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지방선거 투표소 모습. 최준필 기자
콩고는 우리나라 기업인 미루시스템즈가 수출한 전자투표기로 오는 12월 23일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3대 선거를 동시에 치를 예정이다. 콩고는 현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17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어 독재국가로 분류되는데 전자투표기를 사용할 경우 투표 조작이 우려된다며 민주화 세력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유엔 안보리에서 “콩고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신뢰할 수 있고, 검증되고, 투명하고, 사용하기 편한 종이 투표를 위해 전자투표기 사용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루시스템즈는 또 지난해 이라크에 1500억 원대 전자투개표 장비를 수출했는데 올해 5월 있었던 총선이 부정선거 의혹에 휩싸이면서 이라크 정부가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미루시스템즈의 전자투표기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선관위가 주도해 만든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전자투표기 인프라를 구축하는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에 공급된 것이 미루시스템즈의 전자투표기다.
미루시스템즈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미루시스템즈 심상민 이사는 “전자투표기가 조작가능하다는 것은 오해”라며 “전자투표기는 외부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해킹이 불가능하다. 전자투표기로 투표를 하면 종이 투표용지가 출력되는데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투표함에 넣는다. 전자투표기 결과가 의심스러우면 나중에 투표용지를 확인해보면 된다. 터치스크린투표기와 중앙서버, 종이 투표용지까지 세 번 기록되기 때문에 선거 신뢰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심 이사는 “이라크에서 우리가 수출한 전자투표기가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다시 수개표를 해보니 전자투표기 결과와 똑같았다. 그래서 이미 사건이 일단락된 상태”라며 “전자투표기가 수출된 나라들이 모두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고 전자투표기가 생소하다보니 막연하게 조작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의심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루시스템즈가 국내에 도입한 투표지분류기(※ 종이 투표지를 분류하는 기계로 전자투표기와는 다르다) 신뢰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시민단체 관계자는 “조작 가능성이 없다면 왜 미국대사까지 나서서 전자투표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겠느냐”면서 “선진국들이 선거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전자투표기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관계자는 “이미 (투표지 분류기 조작 의혹이 처음 제기됐던) 18대 대선으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까지 당했음에도 우리가 계속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특히 전자투표기가 도입된 국가들은 전력이 불안정하고 통신 보안이 취약하다. 전자투표기 결과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종이투표함을 열어 수개표를 하면 된다는데 선거가 끝난 후 재검표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패배한 후보자 입장에서도 선거불복으로 비춰질 수 있어 부담스럽다. 전자투표기 결과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종이투표함을 열어 수개표를 한다면 오히려 비용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술적으로 전자투표기의 해킹이 가능한 것인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봤다. 심준보 해커연합HARU 회장은 “조작이 불가능한 시스템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심준보 회장은 “전자개표기가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기기를 만들 때 공장을 해킹해 펌웨어에 백도어를 깔아놓는 방법이나 전자개표기의 연결점(수집된 정보를 중앙서버에 전송하는 과정 등)을 공략하는 방법 등이 있다”면서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미루시스템즈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투표 결과 조작을 원하는 세력이 있다면 쉽게 조작할 수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물론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면서도 “해킹이 불가능한 시스템은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미루시스템즈의 전자개표기 도입을 검토했다가 시스템에 보안상 허점이 있다며 사업진행을 중단한 바 있다.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미루시스템즈의 전자개표기 수출이 논란이 됐다. 질의에 나선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자칫 우리나라 업체가 수출한 전자개표기가 부정선거에 이용될 경우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루시스템즈가 선관위에 투표지분류기를 공급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선거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앞서의 시민단체 관계자는 “투표지분류기 역시 조작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입을 반대하고 수개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선관위는 투표지를 단순 분류만 하는 기기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전자적 방식의 기기인 PC가 장착돼 있고 개표 결과가 자동 검산되어 프린터기로 출력되는 형태다. 심사집계부에서 검표작업을 하지만 다분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투표지분류기를 보관하고 있는 장소의 보안이 허술해 외부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면서 “투표지분류기가 온라인에 연결되지 않아 해킹 가능성은 낮지만 기기에 직접 접근해 조작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조작 가능성이 있다. 개표조작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투표지분류기는 투표지를 후보자별로 단순 분류만 하는 기능에 그쳐야 하고 개표 결과를 검산해서 개표상황표를 출력하는 기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측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미 여러 차례 투표지분류기를 공개적으로 시연하는 등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검증했다”면서 “헌법재판소에서도 투표지분류기 사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이 났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2년부터 투표지분류기를 사용해 왔는데 지난 2015년 시민단체가 오류 및 조작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투표지분류기 사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선관위와 유착 의혹”…미루시스템즈 또 다른 논란 미루시스템즈를 둘러싼 논란은 또 있다. 김용희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사무총장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전자투표기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루시스템즈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용희 사무총장은 선관위 사무총장에 재직하던 시절 A-WEB 초대 사무총장이 됐고, 2016년 선관위 사무총장에서 퇴임한 후에도 A-WEB 사무총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선관위의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콩고에 전자개표기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김 사무총장이 미루시스템즈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알선 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사무총장은 A-WEB 직원에게 미루시스템즈를 위해 입찰과 관련한 서류를 번역하라고 지시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관위는 자체 감사를 마친 후 김 사무총장을 입찰 방해와 배임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김 사무총장 측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 측은 “현재 우리나라에 전자개표기를 수출할 만큼의 기술력을 가진 업체는 미루시스템즈뿐”이라며 “MS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 하나밖에 없어서 그 회사에서 산 것을 일감 몰아주기라고 하느냐”고 반박했다. 국익을 위해 미루시스템즈의 제품을 추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루시스템즈와 김 사무총장의 관계를 의심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김 사무총장이 선관위에서 핵심 직책을 맡던 기간 미루시스템즈와 선관위의 계약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은 “중앙선관위와 미루시스템즈와의 유착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