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9월 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을 나와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시진핑 주석이 내건 ‘성역 없는 부패 척결’을 진두지휘한 기관이기도 하다. 굳이 국내와 비교하자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격이다. 기율검사위원회의 주 타깃은 고위 관료지만 사회 전반 주요 비리들에 대한 조사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시 주석의 정적 처리에 악용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시 주석의 친위대인 셈이다.
중국 공산당 한 관계자는 기율검사위원회가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과 당 관료들 간 유착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귀띔했다. 관료들이 뇌물을 받고 기업들의 현지 영업에 유리하도록 편의를 봐줬다는 내용이다. 몇몇 관료는 이미 혐의를 자백하고 옷을 벗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율위원회는 이들에게 돈을 준 기업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확대할 예정인데, 그 대상에 오른 곳 중 한국 기업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율위원회가 공무원 비리를 적발하면 여기에 연루된 기업도 당분간은 중국 영업에 차질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 지금 (조사) 가능성이 거론되는 기업 중 한국 법인들이 80% 이상인 것으로 들었다. 해외 기업들의 경우 될 수 있으면 조사를 자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나선 것은 뭔가 다른 속뜻이 숨어 있다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기율위원회가 직접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기율위원회가 작정하고 들여다보면 걸리지 않은 관료와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세무총국도 칼을 빼들었다. 세무총국 사정에 정통한 한 중국 관료는 “본국 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탈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거나 사세에 비해 최근 몇 년간 세금을 지나치게 적게 낸 기업, 그리고 부당하게 세금 등을 환급받은 기업이 대상”이라면서 “밝히긴 어렵지만 한국 회사들도 제법 포함돼 있다. 회계자료를 사전에 입수해 분석을 끝낸 곳도 있다. 세무조사도 착수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에 머무는 한 사업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평소 친분이 있는 공안 직원으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몸을 사리라는 충고였다. 사드로 인해 중국 정부에 찍힌 롯데마트도 결국 철수하지 않았느냐. 대기업도 이런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숨만 죽이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공산당 관계자도 “기율위원회가 머리라면 공안은 손과 발이라고 할 수 있다. 공안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최고 사정기관인 기율위원회를 필두로 세무당국과 공안이 동시에 한국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식 표현으로는 전방위적인 사정 드라이브다. 중국 복수의 관계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건설 화장품 유통 의료 부문과 관련된 업체들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한 건설사의 경우 입찰 과정에서 관료들에게 돈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공안당국은 이 건설사 내부 관계자로부터 이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했다. 건설사에 대한 공안당국의 본격적인 조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대목은 실제 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다스의 중국 법인들도 세무총국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다스는 중국에 6개 법인을 두고 있다. 이 중 4개 법인 대표 또는 최대주주가 이 전 대통령 장남 시형 씨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차명 보유를 부인하고 있지만 10월 5일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전 대통령)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 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결론을 지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앞서의 중국 관료는 “다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회사라고 들었다. 그러나 (재판과) 이번 세무총국 조사는 무관한 것으로 안다”면서 “(다스) 법인들의 세금 부분에 대해 수상한 점이 포착됐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한국에서 열리는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수상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확인된 게 없어 말 할 수 없다”면서도 “중국 법인과 본사 간 거래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한국 전직 대통령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회사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이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모종의 외교적 정치적 노림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는 별개로 조사 결과에 따라선 다스를 둘러싼 이명박·이시형 부자의 여러 의혹이 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다스 중국법인은 이 전 대통령 실소유를 입증할 물증 중 하나로 꼽혀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