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지검장. 사진 이종현 기자.
윤 지검장의 장모 최 아무개 씨는 그동안 각종 구설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사기를 쳤다는 의혹이 제기돼 화제가 됐다. 윤 지검장은 당시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었다.
장모 최 씨는 지난 2011년 사업가 정 아무개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최 씨와 정 씨는 과거 동업자였는데 지난 2003년 경매로 낙찰 받은 빌딩의 이익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서로 여러 차례 법정다툼을 벌여왔던 사이다.
정 씨는 이 과정에서 최 씨와 윤 지검장 부인 김 아무개 씨, 당시 고위직 검사였던 양 아무개 변호사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징역을 살게 했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정 씨의 주장이 허위라며 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재판이 시작됐다.
정 씨는 재판과정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증명할 정황증거 중 하나로 지난 2004년 7월 세 사람이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정 씨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세 사람의 출입국 기록을 요청한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 2014년 7월 결과를 회신했다. 최 씨는 당시 유럽을 방문한 기록이 있었지만 김 씨와 양 변호사는 유럽 방문 기록은 물론이고 출입국 기록이 전혀 없었다.
정 씨는 “2004년 7월에 유럽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그동안 해외에 나간 기록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재판부도 이를 이상하게 여겨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세 사람의 출입국 기록을 다시 요청했다. 2014년 12월 두 번째 결과가 회신됐는데 김 씨는 2009년 이전에는 출입국 기록이 없었고, 양 변호사의 출입국 기록은 아예 제출되지 않았다.
출입국 기록에는 두 사람이 2004년 7월 유럽을 방문한 기록이 없었지만 최 씨는 2015년경 조사과정에서 두 사람과 함께 유럽여행을 한 사실을 인정한다. 세 사람이 함께 유럽을 방문했다는 주변 증언과 정황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윤 지검장의 부인이자 최 씨의 딸인 김 씨도 출입국 기록이 이상하다고 인정했다. 김 씨는 “2009년 이전 출입국 기록이 없다는 것은 내가 봐도 이상하다. 나는 모르는 일이고 출입국 사무소에 따져라”라고 말했다.
2004년 7월 세 사람이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온 것은 맞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원래 해외에 자주 나가는 사람이다. 10년도 넘은 일을 어떻게 기억하나. 지난달에 누구와 어딜 다녀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양 변호사도 유럽여행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위조여권 등 출입국 기록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해외를 다녀온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최 씨의 증언대로라면 세 사람은 2004년 7월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두 사람의 출입국 기록은 왜 사라진 것일까.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김 씨의 경우 자신들의 실수로 기록이 누락됐음을 인정했다.
2014년 7월 최초로 법원에 제출됐던 세 사람의 출입국 기록.
윤 지검장 부인 김 아무개 씨는 지난 2008년 10월 김영희에서 김영수(※ 둘 다 기사 편의를 위한 가명)로 개명했는데 1차 회신 때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개명 전 이름인 김영희를 성을 빼고 영희로 검색하는 바람에 기록이 조회되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2차례 모두 김영수(구명 영희)라고 표기해 출입국 기록을 요청했다. 2차 회신 때는 담당직원이 괄호 안에 (구명 영희)라고 표기된 것을 보충적인 기재로 보고 조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양 변호사의 경우에는 2004년 7월 유럽을 다녀온 것이 사실이라면 왜 기록이 누락됐는지 자신들도 모르겠다고 했다.
법원이 개명자 표기 양식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생긴 일이냐는 질문에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정해진 표기 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우리 측 담당 직원이 약간 착오를 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명 전 이름을 영희라고 착각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사실조회요청이 굉장히 많아서 기계적으로 조회하다보니 스크린이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름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도 함께 제출됐는데 실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매칭되지 않을 때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나오지 않고 ‘기록이 없다’고 나온다. 이름을 잘못 입력했는지 담당 직원이 알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회신에서 김 씨의 출입국 기록이 전혀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첫 번째 출입국 기록 요청의 경우는 기간을 2004년에서 2005년까지만 요청해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명했다.
두 번째 회신에서 양 변호사의 출입국 기록을 누락한 이유에 대해서는 “두 번째 요청 때에는 양 변호사에 대한 출입국 기록 요청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 씨는 “첫 번째 출입국 기록 요청의 경우도 2014년까지의 기록을 요청했다”면서 “2004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록만 요구했다면 왜 법원이 출입국 기록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시 요청했겠는가. 출입국 기록을 요청한 이유가 세 사람이 함께 유럽을 다녀왔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인데 당연히 양 변호사에 대한 출입국 기록도 두 번 모두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당시 법원으로부터 받은 출입국 기록 사실조회요청서를 공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개인정보에 해당된다며 거절했다.
정 씨는 “출입국 기록은 재판과정에서 유무죄를 가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인데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제출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어쩌다 한 번 실수했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법원이 첫 번째 출입국 기록을 신뢰할 수 없어 다시 요청한 자료에도 황당한 실수를 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 씨는 “개명자를 김영수(구명 영희)라고 표기하는 것은 법원의 일반적인 표기법이다. 변호사가 그런 식으로 표기하라고 자문해줘서 표기한 것이다. 출입국 기록 조회를 밥 먹듯이 할 서울출입국 직원이 그런 표기법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의도적인 누락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혹제기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려 했지만 최 씨는 전화를 받은 후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끊어버렸다. 이후 수차례 전화와 문자로 해명을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윤석열 지검장 비서실도 “장모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최 씨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사건은?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피해자 9명이 저를 찾아와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장모로부터 사기당해 30억 원을 떼였고, 장모 대리인이 징역을 받아서 살고 있는데 사기의 주범인 장모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고 주장했다. ‘신동아’ 보도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 2013년경 300억 원대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대리인 안 아무개 씨에게 전달했다. 안 씨는 위조된 잔고증명서를 임 아무개 씨에게 제시한 후 16억 5150만 원을 빌렸다. 안 씨가 이런 방식으로 피해자 3명에게 빌렸다가 갚지 않은 돈은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임 아무개 씨는 지난 5월 최 씨를 상대로 대여금반환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임 씨는 돈을 빌려줄 때 직접 최 씨와 통화까지 했다면서 안 씨는 대리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임 씨는 또 “최 씨가 ‘내 사위가 대검 중수1과장을 지낸 윤석열 검사다. 사위가 고위공직자라서 내가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임 씨는 “안 씨가 잔고증명서를 보여주면서 ‘잔고가 이렇게 있다. 소송만 풀리면 결제는 잘 된다’고 했다. 통장에 300억이 있는 걸로 돼 있으니까 저로선 의심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지난 2016년 안 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잔고증명서 위조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당시 안 씨의 변호인과 최 씨의 질의응답을 살펴보면 안 씨의 변호인이 증인(최 씨)은 피고인(안 씨)에게 잔고증명서를 교부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최 씨는 ‘예’라고 답변했다. 변호인이 이것은 누가 만들었느냐고 묻자 최 씨는 ‘제가 김 아무개에게 부탁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최 씨는 “피고인이 저에게 ‘가짜라도 좋으니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며 책임을 안 씨에게 돌렸다. 최 씨와 동업자 관계였던 안 씨는 최 씨로부터 사기혐의로 고소당해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안 씨와 최 씨는 위조된 잔고증명서를 제시하고 빌린 돈을 서로 상대방이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것이 사실이라면 사문서 위조죄에 해당하고 이를 이용해 돈을 빌렸다면 위조사문서 행사에 해당된다. 최 씨의 주장처럼 남에게 부탁을 받아 사문서를 위조했다고 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또 피해액이 5억 원이 넘으면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도 해당된다.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실형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강용석 변호사는 최근 자신에 대한 소송 취하서류를 위조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