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수주량이 80% 넘게 급감한 2016년 이미 자구계획안을 제출한 대우조선해양이 4차 산업 기술의 조선산업 적용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까지 인력을 9000명 이하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정한 대우조선해양은 연내 추가 인력 감축을 예정한 상태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딥러닝 기반 QA(Question & Answering)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포티투마루’와 협업해 설계 분석에서 AI가 사람의 일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지난 5월부터 마련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선박 발주 요청서에 담긴 선박 건조 세부사항의 실현 가능성을 AI가 판단하는 게 핵심이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인도한 저압엔진용 완전재액화시스템 적용 LNG운반선의 운항 모습.
성길제 포티투마루 QA 전략기획팀장은 “딥러닝의 일종인 기계독해 기술을 활용한 의미분석 QA 서비스는 사전에 입력된 정보가 아니더라도 빠르게 원하는 답을 내놓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선박 건조에 드는 각 부품의 상용성 등을 직접 분석해야 했지만, QA 서비스는 엔지니어가 질문하는 것만으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QA 서비스가 선박 빌딩 스펙(Building Spec) 확인에 유용하다고 판단, 지난 10월 본계약을 체결했다. 대우조선해양 선박 건조 기술진은 “REF 분석에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AI를 활용한 QA 시스템 도입으로 1시간이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조선업 생산 부진으로 유휴인력 구조조정 고심이 여전한 현대중공업도 4차 산업 기술 도입에 나서고 있다. 2015년부터 구조조정을 시작, 2017년 군산조선소 문을 닫은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ICT기획팀을 신설하고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영입, 정보통신(ICT)과 조선산업 융합을 추진 중이다. 사물인터넷(IoT)·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복잡한 3차원 곡면 형상을 가진 선박 앞·뒷부분 외판을 자동 성형하는 ‘곡 성형 로봇 시스템’은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선박용 엔진을 만드는 현대씨즈올은 글로벌 물류에 현대자동차 사내벤처인 ‘체커’가 내놓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로 정했다. 삼성중공업은 생산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조선사가 4차 산업 기술 도입에 속도를 높이는 이유는 공정 속도를 높여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이 채택한 포티투마루 딥러닝 기반 QA는 노동집약적인 조선산업의 생산 효율성을 향상하는 대표적 기술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봇을 비롯한 4차 산업 기술 도입은 또 수주 후 생산까지 길게는 1년이 소요되는 조선산업의 특성상 유휴인력 구조조정 이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노조는 조선사들의 기술 도입 확대 움직임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술 도입을 방패로 불황에 따른 매출 감소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게 노조 입장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해양 야드에 조선 물량을 배치하는 내용과 정부 지원 숙련향상교육 및 유급휴직 방안을 내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음에도 사측은 일방적인 인원 감축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IT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 기술의 도입 자체는 높게 평가하지만 설계부터 시작해서 배를 만드는 일에는 기계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면서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한 노동력을 최대한 잔존시키는 방식으로 기술을 도입해야 올해 수주에 맞는 생산을 할 수 있고, 그래야 국내 조선사 수주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조선업이 세계 선박 수주량의 42.5%를 차지하며 중국을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섰다. 그래프=BNK금융경영연구소
실제 국내 조선사는 축적된 기술과 시장 신뢰를 딛고 올해 1∼8월 수주량 756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을 기록, 중국을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섰다. 매출액 감소세는 수주와 생산 간 시간 차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면 매출 증가는 이뤄질 전망이다. BNK금융경영연구소는 조선기자재 상장기업 19개사의 평균 매출액은 2015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내년부터 반등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정부 방침은 조선업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AI 등 4차 산업 기술을 적용해 조선소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총예산은 4000억 원으로 정부가 2500억 원을 내고 지자체와 민간이 1500억 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우선 스마트 조선소 모델을 개발한 뒤 조달·건조 등 생산 흐름을 파악하는 가상현실(VR) 기반 생산 플랫폼을 구축하고 AI, IoT 등 4차 산업 기술을 이용해 자재와 블록 위치 등의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업계 한 전문가는 “정부가 기술 고도화 싸움으로 넘어간 조선산업을 지원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기술 도입이 구조조정의 원인으로 작용해선 안 될 것”이라면서 “1970년대 대규모 설비와 기술인력을 감축해온 일본은 결국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조선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 조선업 호황기에도 힘을 쓰지 못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로봇 도입 확대하는 조선소 “인력 축소는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음에도 국내 조선사들이 로봇 도입을 통한 자동화 설비를 확대하고 있다. 로봇 도입이 생산성 향상은 물론 사고 위험에서도 자유롭다는 게 국내 조선사의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사람이 화염가열로 수작업을 했던 곡 성형 작업을 로봇이 수행, 연간 1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생산성을 3배 이상 높여 품질도 개선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장비 수명을 고려할 때 약 2000억 원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삼성중공업은 2014년 이미 물에 잠기는 선박의 선체 하부를 청소할 수 있는 수중 선체 청소 로봇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선박 건조를 마치고 최종 인도 전 다시 선체를 도크에 걸어 하부를 청소할 필요를 덜었다. 대형 컨테이너선 1척을 도킹하는 데 1주일이 걸린다. 대우조선해양은 쇄빙 LNG운반선의 고난도 선체 용접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소형 용접로봇을 2015년 개발, 투입 대수를 늘린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용접로봇 투입으로 생산성이 기존 대비 35% 이상 높아졌다”며 “공간 협소에 따른 용접 위험도 없다”고 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