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채용비리 혐의와 관련해 불기소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재수사 촉구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2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판사 노미정)에서 KB국민은행 ‘채용비리’ 혐의(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위반)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전 국민은행 인사팀장 오 아무개 씨와 전 부행장 이 아무개 씨, 인력지원부장이던 HR총괄 상무 권 아무개 씨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전 HR본부장 김 아무개 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또 양벌규정에 따라 재판에 넘겨진 국민은행 법인에는 50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국민은행은 다른 사기업과 다르게 은행법에 근거해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등 사회적 책무가 부여된다”며 “피고인들은 심사위원들이 부여한 점수를 사후 조작해 여성을 차별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로 인해 당락이 갈린 지원자의 규모가 상당하고, 이들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들의 자녀나 친인척이 관련된 바 없고, 피고인들이 이 사건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는 않았다”며 “피고인들이 그동안 있었던 잘못된 관행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한 것으로 보여 이를 개인적 책임으로 모두 돌리기는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은행권 채용비리 첫 선고부터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은행권 채용비리는 사회정의와 공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젊은이들에게 허탈감과 배신감을 준 사건이다. 국민은행 사건은 이와 관련한 첫 판결이니만큼 추후 진행되는 다른 은행들의 결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따라서 더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하지 않았나 본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과 전·현직 직원들에 대한 1심 선고를 시작으로,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5일에는 우리은행의 채용비리에 대한 공판이 진행된다. 함영주 행장이 기소된 KEB하나은행 채용비리 관련 재판은 오는 23일 예정돼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불구속기소된 신한은행에 대한 채용비리 재판도 서울동부지법에서 진행된다. 앞서 검찰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지난달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도망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허권)은 국민은행 1심 판결 후 성명서를 통해 “은행권 채용비리에 대한 첫 판결이 나왔는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가장 공정해야 할 은행에서 가장 불공정한 성차별·권력형 채용비리가 발생했는데, 검찰은 봐주기 수사로 일관했고 법원 또한 집행유예와 벌금형의 가벼운 처벌로 청년들을 또 다시 좌절시켰다”며 “법원은 남은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에 정해진 대로 엄하게 처벌해 다시는 이런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 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나은행도 거의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다만 하나은행의 경우 함영주 행장도 함께 기소된 터여서 집행유예형이 나온다면 이후 거취에 영향을 주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채용비리’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결국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국민은행 노조·위원장 박홍배)는 “채용비리의 시발점은 윤종규 회장에게 있다. 법원이 모든 범죄 사실에 유죄를 인정하고 국민은행에 대해서까지 유죄를 선고했다. 이제 윤종규 회장이 답해야 할 차례”라며 “윤종규 회장은 채용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윤 회장의 자진사퇴와 재수사를 위한 KB금융지주 본사나 대검찰청 앞 시위 등 다양한 방식의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윤 회장에 대한 의혹은 검찰이 불기소하면서 마무리된 것으로서 따로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일축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특별히 신경 쓰신다는 회장님은…’ 윤종규 불기소 여전히 논란 KB국민은행 ‘채용비리’ 혐의 1심 선고와 관련,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등 윗선은 처벌되지 않은 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6월 전국 6개 시중은행 채용비리 수사 중간발표를 하면서 윤 회장의 경우 공모관계 입증이 어렵다는 판단에 불기소 처분했다. 1심 선고 전날인 지난 10월 25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윤종규 회장 불기소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은행 채용비리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전형적인 봐주기 수사에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는다”며 “회장님이 각별히 신경 쓴다는 메모의 당사자는 검찰 수사를 받고, 각별히 신경을 쓰신다는 윤 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의혹이 충분히 남는다”면서도 “하급자가 상급자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으면 검사 입장에선 증거수집이 안 된다”고 답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이미 지난 9월 대검찰청에 윤종규 회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재항고장을 제출했다. 노조는 “권 씨는 청탁지원자들의 이름과 함께 ‘특별히 신경’이라고 쓴 윤종규 회장의 메모를 인사팀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전형단계별 합격자명단을 채용팀장에게 보고 받기 때문에 합격 여부를 알기 위해 굳이 메모를 전달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공소를 유지했다”며 “이러한 검찰이 같은 메모와 변명을 두고 윤종규 회장에게는 불기소처분의 이유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권 씨 등의 메모 전달 행위를 위력으로 평가해 기소했다면, 메모를 작성하고 전달한 윤 회장의 행위 또한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봐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재항고장은 현재 대검찰청에 접수돼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