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독 관저 ‘거버너 하우스’.
만달레이 구의 지도에는 볼록한 부분이 2개 있습니다. 바로 루비산지 모곡과 옛 영국의 여름철 행정수도 삔우린입니다. 이웃 샨 주(Shan State)에 속해야 마땅한데. 그렇게 된 것에는 역사적인 사연이 있습니다. 거버너 하우스. 영국 총독의 관저는 삔우린 시내에 들어서기 직전의 언덕에 있습니다. 아리윰 팰리스호텔(Aureum Palace Hotel)이 있는 언덕입니다. 티크목으로 지어 100여 년이 지났건만, 영국식 저택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창밖으로 포도밭이 내려다보이고, 여러 숲길을 따라 난 정원. 저택 안에는 견고한 계단과 식탁이 있고, 방마다 은그릇들과 벽난로가 있습니다.
거버너 하우스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이곳에서 옛 버마를 통치했고, 총독은 인도와 영국 왕실로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잉크로 쓴 바랜 그 편지들이 남아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 중 한때는 연합군의 사령부로, 그리고 일본군 사령부로 이어진 집입니다. 그래서 중국 국민당 장개석 총통과 함께 한 사진도 걸려 있습니다. 당시 연합군이 ‘버마로드’를 통해 그를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이 이곳을 사령부로 쓰면서 저택은 일본식으로 모양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당시 영국 총독들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꾸민 방.
이곳과 약 5시간 거리에는 세계적인 루비 광산지 모곡이 있습니다. 버마와 영국의 마지막 3차 전쟁은 ‘루비의 땅’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대립되면서 발생했습니다. 이미 버마의 남부와 중부를 손에 쥔 영국은 1885년 일방적으로 만달레이 왕궁을 에워싸고, 이듬해 버마의 마지막 왕 띠보를 인도로 유배시킵니다. 이것으로 버마의 왕조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북부의 루비, 서부의 석유, 중부의 티크목은 영국이 차지하게 됩니다. 지배계급으로 인도인들이 들어오고, 중국 상인들이 대거 흘러 들어옵니다.
‘버마로드’를 통해 당시 연합군이 중국 국민당 장개석을 지원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5월. 양곤에 이어 만달레이가 일본군에게 함락됩니다. 일본의 강점기는 약 3년에 불과하지만 이 나라 국민들에겐 치욕적인 시기였습니다. 젊은 처녀들이 위안부로 강제 동원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해 버마-태국을 잇는, 이른바 ‘죽음의 철도’에 동원되어 가혹한 노동으로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기념관에 걸린 한 부족여인들의 사진. 결혼을 하면 얼굴에 흉칙하게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 있었다. 다른 부족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거버너 하우스는 이 시기에 이렇게 최전선인 미찌나와 함께 일본군 사령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관저는 이제 미얀마 국민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애쓴 민돈 왕, 아웅산 장군 기념관도 만들었습니다. 그 시절을 견뎌낸 부족들의 모습도 담았습니다. 오랜 식민 시절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총독들의 밀랍인형, 당시 쓴 편지들을 친숙하게 바라보는 이 나라 사람들을 봅니다. 영국 속 버마, 버마 속 영국의 풍경을 보는 기분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입니다.
거버너 하우스 숲길을 걸어나오며 층계참에 걸렸던 빛바랜 사진들을 생각해 봅니다. ‘영국인 신사’들의 나들이 사진, 가족사진, 인도인 집사들의 단체사진들을. 저명한 영국 신사의 가문에는 반드시 충성스런 집사의 가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도인들이 지켰던 총독의 집. 미얀마 속 영국의 풍경에는 인도를 점령하지 못한 일본의 분노와 영국을 섬길 수밖에 없던 인도인들의 슬픔이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