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워크숍을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사진 박은숙 기자.
전체 253개 지역구 중 기존 지역위원장은 총 280명이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면서 한 지역구에 위원장이 2명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중 재신청을 한 사람은 101명뿐이다.
지역위원장이 되면 공천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지역구에도 여러 명의 경쟁자가 몰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아예 지원자가 없는 지역구가 속출했다. 바른미래당은 신청자격기준을 대거 상향시켰는데도 159명이 신청을 해 ‘의미있는 일’이라고 자평했지만, 당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지역위원장 공모 지원자가 너무 없어서 당에서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에서 직전 지역위원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신청 좀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하다하다 안되니 막판에는 숫자를 채우려고 당 지도부가 자기 측근들에게도 지역위원장 신청을 독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모에는 당연직 지역위원장을 맡는 현역 국회의원들조차 신청을 미뤄 당 지도부의 애를 태웠다. 특히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공모 막바지까지 신청을 하지 않아 탈당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공모 마지막 날에야 신청서류를 접수했다.
현역 의원들이 지역위원장 신청명단에서 대거 빠지면 후폭풍이 생길 것을 우려해 당 지도부가 적극 설득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바른미래당 현역 의원 30명 중 이번에 지역위원장 신청을 한 의원은 21명에 그쳤다.
공모 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졌던 한 바른정당계 의원은 뒤늦게 신청서류를 낸 이유에 대해 “이름만이라도 걸자고 해서 냈다”고 말했다.
신청서류를 내지 않은 의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박선숙 의원이다. 다른 의원들은 ‘국감 때문에 바빠서’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지역구를 정하지 못해서’ 등의 해명이라도 내놨지만 박 의원은 신청서류를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침묵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한때 안철수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됐지만 최근에는 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탈당설도 끊이지 않는다. 박 의원 측은 신청서류를 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탈당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박 의원이 그동안 보여준 정치 행보) 연장선에서 보면 된다”고 답했다.
현역 의원들조차 흔들리고 있는데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 전직 지역위원장은 신청서류를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역위원장을 다시 신청하려 했더니 주변에서 (곧 정계개편이 있을테니) 어차피 몇 달짜리인데 뭐 하러 헛수고 하느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당부한 김해곤 전 바른미래당 이천지역위원장은 “지도부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일부러 신청하지 않았다”면서 “지난 지방선거 때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지지율 미달로) 선거비용 보전도 못 받고 가정파탄 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당원들이 대거 떠났고 지역구가 초토화됐다. 당 지도부는 그런 사람들 붙잡고 밥한 끼라도 사주면서 위로해봤느냐”고 비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에 희망이 보여야 남아 있는 거다. 지역위원장 신청하려면 지역구 인구 0.1% 이상을 (당비 내는) 책임당원으로 모집해오라고 하는데 지금 당 지지율을 보면 누가 신청하겠나. 공짜로 당원 가입하라고 해도 안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평당원모임 관계자는 “원외 위원장들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이 있는데 단체로 지역위원장 신청을 보이콧하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하더라. 그만큼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큰 것”이라면서 “요즘 당에서 행사하면 참석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당 지역조직이 사실상 와해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이번 지역위원장 신청요건으로 지역구 인구의 0.1%를 책임당원으로 모집해오라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에 대한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책임당원 모집을 끝내지 못했어도 지역위원장 신청 접수를 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이에 대해 한 당 관계자는 “물론 책임당원 모집이 쉽지 않겠지만 지난 지방선거를 치러보니 지역조직이 너무 약해 문제였다. 지역위원장이라면 상황이 어렵더라도 책임당원을 모집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바른미래당 지역위원장 모집에는 일부 원외 스타들도 당 지도부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참여하지 않았다. ‘채널A 외부자들’에 고정 출연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장진영 전 동작구을 지역위원장은 재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에서 (임기가 남았는데도) 기존 지역위원장들을 일괄 사퇴시킬때 일언반구도 없었다. 우리가 당에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하는 그런 건 아니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다만 장 전 위원장은 “탈당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당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바른미래당에서 최소 11명이 탈당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바른미래당에서 11명 이상의 의원들이 탈당하게 되면 교섭단체(의석수 20명) 지위를 상실하게 돼 국고보조금도 줄어든다.
불과 몇 달 전 구조조정을 경험한 바른미래당 당직자들은 추가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신화영 바른미래당 노조부위원장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 구조조정 우려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면서도 “만약 추가 인력감축을 시도한다면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 전직 지역위원장은 “당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후 정계개편만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다. 이대로는 바른미래당이 소멸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당 지도부가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너무 느긋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