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11월 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 등 청와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정권 초만 하더라도 청와대 3실장(임종석 장하성 정의용) 중 정 실장 인지도는 가장 떨어졌다. 임종석 장하성의 경우 일찌감치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발탁이 유력했을 정도로 소위 ‘잘나가는’ 인사들이었다. 반면, 통상 전문가인 정 실장이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자 여권 내에선 회의적 여론이 팽배했었다. 정 실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까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최고 실세로 떠올랐지만 최근 ‘자기 정치’ 논란에 휘말리면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갈등설을 빚고 있다. 야권의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여권 내에서조차 비토론이 거세다. 임 실장은 ‘포스트 문재인’과 ‘만사임통’(모든 일은 임종석을 통한다)이란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노믹스 핵심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하며 정권 초 ‘왕실장’으로 불렸던 장 실장은 우여곡절 끝에 11월 9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물러났다. 사실상 경질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초반 이슈를 주도하던 김앤장(김동연·장하성)의 1막이 사실상 끝난 셈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 실장은 남북 정상회담 성사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 실장은 지난 9월 5일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대북특사 투톱’으로 방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간자 역할’을 했다.
같은 달 8일 특사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 양제츠 중앙정치국장에게 방북성과를 설명하는 특명을 부여받았다. 앞서 지난 5월 4일에는 극비리에 미국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 ‘빅딜 조율자’로 나섰다. 여권 내부에서 정 실장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까지 함께할 ‘유일한 청와대 실장’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성과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하다는 점도 ‘정의용 존재감’을 더욱 키웠다. 정권 초 국방부를 이끌었던 송영무 전 장관은 말실수 등 온갖 구설로 취임한 지 1년 3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강경화·조명균 장관도 개각 때마다 교체설에 시달리고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정상회담 등을 주도하면서 정 실장이 한반도 프로세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며 “청와대의 원맨쇼로 외교·통일·국방 등 각 부처 장관의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