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온 신경은 ‘2019년 예산 따내기’에 쏠려 있다. 자신의 지역구에 치적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위해 때로는 정당을 넘어기도 하고 때로는 지역에 매몰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9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여야 정파 관련 없이 이들은 ‘홀대론’을 앞세우며 동정표를 호소하고 있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호남홀대론’을, TK(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TK홀대론’을 주장 중이다.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수성구을)을 비롯한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소속 20명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월 현 정부가 예산심의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예산을 줄이는 등 차별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추경호 의원(대구 달성군)도 8월 31일부터 10월 23일까지 전국 17개 시·도가 자체적으로 취합한 국비예산 정부안 반영 현황을 분석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박근혜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편성한 2017년 예산대비 TK 예산은 25%가량 급감한 반면, 수도권은 32.5%로 폭증했다고 밝혔다.
호남 홀대론은 민주평화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새만금 태양광‧풍력단지’ 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평화당은 ‘고작 이거냐’라는 반응으로 반발하고 있다. 정동영 대표는 “문 대통령은 환황해 경제권의 전략거점으로 새만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비전을 선포했다”며 “하지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지원 의원은 “호남 무시를 넘어 기만하는 일”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선 호남 홀대론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이자 호남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실 관계자는 “누구나 골고루 포용적으로 예산을 쓸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꼭 필요한 예산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지난해에는 전북도에 사상 최대 예산 증가율이 있었다”고 호남 홀대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민주당 아닌 다른 당의 호남 의원들이나) 다들 그렇게 주장하지, 우리는 그렇지 않다.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들에 맞춰서 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홀대론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예산을 따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호남 지역구 타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평화당을 호남에 갇히게 해서 국민에게 ‘호남당’으로 비추게 하려는 수작”이라며 “민주당은 덩치가 크니 호남을 품어주면 될 일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호남이 소외됐다는 주장은 호남 의원들의 전반적인 정서”라며 “물론 모든 의원들이 지역구를 챙기려는 건 다 똑같지만, 호남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국회는 당리당략에 휘말려 정쟁을 일삼지만, 막상 예산 정국에 들어가면 자신의 지역구 예산안을 위해 정당을 초월하며 합심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정현 무소속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기와 맞춰 한국당을 탈당했다. 그렇게 자신의 정치 생명에 흠집을 얻은 이 의원은 이후 상임위 활동 정도만 할 뿐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예산 정국을 앞둔 시점에서 이 의원은 지역구 사업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과 몇몇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31일 ‘세종역’ 포함 호남 KTX 단거리노선 신설 의원간담회에 출석한 인물은 민주당 송갑석 의원, 바른미래당 김동철·박주선·주승용·김관영·정운천 의원, 평화당 정동영·박지원·유성엽·장병완·황주홍·김경진·이용주·정인화·최경환 의원, 무소속 이정현·이용호 의원이다. 이들을 두고 일부는 ‘지역구 치적 쌓기가 향후 민주당‧한국당 입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용호 의원이 호남KTX 사업 등으로 지역 기반을 탄탄히 해둬야 향후 민주당 입당도 수월하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이정현 의원도 한국당 복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현 지역구 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예상정국에서 호남KTX를 둘러싸고 ‘이해찬 대 정우택’ 대결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제기됐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세종특별자치시에 KTX역 신설을 20대 총선 때부터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와는 별개로 호남 의원들은 호남선 KTX 직선화를 주장했는데, 마침 이 노선에 세종시를 경유하자는 방안이 추가되며 ‘이해찬-호남의원’이 한목소리를 내는 모양새가 됐다.
역시나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충북도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다. 이들은 “세종역 신설과 천안∼공주 KTX 호남선 신설은 명분과 실리가 없는 부당한 정치적 주장”이라며 맞서고 있다. 반대를 외치는 9명 중 3명은 한국당 소속이다. 따라서 ‘반(反)호남KTX’와 ‘호남KTX’가 한국당과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처럼 비춰지는 모습이다. 호남KTX에는 당초부터 ‘KTX세종역’을 주장하던 이해찬 대표가 선두에 서고, ‘반호남KTX’에는 정우택 의원(충북 청주시상당구)이 내년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승산을 거두면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올해 예산국회는 호남KTX를 둘러싼 대결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매년 예산정국이 되면 서로 피해자를 자처하며 ‘○○ 홀대론’을 앞세운다. 이에 대해 한 국회 관계자는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일 때 추진할 수 있는 타당성을 내세워야지 특정 지역에서 차별받는 것처럼 표현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사업 필요성을 주장하고 추진해야 한다. 목적이 아닌 다른 요소를 추가해 갈등을 유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