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국시리즈 MVP 해태 이종범. 일요신문 DB
팀이 우승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정규시즌 MVP와 달리, 한국시리즈 MVP는 혼자 힘으로는 따낼 수 없는 타이틀이다. 현역 생활 내내 우승을 한 번도 못해보고 은퇴하는 선수도 많은데, 여기서 한국시리즈 MVP까지 경험하는 것은 하늘이 점지해야 가능한 일이다. 과거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하늘의 별 따기’에 성공한 MVP들이 지금까지 조명 받는 이유다.
1994년 한국시리즈 MVP LG 김용수. 연합뉴스
한 번 받기도 어려운 한국시리즈 MVP를 두 번이나 수상한 선수는 지난해까지 단 네 명만 나왔다. LG 김용수(1990·1994년), 해태 이종범(1993·1997년), 현대 정민태(1998·2003년), 삼성 오승환(2005·2011년). 모두 KBO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간판선수들이다.
김용수는 역대 최초 한국시리즈 MVP 2회 수상자로 기록됐다.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마무리를 각각 소화하면서 일군 업적이라 더 대단하다. 1990년에는 1차전과 4차전에 모두 선발투수로 나서 4승 가운데 2승을 따냈다. 14이닝 동안 자책점은 2점뿐. 완벽한 MVP였다. 두 번째 수상이던 1994년엔 4경기 가운데 3경기에 등판해 1차전 구원승과 3·4차전 2세이브를 올렸다. 3차전(5-4)과 4차전(3-2) 모두 1점 차 터프 세이브. 총 8⅓이닝을 던지면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그가 오래도록 LG의 ‘전설’로 기억되는 이유다.
해태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종범은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플레이를 펼쳤다. 1993년 한국시리즈 타격 성적은 타율 0.310(29타수 7안타) 4타점으로 평범했지만, 도루를 무려 7개나 하면서 상대 배터리와 내야를 교란했다. 무엇보다 우승팀을 최종 결정지은 7차전에서 4타수 3안타 2도루로 펄펄 날았다. 이종범은 1997년에도 3차전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3홈런 4타점 2도루로 맹활약했다. 김용수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MVP 2관왕’이 됐다.
# 현대와 삼성, 정민태와 오승환
1998년 MVP인 현대 정민태는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등판해 2승을 챙겼고, 총 3경기에서 17⅔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0.51을 기록했다. 실점이 단 1점뿐이다. 기자단 투표에서 유효투표수 50표 가운데 49표를 쓸어갔을 만큼 이견이 없는 MVP였다. 정민태는 5년 뒤인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 4차전, 7차전에 세 차례 선발 등판해 모두 승리투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7차전은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총 21⅓이닝을 던져 자책점은 4점뿐. 평균자책점이 1.69였다. 또 다시 한국시리즈 MVP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003년 한국시리즈 MVP 현대 정민태. 일요신문 DB
이뿐 아니다. 1998년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2003년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포스트시즌 8연승을 달려 역대 최다 연승 기록도 갖고 있다. 또 포스트시즌에서 도합 115⅓이닝을 던졌다. 준플레이오프 6⅔이닝, 플레이오프 35이닝, 한국시리즈 73⅔이닝을 소화했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가 전성기를 보내는 동안,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가 얼마나 최강팀으로 군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숫자다.
삼성 오승환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신인이던 2005년 한국시리즈 4경기 가운데 3경기에 등판해 총 7이닝을 던졌다.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00. 큰 무대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돌부처’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두 번째 MVP를 수상한 2011년에는 이미 KBO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로 올라선 뒤였다. 5경기 가운데 팀이 이긴 4경기에 모두 나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3세이브를 따냈다. 5⅔이닝을 던져 8탈삼진 무자책점. 이번에도 평균자책점은 0.00이었다. 심지어 3경기 모두 터프세이브였다. 1차전에서는 2점 차, 2차전과 5차전에선 1점 차 살얼음판 승리를 각각 지켰다. 4차전을 제외하고는 양 팀 모두 매 경기 2점 이하 득점을 올렸을 정도로 투수의 힘이 중요했던 시리즈다. 오승환의 활약은 그래서 더 돋보였다. 2005년 오승환 이후 5년 연속 타자들이 한국시리즈 MVP를 가져갔지만, 그해 오승환으로 인해 6년 만에 다시 투수 MVP가 나왔다.
# 임팩트는 역시 홈런
한국시리즈 MVP는 사실 누적 성적이 아닌 ‘임팩트’ 싸움이다. 얼마나 더 열심히 오래 뛰었는지보다 얼마나 더 결정적인 활약을 했는지에 표심이 몰린다. 특히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역시 결정적인 홈런 한 방이다.
1982년 초대 한국시리즈 MVP의 주인공인 OB 외야수 김유동이 그랬다. 6차전에서 역대 최초 한국시리즈 그랜드슬램을 터트렸다. 타율 4할에 홈런 3개로 12타점. 시리즈 후반인 5차전과 6차전에서 홈런 세 방을 몰아친 덕분에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6차전 완투승을 거둔 에이스 박철순을 MVP 투표에서 눌렀다.
2000년 한국시리즈 MVP 현대 톤 퀸란. 연합뉴스
2000년 한국시리즈에선 현대 외국인 타자 톰 퀸란과 두산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가 나란히 홈런 세 개씩을 때려내면서 치열한 MVP 대결을 펼쳤다. 결국 가장 중요한 7차전에서 홈런 두 개와 2루타 1개로 6타점을 올린 퀸란이 팀 우승과 함께 MVP가 됐다. 우즈는 이듬해인 2001년 6경기에서 홈런 4개를 몰아치면서 한을 풀었다. 우승 확정 경기인 6차전에선 비거리 145m짜리 역전 장외 홈런까지 날려 표심에 쐐기를 박았다.
2009년 MVP 역시 역대 유일무이한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결승홈런을 터트린 KIA 나지완의 차지였다. 그는 6차전까지 홈런 없이 단 3안타만 쳤을 정도로 부진했지만, 7차전에서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 방을 날리면서 다른 모든 선수의 활약을 잊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2002년 6차전에서 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친 삼성 마해영, 2008년 3차전에서 결승홈런을 날린 SK 최정, 2012년 1차전에서 결승포를 쏘아 올린 삼성 이승엽이 모두 홈런의 힘으로 MVP에 올랐다.
# 넘쳐나는 비하인드 스토리
파워 넘치는 어퍼스윙의 대명사였던 해태 김봉연은 1983년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타율 0.474(19타수 9안타) 1홈런 8타점 맹활약을 펼쳐 MVP가 됐다. 이 성적 뒤에는 엄청난 투혼이 숨어 있었다. 그는 바로 그 해 친구 부부와 여행을 갔다가 승용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동승자가 사망할 정도로 큰 사고였고, 몸 전체를 300바늘 넘게 꿰매는 대형 수술을 받아야 했다. 선수 생활 연장조차 불투명했다. 하지만 콧수염을 길러 얼굴에 난 수술 자국을 가리고 사고 한 달 만에 다시 타석에 섰다. 가을에는 끝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2010년 한국시리즈 MVP SK 박정권. 일요신문 DB
OB 김민호는 1995년 한국시리즈 MVP에서 7차전까지 총 12안타를 터트려 당시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다. 또 도루도 6개나 해내는 기동력을 과시했다. 그는 당시 한국시리즈 종료 사흘 후 동갑내기 연인과 결혼식을 앞둔 상황이었다. 우승은 물론 MVP로도 선정돼 예비 신부에게 최고의 결혼 선물을 안겼다.
SK 박정권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 투표 끝에 MVP를 안았다. SK가 삼성에 단 1패도 하지 않고 4연승으로 끝난 시리즈라 팀 안에 MVP 라이벌이 많았다. 선수 전원을 고르게 활용하는 SK의 ‘토털 베이스볼’이 정점에 올랐던 시기라 더 그랬다. 결국 박정권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해 재투표까지 벌어졌다. 2차 투표에선 총 유효투표수 71표 가운데 38표를 얻어 박경완(32표)을 제치고 MVP에 올랐다. 박정권의 성적은 타율 0.357(14타수 5안타) 1홈런 6타점. 받을 만했다.
지난 시즌에는 KIA 양현종이 극적으로 MVP 트로피를 받아갔다. 마지막 경기인 5차전 7회까지만 해도 MVP 표심은 외국인 타자 로저 버나디나 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7회초까지 KIA가 두산에 7-0으로 앞선 상황. 5경기에 모두 나와 결승타를 두 차례 때려내고 5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버나디나는 최적의 MVP 후보였다. 하지만 두산이 7회말 무려 6점을 뽑아 한 점 차로 추격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2차전에서 완봉승을 올린 에이스 양현종이 9회 마운드에 다시 올랐기 때문이다. 살얼음판 리드 속에 수비 실책으로 1사 만루까지 몰렸지만, 양현종은 끝내 두산 3루 주자의 득점을 막고 무사히 7-6 스코어를 지켜냈다. MVP의 얼굴은 그 순간 바뀌었다. 양현종은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일본시리즈 MVP’ 가이 스토리…‘6샷 6킬’ 도루저지로 수상 퍼시픽리그 최강자 소프트뱅크는 한국보다 한발 먼저 끝난 2018 일본시리즈에서 센트럴리그 우승팀 히로시마를 꺾고 우승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2연패이자 최근 5년 사이에 벌써 네 번째 우승이다. 소프트뱅크는 2010년 이후 명실상부한 일본 프로야구 최강팀이다. 지난해까지 8년간 네 차례(2011년, 2014·2015년, 2017년) 퍼시픽리그와 일본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는 세이부에 리그 우승을 내주고 2위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클라이맥스시리즈에서 니혼햄과 세이부를 차례로 꺾고 올라와 결국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런 소프트뱅크가 배출한 올해 일본시리즈 MVP는 외국인 에이스 릭 밴덴헐크도, 마무리 투수 모리 유이토도, ‘타격의 달인’ 야나기타 유키도 아닌 포수 가이 다쿠야(26)였다. 일본시리즈 타율은 0.143(14타수 2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상대가 시도한 도루를 6차례 모두 막아 내면서 포스트시즌 연속 도루 저지 신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승리를 확정한 6차전에서 두 차례 2루 도루를 막아낸 게 결정적이었다. 1회 1사 1루서 다나카 고스케의 2루 도루를 막았고, 2회 2사 1·3루서는 1루 주자 아베 토모히로를 2루에서 아웃시켰다. 히로시마는 올해 센트럴리그 팀 도루 1위(95개)에 오른 팀이다. 기동력이 주무기다. 그래서 더 가이의 존재감이 컸다. 일본 언론은 일제히 ‘6샷 6킬’이라는 제하로 “가이의 도루 저지가 경기 흐름을 바꿨다”고 박수를 보냈다. 이미 정규시즌 도루저지율 0.447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던 가이다. 올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도루저지율 4할을 넘긴 포수는 가이뿐이다. 송구가 빠를 뿐 아니라 ‘제구력’까지 정확하다는 게 가장 강점이다. 베이스를 커버하고 있는 유격수나 2루수의 무릎 높이로 정확하게 공을 던질 줄 안다. 육성 선수 출신인 가이가 ‘가이 캐넌’이라 불릴 만큼 특급 포수로 성장한 비결이다. 포수가 ‘수비’ 능력으로 MVP에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포수 MVP는 단 두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1991년 해태 장채근과 2016년 두산 양의지다. 장채근은 4경기에서 타율 0.467(15타수 7안타) 불방망이를 휘두르면서 8타점을 올린 공을 더 인정받았다. ‘포수’의 능력으로 MVP를 받은 선수는 사실상 양의지가 최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의지는 당시 1차전 더스틴 니퍼트, 2차전 장원준, 3차전 마이클 보우덴, 4차전 유희관까지 두산 선발진의 ‘판타스틱 4’와 완벽한 호흡을 맞췄다. 두산 마운드는 양의지가 안방을 지킨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단 2점만 내줬다. 양의지의 능수능란한 리드에 NC 타선이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그렇게 25년 만에 다시 포수 MVP가 탄생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