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그룹으로 거듭난 방탄소년단과 비교선상에 놓인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이미 방탄소년단은 ‘신계’(神界)에 들어선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나머지 그룹이 신계 아래 ‘인간계’(人間界)에서 경쟁을 펼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제2의 방탄소년단’을 꿈꾼다. 방탄소년단이 K-팝에 대한 위상을 높여놨고, 팬층도 두터워졌기 때문에 후배 K-팝 그룹들은 더 잘 닦인 길을 달리며 고속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과연 방탄소년단의 뒤를 이을 그룹은 누가 있을까?
# 스티브 아오키 “몬스타엑스와 작업해보고 싶어”
세계적인 DJ 스티브 아오키(Steven Hiroyuki Aoki)는 지난달 방탄소년단과 협업곡 ‘웨이스트 잇 온 미’(Waste It On Me)를 발표했다. 전세계 음악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스티브 아오키의 한마디는 파급력이 크다. 글로벌 음악 시장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그는 왜 몬스타엑스를 꼭 집어 이야기했을까?
몬스타엑스. 사진=몬스타엑스 공식 홈페이지
7인조 보이그룹 몬스타엑스는 최근 두 번째 월드투어를 마쳤다. 몇몇 그룹의 활동이 아시아에 국한된 것에 비해 몬스타엑스는 북남미와 유럽까지 섭렵하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몬스타엑스는 최근에는 미국 유명 라디오 방송국인 ‘아이하트라디오(iHeartRadio)’에서 개최하는 ‘징글볼(Jingle Ball)’ 투어에 한국 아이돌 그룹 최초로 초청받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투어 공연인 ‘징글볼’에는 션 멘데스, 체인스모커스, 칼리드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대거 참여하는 행사다. 몬스타엑스는 한국을 대표해 이들과 함께 11월부터 미국 LA와 샌프란시스코 등 6개 도시를 돈다. 그들은 조심스러워하지만, 외국 매체들이 몬스타엑스를 ‘포스트 방탄소년단’으로 점치는 이유다.
그들은 최근 정규 2집 ‘테이크1. 아 유 데어?’(TAKE1. ARE YOU THERE?)를 발표하며 연 기자간담회에서 “그런 평가를 받으면 부담감도 느끼지만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앞서 많은 선배님들이 길을 만들어줘서 쉽게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 월드투어를 진행할 때만 해도 외국에서 2∼3개 매체에서 관심을 보이는 정도였는데, 이번 콘서트 때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는 분들이 해외의 유명 작곡가, PD 등 30∼35명은 됐던 것 같다”고 전했다.
아이돌의 명가라 불리는 SM엔터테인먼트의 차세대 보이그룹인 NCT의 유닛 NCT127 역시 ‘포스트 방탄소년단’을 꿈꿀 만한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그들이 10월 1일 발표한 첫 정규 앨범 ‘NCT #127 Regular-Irregular’는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86위를 차지했다. 이는 K-팝 보이그룹 역대 2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또한 NCT127은 미국 ABC ‘미키마우스 90주년 기념 콘서트(Mickey’s 90th Spectacular)’에 아시아 가수로는 유일하게 출연했다. 이 콘서트에 참석한 미국 마일즈 브라운(Miles Brown)은 “빌보드 이머징 아티스트 1위에 오른 최초의 K-팝 아티스트”라고 NCT127을 소개하며 “제가 NCT127에 멤버로 들어가도 될까요?”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NCT127. 사진=NCT127 공식 페이스북
한 가요계 관계자는 “방탄소년단은 현재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후배 그룹들이 ‘포스트 방탄소년단’이라 불리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고, 그 자체만으로 팬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향후 K-팝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방탄소년단에 버금가는 그룹이 계속 나와야 하고, 적극적으로 가능성 있는 후배 그룹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성과를 조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방탄소년단와 어깨를 견줄 걸그룹은?
현 한국 가요 시장의 주도권은 아이돌 그룹이 쥐고 있고,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다시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무대를 전세계로 넓히면 상대적으로 걸그룹의 활약상이 보이그룹에 미치지 못한다. 여러 걸그룹들이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미국 유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정점을 찍은 소녀시대 이후에는 뚜렷한 족적을 보이는 걸그룹을 찾아보긴 어렵다.
현재 가장 전망이 밝은 걸그룹은 블랙핑크다. 블랙핑크와 함께 YG엔터테인먼트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2NE1의 멤버 씨엘은 지난 2016년 빌보드 핫 100 차트 94위에 진입했다. 그는 꾸준히 미국 시장을 노크하며 스티브 아오키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YG엔터테인먼트의 노하우와 인맥을 바탕으로 블랙핑크는 인터스코프와 계약한 뒤 지난 9월 발표한 ‘뚜두뚜두’가 발매 첫 주 핫 100 차트 55위에 진입했다. 역대 빌보드에 도전장을 냈던 K-팝 걸그룹 중 최고 성적이다. 또한 두아 리파와 함께 부른 ‘키스 앤 메이크 업’은 발매 첫 주 93위에 랭크됐다.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도 블랙핑크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앨범 ‘Square Up’은 빌보드 200에서 40위에 올랐다.
‘제32회 골든디스크 음원부문’ 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한 블랙핑크. 특별취재단
현재까지 블랙핑크 외에는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걸그룹은 찾아보기 어렵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09년 빌보드 싱글 차트 76위에 오른 원더걸스의 미국 무대에 진출시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를 맛본 후 아직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원더걸스의 명맥을 잇는 걸그룹인 트와이스는 국내에서 ‘1등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한 후 서양보다는 일본 시장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다양한 아티스트와 폭넓은 유통망, 그리고 자본력을 갖춘 3대 기획사의 경우 소속 가수들의 해외 진출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소속사의 영향력이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며 “그보다는 세계 음악 시장을 읽는 기획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