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은 비상장사지만 지분의 50.12%가 펀드(생명보험사 제외)다. 2007년과 2012년 유상증자로 자본조달을 하면서다. 옛 대우그룹(현재 포스코대우)이 가졌던 지분도 외국계 펀드에 넘어갔다.
이들이 비상장사에 투자했던 이유는 상장을 기대해서다. 신 회장이 일부 주주들에 주식을 되사겠다는 풋백옵션(put back option)을 보장한 것은 상징적인 안전장치다. 신 회장이 지분을 되살 자금력을 갖췄을 리 만무하다. 교보생명이 자사주로 매입하는 방법이 가능하지만 상당한 재무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2014년 4월 1일 ‘횡보 염상섭의 좌상(坐像)’을 종로구 삼청공원에서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앞으로 이전,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일요신문DB
펀드주주들이 신 회장의 풋백옵션 약속 불이행에 따른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최소한 수년간의 법정다툼이 필요하다. 설령 펀드주주들이 승소한다고 해도 신 회장이 보유지분을 매각하지 않는 한 돈을 만들 수 없다. 이 경우 신 회장 지분에 질권을 설정해 경영권을 포함한 매각작업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다. 결국 상장이 가장 현실적 해결책이다.
2009년 동양생명을 시작으로 2010년 한화생명과 삼성생명, 2014년 미래에셋생명까지 증시에 데뷔하면서 교보생명의 상장도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가뜩이나 교보생명은 자본이 그리 넉넉한 편도 아니다. 지급여력 비율이 300%에 못미친다. 자본 확충이 절실해 올해에는 5억 달러 규모의 해외후순위 채권도 발행했다. 하지만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갔다가 유야무야된 교보생명의 상장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2007년 유상증자 때 발행가격이 1주당 18만 5000원이었다. 당초 계획했던 200만 주 가운데 129만 3651주가 실권이 났다. 실권주는 코사이어코리아인베스터스가 108만 2791주, 우리사주조합이 21만 860주를 인수했다. 이해 말 신용희, 신문재 등 특수관계인도 지분 5.3%(109만 2165주)를 핀벤투어스KBL에 매각한다. 2012년에는 포스코대우가 교보생명 지분 24%(492만주)를 매각한 가격은 1주당 24만 5000원, 총 1조 2054억 원이다.
한화생명의 반기기준 순자산(개별기준)은 11조 2567억 원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4조 원으로 주가순자산배율(PBR)로 따지면 0.36배도 채 안 된다. 삼성생명의 순자산은 25조 5661억 원인데, 시총은 18조 원 남짓이다. 올 6월 말 기준 교보생명 자본총계는 9조 857억 원가량이다. 한화생명 정도 평가를 받는다면 주가는 약 16만 원, 삼성생명 정도면 31만 4673만 원이다.
수익력을 감안할 때 한화생명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2012년 거래가격을 넘어설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FI 입장에서는 보유 기간에 따른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주가는 더 높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증시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교보생명이 상장할 경우 자본 확충을 위한 신주발행이 불가피하고, 그에 따라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펀드들은 투자자들에게 일정 수익을 돌려줘야 한다. 길게는 10년 넘게 교보생명에 투자했는데, 충분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책임 추궁을 피하기 어렵다. 성과보수도 받지 못한다. 최근 증시 상황과 좀처럼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하는 ‘생명보험주의 저주’까지 겹칠 경우 기관투자자들의 투자기피로 펀드주주들이 보유지분을 매각하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상장 후 펀드주주들의 지분 매각이 어려울 경우 이는 신 회장 등 경영진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영진을 상대로 배당을 늘리거나 알짜자산을 매각해서라도 주가를 부양하라는 압력을 높일 수 있다. 현재 신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39.44%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인 33.34%(주총 특별결의 저지선)를 웃돈다. 하지만 신주발행으로 지분율이 희석되면 이를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설령 지킨다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지분을 가진 이들의 압박은 치명적일 수 있다.
당장 이사회 구성에서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교보생명 이사회는 신 회장을 포함해 7명으로 구성돼 있다. 4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2명이 전 교보그룹 임원 출신이다. 펀드 주주들을 대표해서는 코사에르캐피탈에서 라리리잔 이사가, 어피니티에서 이상훈 대표, 이상 2명이 참여하고 있다. 펀드주주들이 이사회 자리를 늘리려 할 수 있다. 펀드주주들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한다면 경영권도 안심할 수 없다.
한편 일각에서는 교보증권 매각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애초 교보생명이 교보증권을 팔아 재무건전성을 강화할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그 돈으로 펀드주주들의 지분을 되사줄 수도 있어서다. 우리은행이 우리금융지주로 전환하면 잠재매수자로 등장한다. 교보생명 측은 이 같은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
‘조정·하락장 주도’ 유럽 자금을 주목하라 증시 급락은 늘 외국인 매도와 함께 나타났다. 하지만 외국인은 단일 주체가 아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및 중동 등 이해관계와 투자전략이 다른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돼 있다. 최근 2년간 증시 흐름을 보면 상승장에서는 미국 자금이 주도하지만, 조정장이나 하락장에 앞서서는 유럽 자금이 먼저 움직이는 추세를 읽을 수 있다. 통계가 존재하는 2016년 하반기부터 올 9월까지 코스피와 미국 및 유럽(영국, 독일,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자금 추이를 그려보면 상관관계가 드러난다. 코스피가 본격적으로 2000을 돌파한 2016년 10월부터 미국계 자금의 순매수가 뚜렷하다. 2017년 3분기 잠시 주춤할 때는 미국계 순매수도 잦아들었지만 유럽 자금이 순매도로 돌아선다. 올 2분기 이후 증시가 내리막을 타면서는 미국과 유럽 자금이 순매수와 순매도로 엇갈린다. 미국계 자금은 주로 매수 후 보유(buy&hold) 전략을 펼치는 장기 자금이다. 전문용어로 ‘롱(long)’ 펀드다. 반면 유럽 자금은 매수는 물론 공매도(short) 전략을 펼치는 투자자들이 많다. 유럽에서도 영국이나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은 투자 관련 세 부담이 적어 조세피난처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일반 공모형 펀드도 쇼트 전략을 펼친다. 국내에 유입되는 유럽 자금도 마찬가지 성격을 띠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헤지펀드 근거지로 알려진 케이먼제도를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조 9020억 원에 이어 올 들어 9월까지 2430억 원을 순매도했다. 유럽계 자금흐름과 일치한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