에 ‘일요신문’에서는 정혜림을 만나 다음 시즌을 대비하는 각오를 들어봤다.
정혜림은 10월 18일 폐막한 전국체육대회를 마치고 짤막한 휴식 이후 바쁜 일정을 이어갔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육상 세미나 참가를 위해 출국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그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올해 그는 전국체전 여자 100m 허들 4연패를 달성했다. 통산 10번째 전국체전 금메달이었다. 아시안게임 석권까지 더해지며 그에게는 특별한 시즌이 됐다.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이 마무리됐다. 올해는 아무래도 아시안게임이 있어서 남다른 기분이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는 이전 대회인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아쉽게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선수생활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실망감이 컸지만 이내 다시 트랙 앞에 섰다. 그는 “전 대륙이 모두 참여하는 대회에서는 사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면서 “그래서 아시안게임은 더욱 욕심이 나는 대회였다. 준비도 많이 했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손에 잡힐 듯한 목표였기에 더 열심히 한 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시안게임서 대한민국에 유일한 육상 금메달을 안긴 정혜림. 연합뉴스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도 이름이 걸리는 등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는 깜짝스타는 아니다. 올해 한국나이 32세로 육상 선수 생활만 20년이 가까이 된 베테랑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각종 대회 참가 경력을 바탕으로 경기 외적으로도 여유 있는 준비가 가능했다.
“이번 대회 선수촌이나 음식 등에서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음식도 잘 맞았고 선수촌도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웃음).”
규모가 큰 종합대회에 나선다는 사실도 덤덤하게 다가왔다. 그는 “어릴 때는 이용대, 이원희 장미란 선수 등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신기해하기도 했다”면서 “이제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져서 나를 어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경기나 훈련 시간이 다르기도 하고 시합에 집중하다보면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며 웃었다.
경기 장면이 방송으로 생중계되며 수려한 외모에 관심이 쏠렸다.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선수지만 이미 기혼자임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혜림은 “지난 2011년 결혼을 했다. 남들보다는 조금 어린 나이에 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남편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내가 메달을 따고 주변에서 축하 인사를 받기도 하는 것 같지만 관심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벌써 결혼생활 8년차인 그에게 남편은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큰 버팀목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활동했던 남편은 운동선수인 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선수로서 몸관리를 하거나 정신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는다. 소속팀이 광주에 있어서 집인 서울에 자주 가지 못하는 부분도 잘 이해해준다. 항상 고맙게 느낀다.”
화제가 됐던 외모에 대해서는 “운동선수이기도 하고 성격이 털털해서 많이 신경 쓰지는 못한다. 다만 선수로서 몸관리를 위해 식단을 조절하는 정도”라면서 “중계 화면이나 사진에 예쁘게 담긴 것 같은데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다”며 웃었다.
아시안게임 이후에는 행사 참가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 전국체전에 곧장 나섰다. 그는 “시간이 촉박해서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다. 체력적인 준비를 못해 좋은 기록을 예상하기는 힘들었다”면서도 “순위(1위)는 지킨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결과가 좋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전국체전 4연패였다. 지난 2015년부터 그를 앞질러 가는 선수가 없었다. 그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그는 “기량이 좋은 어린 선수들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라이벌이 있어야 더 좋은 기록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회 이후 나온 ‘기초종목 육성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었다.
그에게도 현재의 기량이 있기까지 이연경이라는 라이벌이자 좋은 선배가 존재했다. 이연경은 정혜림에 앞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사이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육상 종목 전체에서 대한민국의 금메달은 없었다.
정혜림은 금메달 획득 직후 “이연경 언니 생각이 난다. 언니가 있어서 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항상 함께하던 언니의 은퇴 이후에는 일본에서 경쟁을 이어갔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세대교체도 빠르다. 우리는 어린 선수들이 계속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관심이 적은 육상 종목이지만 소속팀(광주광역시청)의 지원에 해외 활동이 수월했다. 그는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한 경험이 있어야 국제 대회에 나가서 성적을 낼 수 있다”면서 “그동안 국제대회에 많이 참가했는데 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러면서 “사실 선수들에게 국내 대회만 뛰라고 하라고 하는 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후배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전했다. 그는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 서슴없이 다가와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묻기도 하고 했으면 좋겠다. 물어보는 모든 것을 내가 다 알려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라며 웃었다.
정혜림은 30대로 접어들었지만 당분간은 선수생활을 지속할 계획이다. 아직까지 큰 기량저하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지체 없이 확고한 목표를 밝혔다.
“내년 세계선수권과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한국신기록(13초 00) 경신을 이루고 싶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