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라클 노동조합은 34세 배유신 조합원의 사망에 대해 경찰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10월 29일 열었다. 금재은 기자
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는 배 아무개 씨는 지난 8월 19일 일요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 동생 신발이 보이지 않아 외출했나보다 생각하고 주말을 마무리했다. 월요일 아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다. 2년 전 좀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한 동생은 형보다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했다. 배 씨는 월요일 아침에 동생 신발이 없는 것을 보고 동생이 어제 외출해서 안 들어왔거나, 들어왔다가 일찍 출근했나보다 여겼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동생은 주말에 종종 친구들을 만나거나 외출했다. 일에 치여 평소에는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평범한 형제처럼 지내왔다. 평범했던 8월 20일의 월요일은 배 씨에게 풀지 못한 슬픔과 고통으로 남았다.
이날 오전 배 씨는 동생의 회사 상사로부터 “동생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배 씨는 “어제 외출해서 늦잠 자거나 한 것 같다. 연락해보겠다”고 답했다. 34세의 장성한 동생은 가끔 외박했고 친구도 만났기에 하루 회사에 지각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의 회사 상사 한 아무개 팀장은 다급해 보였다. 전화기 너머의 한 팀장은 주소지를 따라 직접 집 앞까지 와있었다. 한 팀장은 “주소 따라 왔는데 집을 못 찾겠다며 주소를 자세히 알려 달라”고 말했고, 곧 집을 찾아 문 앞에서 “유신아! 유신아!”하며 동생 이름을 불렀다.
조금 이상하게 생각한 배 씨는 직장에서 조퇴해 바로 집으로 왔다. 동생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팀장은 “실종신고를 하라”고 말했다. 배 씨는 다 큰 동생이 반나절쯤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실종신고까지 할 것 있겠냐고 생각했지만, 계속 연락이 되지 않자 결국 신고를 했다. 단순한 무단 결근은 유신 씨가 주검으로 발견되며 비극적 사건이 됐다. 유신 씨는 한강 선유도 공원 인근에서 발견됐다.
유신 씨의 사인은 익사로 정해졌다. 단지 사망 당시 물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부검의는 익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이 희박해 수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사망원인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아,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유신 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70일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경찰의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신 씨의 마지막 행적을 좇아보면 19일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수시간 동안 노트북을 켜 무엇인가를 봤다. 밤 10시경 카페를 나선 유신 씨는 선유도 공원 쪽으로 향했지만 그 부근에는 CCTV가 없어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유신 씨가 발견되고 며칠이 지난 뒤에 노트북·휴대폰·태블릿PC 등 소지품이 한강공원 풀숲에서 발견됐다.
별 탈 없이 회사를 다니던 유신 씨가 숨지자 직장 동료들과 주변에서 각종 구설이 쏟아졌다. 해고를 당한 것 아니냐, 노조 파업 참여로 불이익을 당해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 아니냐 등등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배유신 씨의 명확한 사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한국오라클 한 아무개 임원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뒤인 22일 한국오라클 한 임원은 직원들에게 직접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발송했다. 메일에는 “국과수 검시결과 타살 정황으로 볼 수 있는 약물이 검출돼 현재 경찰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수사 진행사항이 공유되지는 않겠지만 확인된 내용에 대해서는 다시 전달 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약물이 검출된 바도 없는데 이와 같은 허위 사실이 공개되자 직원들은 더욱 동요하기 시작했다. 해당 메일을 보낸 한 아무개 상무는 “밑의 직원이 경찰과 유족의 상황을 전해 들어서, 메일을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오라클이 유신 씨의 휴대전화를 위치 추적한 것이 드러나며 논란이 확대됐다. 인사팀에서 휴대폰 위치추적을 위한 법인 등기부등본과 위임장을 발급하고, 오라클은 두 차례 유신 씨의 휴대폰을 위치추적했다. 직원이 무단결근을 한다고 해서 팀장이 직접 직원 집에 찾아가고, 휴대폰 위치추적을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무단결근 때문에 위치추적을 한 것도 문제지만, 사측이 사망을 인지한 뒤에도 휴대폰을 위치 추적한 것은 그 안에 무슨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어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라클 안팎에서는 회사와 유신 씨의 죽음에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잡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앞의 한 상무는 “회사에 여러 풍문이 돌자 사실 전달을 위해 전송했고, 직원이 무단결근해 휴대폰을 위치추적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오라클 노조는 허위사실을 보내 유족과 직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을 벌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무단 결근한 직원 휴대폰을 위치추적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 또 사망을 확인한 뒤에도 그 휴대폰을 찾기 위해 위치추적을 추가적으로 시도했다”고 비판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망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최소한의 사실조차 가려지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가 미온적이고 수사의지가 없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한국오라클 노조는 결국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10월 29일 열었고, 기자회견 직후 마포경찰서는 급작스럽게 국과수 결과를 유족에게 알렸다. 부검 결과상 약물은 검출되지 않고, 알코올 성분이 조금 나왔다. 하지만 식당에서부터 카페까지 수시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70일 동안 마포경찰서는 참고인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다가 이제 막 태블릿 PC와 휴대폰 포렌식 수사 청구에 나섰다.
유신 씨의 방에서는 서 아무개 씨와 맺은 채무계약서가 발견됐는데 유족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 조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2013년부터 유신 씨와 알고 지낸 서 씨는 2016년 6200만 원을 빌리고 연이율 8%를 지불하기로 했으나 이를 지급하지 않고, 채무를 상환하지 않았다. 경찰은 참고인 출석요청서를 보냈지만 서 씨의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아 요청서가 되돌아와 조사를 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유족은 서 씨의 직장으로 찾아갔지만 직장이 사라진 뒤여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어렵게 기자와 연락이 된 서 씨는 “채무라니, 돈을 빌린 사실이 없으며 최근엔 만난 적도 없다. 그 분(배유신 씨)과 관련해 내가 대답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유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이 덮이는 것이다. 진상규명을 위해 기댈 곳은 경찰뿐인 유족은 “경찰이 수사관을 추가 투입하고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다. 믿고 기다려볼 뿐”이라며 “동생의 죽음과 진실이 밝혀져야 우리도 제 자리로 돌아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