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치인들이 유튜브 정치에 몰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총선을 앞두고 과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유튜브 채널 캡처.
대부분의 의원 유튜브 채널에는 국정감사 또는 상임위 활동을 담은 영상들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야당의 경우 정부 관계자에게 질의하며 야단치는 부분을 하이라이트로 편집한 영상이 많이 올라오는 편이다. 당 대표를 지낸 의원들의 채널에는 오전 정당 회의 발언 모습 영상도 주로 게시된다.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는 그동안 회의 발언 장면을 올렸고,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과거 자신이 새누리당 대표를 지내던 시점부터 대표 발언을 편집해 올렸다.
또한 의원들은 재보궐선거나 총선,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튜브 업로드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4년 전부터 뜸해진 ‘진표TV’ 유튜브 활동을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재개했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의 ‘최재성TV’도 꾸준히 영상을 올리지만, 지난 6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유세현장을 누비는 영상이 수두룩하게 올라왔다.
한국당에선 전희경 의원의 채널 ‘전희경과 자유의 힘’이 약 1만 7000명의 구독자를 모아 인기를 얻었고 민주당에선 손혜원‧박주민‧금태섭 의원이 꾸준히 활약을 하고 있다. 손혜원 의원의 ‘손혜원’ 채널은 기획 제작된 영상을 주로 업로드한다. 전우용 역사학자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등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전문적이고 구체적이며 유익한 정보들을 전한다. 박주민 의원의 유튜브 채널은 이미 ‘돈 달라는 남자’ 시리즈로 유명하다. 박 의원은 유튜브를 통해 후원금을 요청하기도 하고, 토지공개념과 특별재판부 설치법 등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을 독자의 시각에서 설명한다.
금태섭 의원의 채널은 국회뿐만이 아니라 법조계 전면의 주요 현안 및 이슈들을 조명한다. 이 채널에는 ‘93초 브리핑’이 주요 콘텐츠인데, 금태섭 의원실 관계자는 “기존 방식의 보도자료 배포보다는 유튜브와 영상이 접근성이 쉽고 이해하기도 좋아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외 야당에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심상정 공식 유튜브’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방송 CF를 패러디한 영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심 의원 영상들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폭풍 사자후’ 발언 영상들이다. 조회수 약 256만 회를 기록하고 댓글 약 2000개가 달린 한 영상은 이 채널에서 인기 1위 영상이다. 영상 속 심 의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임금피크제’ 관련 질의를 던진다. 심 의원은 “장관은 왜 다 1억 2000만 원씩 가져 가나. 국회의원은 왜 1억 4000만 원을 받아야 하냐. 연봉 5000만~6000만 원 받는 늙은 노동자들, 3000만 원짜리 청년 연봉 만들어내라고 (요구)하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고액연봉 받아 가냐”라며 “허리띠 조르는 게 아니라 목 조르는 거다. 노동자 목 조르는 노동부 장관은 자격 없다”고 공격한다.
외국인들까지도 찬사를 보낸 영상이 있다. ‘심상정 역대급 처치, 최고의 플레이 오버워치’에서도 심 의원은 장관들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다. 이 영상 댓글에는 외국인들이 영어로 “오버워치(PC게임) 때문에 영상을 보긴 했는데,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심 의원에게 투표하겠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인을 호되게 질타하는 것 같다”, “아마 다음 대통령이 되지 않겠냐”, “멋지다” 등의 칭찬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자신의 채널을 의정활동 영상으로 채우곤 하지만, 종종 가벼운 영상들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유행 콘텐츠들을 참고해 젊은 유권자에게 어필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유튜브 생방송 ‘삼겹살 야식쇼’에 출연해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진행자와 함께 대담을 나눴다. 이 영상을 통해 김 의원은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해명하기도 하고, 전 대통령들을 평가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도중에 소주잔을 부딪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원유철 한국당 의원도 생방송을 통해 ‘불닭볶음면’ 먹방을 보여줬고, 시청자들은 “잘먹게 생겼다”고 농담도 건넸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최근 유행 콘텐츠인 ‘브이로그(vlog, 블로그와 비디오의 합성어)’를 이용해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천정배의 가방에는 무엇이?’라는 제목으로 가방 속을 공개했다. 티머니(교통카드)와 블루투스 이어폰, 기차 승차증, 책 등을 보여주며 상세한 설명도 덧붙인다. 또, 비타민을 보여주며 “나이가 들어서 비타민을 한 움큼씩 먹어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7알”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의 유튜브 ‘브이로그’ 캡처.
심재철 한국당 의원의 채널에는 색소폰을 직접 연주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심 의원의 취미는 색소폰 연주로 알려져 있다. 또, 자신의 반려동물을 소개하는 의원들도 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의 ‘조응천중계석’은 고양이에게 간식을 먹이는 영상을 짧게 촬영해 올렸다. 추미애 민주당 전 대표도 ‘추미애, 강아지 껴안고 눈물 흘린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자신의 나이든 반려견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추 전 대표는 강아지 ‘테리’의 배설물을 치우는 모습과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가감 없이 보여준다. 추 전 대표는 강아지에게 “아프지 마. 모두 다 너를 사랑한단다. 가족들 모두 가슴이 아프다”라며 “우리 아이들과 추억을 공유했고, 아이들을 위로해주고 힘들 땐 기쁨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작별할 시간이 온 것 같다. 편해지면 좋겠는데 밤이 되면 아프다고 짖는다. 편하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늘 바쁜 엄마(추 전 대표) 때문에 의지할 데가 별로 없다”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연일 지나친 ‘우클릭’ 발언으로 당 안팎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이 의원의 정치 행보를 응원하는 목소리들이 줄을 잇는다. 본격적으로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 지 2개월이 조금 넘었지만, 구독자는 벌써 약 3만 명이다. 이 의원은 “(기존의) 방송이 공정하지 못하지 않느냐. 편집되고 나가는 거 보고 속상해하느니 내가 내 방송을 직접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취지를 밝혔다. 영상의 댓글에는 “이언주 의원님 잘하고 계시네요. 응원합니다”, “이언주 의원님 파이팅”, “지지합니다” 등의 찬사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이언주 의원은 전희경 한국당 의원과 최근 보수 진영에서 유행하는 ‘목구멍챌린지’에 참여했다.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냉면 발언’ 논란을 풍자하기 위해 냉면을 릴레이로 먹는 것이다.
의원들의 유튜브 홍보 전략에 의원들과 유권자들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지만, 일각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국회 직원들의 익명 게시판인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입법보조원이나 인턴 구하면서 포토샵, 프리미어, 베가스, 애프터이펙트 실력을 요구하는 걸 볼 때마다 어이가 없다”,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작업만 맡기는 홍보 인턴 비서도 참 문제다. 국민은 정책 국회를 원하는데 인턴비서에게 디자인만 맡길 거라면 차라리 외주를 주라”는 비판도 나왔다. 정책보다는 홍보에만 치중하고, 정책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동영상 제작만 맡겨 본연의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최경철 정치평론가는 “유튜브 정치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나와서 정치인들에게 다양한 정치마케팅, 유튜브 컨설팅, 1인 미디어 기획 등을 하며 관련 시장이 크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특히 총선을 앞두고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