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의 반응은 영 떨떠름하다. 직권남용이라는 혐의가 워낙 모호하다는 반박이다. 되레, 임종헌 전 차장이 아니라 재판부를 관리하는 역할에 있던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처벌받는 게 맞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구속된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의 각종 의혹들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반발은 수사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이메일’에서 발견된 재판 개입 증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당시 청와대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2015년 가토 전 지국장 재판과 관련, 청와대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서울중앙지법에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 같은 증거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임종헌 전 차장의 USB와 이메일 등에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가토 전 지국장은 칼럼을 통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정윤회 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언론에서, 그것도 칼럼이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기사였던 탓에 ‘정치적인 기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법원은 예상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임 전 차장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했다. 지난 2015년 11월,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임 전 차장에게 ‘참조하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함께 명예훼손죄 유죄 판례를 보냈고, 임 전 차장은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이던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그리고 임성근 부장판사는 1심 재판부에 “인용된 풍문이 허위라는 사실이 판결 이유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 임성근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선고 요지를 수정하라고 요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1심 재판부에 몇몇 문구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주기도 했다. 실제 재판부는 “대통령이 사고 당시 정윤회를 만나느라 사고 수습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라면서도 “민주주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언론자유를 중시해야 함은 분명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가토 전 지국장에게 선고가 이뤄진 3시간 내내 서서 듣도록 하는 등 도덕적인 처벌도 잊지 않았다.
# 그렇다면 직권남용 처벌?
검찰은 임종헌 전 차장은 물론, 재판부에 이를 지시한 임성근 부장판사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될 경우 처벌은 오히려 임 전 차장이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법원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의 상위 개념이 아닌 탓에,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법원 관계자는 “임종헌 전 차장은 완전 분리된 조직인 법원행정처 소속이지 않나. 의견 전달 수준이라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직접 지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애매하다는 평이다. 그는 “임종헌 전 차장이 직접 재판부에 지시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임 전 차장의 지시는 ‘의견 전달’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상관인 임성근 부장판사는 처벌이 되고 임 전 차장은 무죄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임종헌 구속에 판사들 반발 기류 “재판에서 한번 보자!” 법원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판사들 대부분은 “설마 영장이 발부되겠냐”고 얘기했던 터라, 이례적인 발부였다. 특히 영장전담재판부가 밝힌 강력한 구속사유가 법원 내 강한 충격을 줬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새벽 영장을 발부하며 발부 이유에 대해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명시했다. 강력한 워딩이었고, 법원 내부는 뒤숭숭했다. 한 서울 고등부장판사는 “설마 했는데 영장이 발부되는 걸 보면서 정말 문제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 법원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너무 속상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검찰의 분위기는 다르다. 임 전 차장의 직접 지시에 따라 판사들이 사법농단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는 증언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게 검찰 수사팀 관계자의 중론이다. 실제 수사를 받은 바 있던 노영희 변호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법 농단과 관련해 검찰에 직접 가서 조사를 받을 때 임종헌 전 차장이 시켜서 문서를 작성했다는 것을 다 봤다”면서 “이와 관련된 판사들의 진술 내용이 무엇인지도 다 들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 역시 “판사들이 와서 일관되게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 내용을 털어놨다”며 “구속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종헌 전 차장 구속과 함께 참고 있던 판사들이 직접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한 것은 수사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임 전 차장 첫 소환 조사 다음날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게시판에 “밤샘수사는 고문이니 고쳐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올렸고,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은 임 전 차장 구속이 결정된 다음날 “판사는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이보다 앞선 9월에는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이번 수사가 검찰 조직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법원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잘못된 목적의식이 아니길 바란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반발은 재판에서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판사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위법성을 걸고넘어지면,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검찰 입장에서 불리하기 때문. 앞선 검찰 관계자는 “원래 재판 과정에서는 진술 받을 때 형식 하나 만으로도 증거 전체가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며 “판사들이 더 예리한 기준으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어 특별재판부가 더더욱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