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동아대학교에 내걸린 현수막. 김두관 허성관 장관 취임을 축 하하고 있다. | ||
그러나 ‘노무현호’ 출범 한 달여가 흐른 요즘 부산권 민심이 ‘이상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저기서 노무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우호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텃밭 부산이 흔들린다는 위기감까지 토로할 정도다.
과연 ‘밭’의 토양이 달라져 ‘농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일까. 내년 총선 구도의 새 변수로 떠오른 항도의 밑바닥 민심을 지난 3월27, 28일 양일간 발로 훑었다.
부산 시민들이 최근 노 대통령의 행보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대목은 바로 ‘검찰 개혁’과 ‘특검제 수용’이었다. 이를 거론하는 부산 시민들은 대체로 노 대통령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었다.
부산역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 오영진씨(49)는 “신념과 소신으로 평검사들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이후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문제가 된 사람들 모두를 ‘잘라버린’ 것을 보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부산시청 앞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점배씨(44)도 “검찰 수뇌부의 반발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인사권을 발동한 것은 앞으로 노무현식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들 시민들은 ‘이번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영남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지적에 대해 “DJ정권 아래서 호남 출신 인사들의 불합리한 승진이 많았던 기 아이가”라고 되받아 쳤다.
노 대통령이 대북송금 논란 관련 특검제를 받아들인 것도 부산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회사원 김준성씨(37)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는 특검제를 선뜻 수용하는 것을 보고 당내 중진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소신을 엿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태종대 앞에서 마주친 몇몇 40대들은 “DJ와 동교동계의 부담을 떨쳐내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준 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왼쪽은 지난해 12월6일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노 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 그는 부산에서 30%의 지지율도 얻지못했 다. 오른쪽은 지난 3월28일의 자갈치시장 전경. | ||
한편 노 대통령에게 ‘형평성을 잃지 말라’고 주문하는 서민들도 꽤 있었다. 이들에겐 DJ정권 때 부산이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했다는 서운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건물 관리원 이복세씨(65)는 “DJ정권 때는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는 큰 공사나 사업이 거의 없었지만 저 동네(호남)에서는 제법 많았다카더라”며 그런 속내를 내비쳤다. 이씨는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항만 공사가 DJ 시절 시작됐지만 계속 주춤거리다가 최근에야 제법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더라”며 “전국을 고르게 발전시키는 지도자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이 부산 인근 김해 출신이고 부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점 때문에 노무현 시대에 부산이 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 게 사실. 그러나 기자가 만나본 부산 사람들 중 상당수는 “택도 없는 얘기라카이. 내심 기대도 있지만 김칫국은 안 마실란다”는 얘기를 했다. 한 40대 상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을 보라”며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꼭 잘 해주는 것은 아니더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일부 50대 중반 이상 시민들은 비판적 견제와 지지를 오가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부산시청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고아무개씨(59)는 “토론하는 것을 보니까 너무 말만 잘하는 것 같더라”며 “장관들도 다 젊던데 우리 같은 세대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60대 중반의 한 자영업자도 “지금은 ‘개혁하자’해서 멋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경제를 지금처럼 내버려 두면 1년 후에 욕만 먹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일요신문>이 만난 부산시민들. 왼쪽부터 오영진 이복세 장구자씨. | ||
자갈치시장 터줏대감으로 불린다는 장구자씨(63·여)는 “이 동네야 어차피 한나라당 팬들이 많은 곳이고 지난 대선 때도 마찬가지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변화가 없는 한나라당에 식상해 하거나 반대로 노 대통령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졌다”고 밝혔다. DJ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지만 ‘검사들과의 대화’ 방송 이후 노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끝까지 지킬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는 것이다. 다른 상인들도 “서민들 돈만 잘 벌게 해준다카믄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제치고 몰표를 받을 기라”고 덧붙였다.
한편 부산지역 민주당 관계자들도 이 같은 민심 흐름에 다소 고무된 분위기다. 부산지역의 한 민주당 관계자는 “DJ정권 때는 (부산에서) 어디서든 민주당 지구당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도 못꺼냈다”며 “이젠 지난 대선 때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부산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다른 지역보다 높고 정치면 기사에 대한 열독률도 대단하다”며 “DJ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지만 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지도가 반DJ 정서의 높이를 뛰어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년 총선에 대해서도 “인물 중심으로 간다면 해볼 만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반면 이 지역의 한 한나라당 관계자는 최근의 ‘친 노무현 정서’로 인한 위기감을 슬쩍 내비치면서도 “노 대통령의 파격 행보에 따른 일시적 거품일 뿐”이라고 밝혔다. 침체를 거듭하는 지역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는 한 부산시민들이 따로 특별히 노 대통령을 전보다 더 지지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부산참여연대의 김해몽 기획실장은 “검찰 고위직 인사와 특검제 수용을 전후로 노 대통령 인기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라 밝힌다. 김 실장은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 주변의 부산 출신 386세대 참모들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며 “이들처럼 젊고 참신한 인물들이 나선다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부산 아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