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업계에서 오랜 기간 종사해온 한 관계자의 얘기다. 몰카와 리벤지포르노 등 불법 음란물의 천국으로 알려진 웹하드 업계는 성인업계가 만든 합법적인 성인 콘텐츠의 주요 유통 경로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게임,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 등의 유통 경로로 급부상해 오랜 기간 부침과 성장을 거듭한 웹하드 업계는 엉뚱하게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 갑질 행각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다. 그동안 몰카와 리벤지포르노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이 거듭 웹하드 업계 관련 의혹을 제기해 왔지만 사회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웹하드 업계를 둘러싼 검은 그림자가 업계 1, 2위 사이트의 실소유주인 양 회장을 통해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왔다.
#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어난 꽃
정확한 명칭은 ‘파일 공유 사이트’다. 개인 컴퓨터가 아닌 웹상의 저장 공간에 데이터를 보관하고 이를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웹하드’라 불린다. 그렇지만 사실 웹하드는 2000년대 초반 데이콤에서 제공하기 시작한 사이트의 이름이었고 이 서비스는 지금도 엘지유플러스에서 유지되고 있다. 파일 공유도 가능하지만 개인적인 범주에서 이뤄지는 터라 위디스크 등 파일 공유 사이트와는 다른 범주의 서비스다. PC가 다운돼 PC에 저장돼 있던 사진, 주소록, 각종 문서 파일 등 모든 데이터가 날아가는 황당한 사건과 같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제공되는 인터넷 하드디스크라는 개념이 바로 웹하드의 시작이었다. 2002년 즈음 웹하드는 월 2000원에 100MB, 1만 3000원으로 1GB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고 당시 웹하드 유료 이용자수는 50여만 명 정도였다.
위디스크 홈페이지 화면
사실 당시 웹 파일 공유 시장은 한창 전쟁 중이었다. 동영상 파일에 비해 훨씬 크기가 작아 이미 손쉽게 공유가 이뤄지고 있던 mp3 음악 파일 때문이었다. 국내에선 소리바다, 해외에선 웹스터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렇지만 2000년 초반 이런 무료 음악 파일 공유 사이트에 대한 음반회사들의 저작권 침해 소송이 이어졌고 결국 유료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처럼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사이트와 음반 업계의 저작권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파일 공유 사이트들이다. mp3와 같은 음악 파일은 물론 훨씬 큰 동영상 파일이나 게임 파일 등 모든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은 한국의 IT 벤처 업체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다. 그만큼 한국의 IT는 눈부신 초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각 가정으로 보급되면서 데이터 공유 환경도 나날이 개선됐다. 90년대 후반 mp3 파일 형태의 음악 파일의 웹 공유가 먼저 이뤄진 까닭은 편당 700MB 이상이나 되는 영화 동영상 파일을 웹으로 공유할 만큼 IT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탓이다. 그렇지만 IT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초고속 통신망까지 더해지면서 업로드와 다운로드 속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런 기술 발전을 통해 파일 공유 사이트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 영화계와의 1차 대전, 방송계와의 2차 대전
지금은 웹하드 업계라 불리지만 당시만 해도 웹폴더 업계라는 표현이 더 흔하게 활용되던 파일 공유 사이트의 영향력은 앞서 저작권 분쟁을 야기한 무료 음악 파일 공유 사이트와는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영화계는 물론이고 방송계와 게임업계로 파일 공유의 영역을 확산됐다.
지난 2003년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아타리코리아, EA 등 외국 게임 직배사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해 화제가 됐다. 이미 2002년 사상 최대의 불황을 겪은 PC게임 시장 규모는 2003년 다시 2002년의 60% 수준으로 축소됐다. 당시에도 불법소프트웨어 일제단속이 이뤄질 정도로 단속이 심했지만 사무용 소프트웨어에 국한되는 사이 PC게임 프로그램이 파일 공유 사이트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영화와 방송은 2차 판권 시장이 붕괴됐다. 한국 사회에서 비디오 대여점이 대거 사라진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다. 특히 외국 영화의 경우 해외에서 이미 개봉해 DVD가 출시된 경우 국내 개봉 전에 이미 영화 파일이 공유돼 버렸다. 이는 극장가에서 외국 영화 개봉이 크게 줄어드는 계기가 됐고 이제는 블록버스터 대작 외화가 아예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을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파일노리 홈페이지 화면
저작권의 개념이 모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웹하드 업체들만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상황이 수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2000년대 초중반부터 관련 문제 제기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웹하드 업체들은 개인 사이에 파일 공유가 이뤄지는 P2P 사이트라는 막강한 보호막 아래 있었다. P2P 사이트의 심각성이 더욱 도드라지는 분위기에서 웹하드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저작권 보호와 음란물 유통 방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홍보를 거듭해왔다.
결국 2008년 영화인협의회는 불법복제 영화를 유통시킨 대형 웹하드 8곳을 상대로 영화 무단공유 및 유포 행위를 중단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나우콤(클럽박스, 피디박스), KTH(아이디스크), 소프트라인(토토디스크), 미디어네트웍스(엠파일), 한국유비쿼터스기술센터(엔디스크), 유지인터렉티브(와와디스크), 아이서브(폴더플러스) 그리고 이지원(위디스크) 등이 당시 피소됐다.
이들 8개 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졌고 법원도 웹하드 업체의 형사 책임을 인정했다. 나우콤 문 아무개 대표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으며 다른 업체의 대표들도 대부분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수사 결과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8개 업체 가운데 6곳이 헤비업로더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영화 불법 유통에 적극 관여해왔다는 부분이었다.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웹하드 업체들의 홍보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공중파 방송 3사가 웹하드 업체와 P2P 사이트 등 79개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내용증명을 발송하며 저작권 침해 중지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웹하드 업체들은 저작권을 보호하는 합법적인 콘텐츠 유통 방식을 도입한다. 영화나 드라마 등 저작권이 분명한 영상물의 경우 수입의 70% 정도를 저작권료로 제공하는 방식이 도입된 것. 소위 말하는 ‘제휴 콘텐츠’가 웹하드 시장에 등장해 안착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즈음이다. 이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 등의 2차 판권 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웹하드 업계의 화려한 날들이 막을 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양진호 회장의 구속은 오히려 전성시대의 서막
2008년 영화인협의회가 대형 웹하드 업체 8곳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당시 언론이 가장 앞서 소개한 회사는 클럽박스와 피디박스를 운영하던 나우콤이었으며 실제로 나우콤 대표가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소개된 업체는 위디스크를 운영하던 이지원이었다. 2011년 2월 기준으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월간 UV(순방문자수) 순위는 9위와 18위였다. 그렇지만 몇 년 뒤 이지원은 웹하드 업계의 최강자로 거듭난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2011년 양진호 회장이 구속된 사건을 주목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11월 7일 오후 폭행과 강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연합뉴스
2011년 8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웹하드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2곳의 실질 운영자 양진호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업로드 전문업체 ‘누리진’의 바지사장도 구속됐고 헤비업로더 등 11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회사 차원에서 대량 업로드 프로그램까지 이용해 직접 업로드한 사실을 규명한 최초 사례”라고 적발의 의미를 밝힌 바 있다.
양 회장의 혐의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웹하드 업체 2곳을 운영하며 바지사장을 내세워 업로드 전문업체를 차려 영화와 드라마, 일본 음란물 등 불법 저작물 5만 건을 유통하며 11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 업로드 과정에선 해외 IP 주소로 위장하기도 했다. 또한 방송사와의 저작권 제휴계약을 맺었지만 프로그램 조작으로 3번 다운로드마다 1번만 결제하는 방식의 다운로드 횟수 고의 누락으로 저작권료 152억 원을 챙겼다. 이런 불법적인 방식이 활용되는 동안 두 웹하드 사이트는 1년 동안 무려 4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는 애니메이션 전문업체인 대원미디어와 대원방송에게 형사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2011년 양 회장 구속 사건 이후 웹하드 업계를 둘러싼 의혹은 거듭 증폭됐다. 웹하드 업체와 계약한 헤비업로더의 역할론에 대한 의혹에 아예 불법 업로드 업체를 직접 운영한다는 의혹이 더해졌다. 게다가 매출 누락 의혹도 거듭돼왔다. 단속과 처벌은 꾸준히 이뤄졌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양 회장 구속 사건 이후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는 오히려 급성장해 업계 1, 2위에 오르게 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게 바로 ‘음란물 웹하드 카르텔’이다. 업로더(헤비 업로더나 불법 업로드 업체)와 이를 유통하는 웹하드 업체, 그리고 불법 콘텐츠나 음란물을 통제하는 필터링 업체, 그리고 디지털장의사 업체로 구성된다. 몰카나 리벤지포르노가 유포되면 이를 업로더가 웹하드에 올린다. 이를 통제해야 할 필터링 업체는 방치하거나 유통 규모만 통제한다. 그런 뒤 피해자가 디지털장의사 업체를 통해 삭제를 의뢰하면 필터링 업체를 통해 해당 음란물을 내려준다. 실제로 양 회장은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필터링 업체 ‘뮤레카’, 그리고 디지털장의사 업체 ‘나를 찾아줘’ 등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벤처 시대의 노다지로 급부상해 저작권 전쟁을 거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노출됐던 웹하드 업계에서 양 회장은 최강자의 자리에 올라서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 됐다. 이런 그에게 허락된 호칭은 ‘웹하드 업계의 최강자’가 아닌 ‘몰카 제국의 황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
“양진호 ‘2000억 있다’ 자랑” 웹하드 업계, 과연 얼마나 벌었기에…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평소 직원이나 지인들에게 “‘2000억 원이 있으니까 괜찮다, 나 2000억 있다”는 말을 하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정확한 재산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1000억 원 이상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큰돈을 벌었을까. 도대체 웹하드 업계는 얼마나 큰 수익을 올려 온 것일까. 웹하드 업계의 황금기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까지가 손꼽힌다. 2008년 영화계와 저작권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며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제휴콘텐츠가 안착된 2009년 즈음부터 수익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웹하드 업체 가운데 한 곳인 A 사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동안 매출 1500억여 원, 영업이익 600억여 원, 순이익 500억여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40%에 이르고 순이익률은 30% 이상이다.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시작해 증자 한번 없이 회사의 자본총계를 500억여 원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2008년 불거진 저작권 전쟁이다. A 사의 경우 2007년 280억 원의 매출액에 영업이익 144억 원, 순이익 120억 원을 기록했으며 2008년엔 매출 321억 원에 영업이익 164억 원, 순이익 127억 원을 기록하며 황금기를 보냈다. 그렇지만 매출을 310억 원 기록한 2009년에는 영업이익이 16억여 원, 순이익 34억 원으로 수익률이 급감한다. 이후 어느 정도 매출과 이익률을 회복했지만 분명 웹하드 업계에 다소 봄날이 돌아오진 않았다. 업계 1위 위디스크를 운영하는 이지원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210억 원, 영업이익은 52억 원이다. 업계 2위 파일노리의 선한아이디는 160억 원의 매출에 9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5%와 61%에 이르는 영업이익률은 일반 기업을 훨씬 뛰어 넘는 수준으로 위디스크의 직원이 56명 정도이고 파일노리는 14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그렇지만 황금기로 불리던 2005~2008년에 비하면 매출 규모와 이익률이 많이 떨어졌다. 업계의 상황과는 별개로 양 회장의 경우는 달랐다. 웹하드 업체를 중심으로 필터링 업체와 디지털장의사 업체 등을 운영하는 ‘웹하드 카르텔’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해 온 것으로 보인다. 몰카와 리벤지포르노 등 각종 음란물을 웹하드를 통해 유통하며 돈을 벌고 이를 다시 웹하드에서 내려주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바로 웹하드 카르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최대 주주가 아닌 100% 지분 소유자인 터라 견제와 감시도 받지 않으며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