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로 51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사. 박정훈 기자.
손태승 행장의 회장 겸직에 대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우리은행지부(우리은행 노조) 박필준 위원장은 “다 들어준 것도 아니고, 지적을 하기에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노조는 이미 지난 8월 손 행장에게 지주사 전환 후 무급 회장직 겸임을 건의하는 등 꾸준히 손 행장의 회장 겸직을 지지해왔다.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재직 기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다 회사 내부 사정도 잘 아는 손 행장이 지주사 회장을 겸직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더구나 지주가 출범하더라도 우리은행의 비중이 절대적이니만큼 행장이 회장직을 겸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리은행 이사회 또한 “우리은행의 비중이 99%로 절대적이어서 당분간은 우리은행 중심의 그룹 경영이 불가피하다”고 손 행장의 겸직 이유를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주사로 전환하면 새롭게 세팅해야 할 것이 워낙 많아 효율성을 생각하면 회장과 행장직을 분리하는 게 맞다”며 “예보 지분 탓에 회장직에 정부 인사가 내려올 우려가 있지만, 애초에 금융권은 워낙 관치에서 자유롭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을 막고, 경영 안정성을 위해 손 행장이 회장을 겸직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행장과 회장을 분리할 경우 행장추천권을 가진 회장과 행장의 권력 싸움이 빚어질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우리은행 나아가 우리금융지주에 관치의 징후가 또 다시 짙어진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는 우리은행의 ‘민영화’를 위해 2010년부터 경영권 매각을 추진, 2014년까지 4차례 매각을 시도했으나 유효 수요 부족 등의 이유로 모두 유찰됐다. 이후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선택, 2016년 7개사에 29.7%의 지분을 매각했다.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우리은행이 정부 소유 은행이 된 지 16년 만에 다시 시장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며 실질적 민영화를 이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지분 전량 매각이 아닌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우리은행 지분 18.43%를 남겨두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전히 관치의 뜻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당시 임 위원장은 “예보가 잔여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적 자금 회수를 위한 보유분으로, 공적자금 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역할만 할 것”이라며 “우리은행의 경영은 정부나 예보의 관여 없이 새로운 주주가 된 과점주주 중심으로 민간 주도의 자율적·상업적, 투명한 경영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하며 의혹을 불식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우리은행을 대하는 최근의 정부 행보는 예전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관치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 10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우리은행 지분 18%를 보유해 지배구조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도 생각이 있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보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말 손태승 행장 선임 과정에서 “이사회에서 결정할 일이니만큼 전적으로 맡길 것”이라며 예보 불참을 밝혔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채용비리 사태에 연루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의 사퇴 직후 관치 논란이 불거진 바 있어 해당 발언에서 태도 변화가 읽힌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0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관치 논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가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주로서의 책무”라고 선을 그었다. 또 같은 날 예보 추천 비상임이사를 포함한 이사진 전원이 참석한 이사회가 열렸으나 예보 측 비상임이사는 지주사 지배구조 관련 금융당국의 입장을 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치 논란의 불씨가 남은 까닭은 1년이라는 한시적 재임 기간과 남아 있는 예보 지분 때문이다. 예보 측 비상임이사는 임시이사회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7일 사전간담회에서 지주사 설립 후 1년간 회장과 행장 겸임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대주주이자 정부 측 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지분 보유 유무를 떠나 거대 금융그룹에 정부 입장이 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예보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겸임 결정은 이사회 논의를 통해 결정한 것”이라며 “이사마다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누가 제안했든 논의를 통해 의견을 모아 나온 결과”라며 관치 의혹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지분 해소를 통한 완전 민영화에 대해 “항상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며 “시장 상황과 여러 조건이 맞춰지면 매각할 테지만 현재는 지주사 전환 중이라 내년쯤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은 대체로 관치와 관련해 큰 관심이 없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한 우리은행 과점주주 관계자는 “지분투자 목적이 경영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업 시너지를 얻기 위해서였다”며 “금융위의 언급이나 정부의 간섭 등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른 우리은행 과점주주 관계자 또한 “단순투자 차원이어서 금융위의 행보에 별다른 의견은 없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썸만 타다가 흐지부지’ 우리은행-교보생명 얄궂은 운명 금융당국의 지주사 전환 승인을 받은 우리은행이 향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적극적 행보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는 이상 증권사 인수도 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난 6월 우리은행의 교보증권 인수설이 퍼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교보생명 측의 ‘우리은행의 (교보증권) 인수 제안’ 주장과 우리은행의 ‘검토한 바 없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흐지부지됐다. 금융권은 두 기업의 남다른 스토리에 관심을 보인다. 교보생명은 과거 우리은행이 매각 절차를 밟을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혀왔다. 교보생명도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교보생명은 또 2016년 우리은행 과점주주 후보로도 떠올랐으나 결국 참여를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우리은행이 교보증권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 교보증권 관계자는 “지난 6월 (우리은행의) 인수설은 우리도 모르고 있다가 교보생명 측이 공시를 하면서 알았다”며 “교보증권 매각은 대주주인 교보생명의 의중이 중요하므로 어떤 의사가 나올지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신탁사나 자산운용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증권사 인수설을 부인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