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에 설치된 임산부 주차장. 연합뉴스
2017년 11월 27일 서울시의회 김선갑 운영위원장(광진3, 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서울특별시 임산부 전용주차구역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소관 상임위인 교통위원회 심의에서 수정 가결됐다. 서울시 주차관리과 관계자는 “1월에 조례가 공포됐다. 당시 임산부 표지 발급과 주차구획 세부지침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산을 준비해서 내년 상반기면 사업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산부 전용 주차장 조례에 따르면 서울시는 본청·직속기관 등 공공시설에 임산부 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주차대수 규모가 30대 이상인 민간 부설주차장의 관리자에게 임산부 전용주차구역 설치를 권고할 수 있다.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의 바닥면에는 ‘임산부 전용’ 표시를 해야 한다. 임산부 전용주차구역 표지를 주차장 내 알아보기 쉬운 장소에 부착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서울시가 임산부 전용 주차장의 목적을 ‘출산장려’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10월 25일 임산부 전용 주차장 설치 소식이 알려진 순간 누리꾼들은 서울시의 정책 취지를 비판했다. 한 누리꾼은 “보여주기식 정책이다. 출산 장려가 될까. 시 공무원들이 아이 낳는 것을 주저하는 엄마들을 만나서 얘기를 좀 해봤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다른 누리꾼은 “임산부 전용 좌석과 주차장이 없어서 애를 안 낳는 것이 아니다. 탁상행정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산부 전용주차구역 조례안 1조는 “서울특별시 내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을 방문한 임산부를 배려하고 임산부가 탑승한 자동차에 대한 이용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출산 장려와 여성 복지 증진에 이바지한다”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주차계획과의 조례공포안은 “임산부 전용주차구역을 설치 운영하여 임산부 탑승한 차량을 배려하고 이용편의를 제공해 출산을 장려하고 및 여성 복지 증진을 도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출산장려’가 임산부 전용 주차장의 주된 명분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서울시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1년 전에 출산을 했는데 임산부는 기본적으로 약자다. 만삭이나 임신 초기인 경우에는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주차장이 설치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서울시의 정책 취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임산부 전용주차장이 저출산 문제가 해소될까. 임산부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고 아이를 많이 낳지는 않는다. 여성을 위한 정책에 설득력 없는 목적을 내세우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주차계획과 관계자는 “임산부 전용 주차장이 저출생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은 아니다. 하지만 임산부가 주차장을 이용할 때 승하차에 특별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며 “임산부에게 사소한 도움을 주기 위한 배려 차원의 기회 제공으로 봐야 한다. 임산부 전용 주차장이 저출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겠지만 미혼자들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조금은 더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임산부 전용 주차장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들린다. 당장 내년부터 서울시 공공기관 주차장의 일부가 임산부 주차장으로 바뀌는 현실에 대해 시 차원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주차계획과 관계자는 “임산부가 배려 받아야 한다는 시민적인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인 편의 증진법에서는 임산부를 교통약자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뿐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임산부 전용 주차장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논리를 서슴없이 펴왔다. 2015년 4월 서초구청은 서울시 자치구 중 최초로 구청 주차장에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을 지정했다. 구청 주차장 150개의 주차면 중 2면을 임산부 전용으로 변경한 것이다. 당시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서초구는 미래의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분야에서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에 만든 임산부전용주차구역이 저출산을 개선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역자치단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부산시는 저출산 극복 정책 중 하나로 2011년부터 공공·민간 부문의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 설치를 적극 추진했다. 2012년 공공기관 청사는 의무적으로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 조례도 마련했다. 부산시는 2017년부터 일부 공공기관 등에 설치된 임산부 전용주차구역을 백화점과 대형마트, 병원 등 다중이용시설 등으로 확대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저출산 대책은 실효성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임산부 우대 차원에서 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임산부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면 출산율이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도 “임산부 전용 주차장을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고 한다면, 공공기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안산단원경찰서에 설치된 어르신·임산부 전용주차구역 모습. 연합뉴스
온라인 공간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남성 중심 커뮤니티 I의 한 회원은 “여자는 항상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여성전용 주차장에 이어 전용 정책이 또 나왔다”고 밝혔다. 다른 회원은 “어차피 임산부 전용 주차장은 과태료도 물지 않는다. 서울시에 설치된다고 해도 안 지키면 그만”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임산부 전용 주차장 정책의 ‘디테일’이 부족한 탓에 ‘여성혐오’가 오히려 촉발됐다는 지적도 들린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A 씨는 “임산부 전용 주차장은 현실적인 정책이 아니다. 저출산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우면 정책의 설득 과정 자체가 빈약해진다”며 “저출산은 육아휴직도 못 쓰고 직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임산부 주차장처럼 여성 정책에 꼼꼼함이 부족하면 남녀 싸움의 여지를 줄 수밖에 없다. 확실하지 못한 정책 때문에 여성들이 공격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나서서 남녀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임산부 전용 주차장 조례가 여성 혐오를 일으켰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꼼꼼함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원입법과 같은 상위법의 위임 없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며 “임산부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저출산과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임산부 전용 주차장은 임산부 여성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남성 혹은 비임신 여성이 임산부 전용 주차장을 이용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시 조례는 임산부 우선 주차장 설치를 명시만 했을 뿐 이를 위반했을 때 제재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다. 처벌규정이 없으니 실효성 논란도 예상되는 만큼 서울시가 ‘끼워 맞추기식’ 탁상행정으로 논란을 초래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계속될 전망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