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세<천국의 신화>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 내용은 “당신 사타구니를 좀 봅시다. 얼마나 도도한지 봅시다. …그는 날쌔게 내 볼에 입 맞추고 내 얼굴을 온통 핥습니다. 서방님 내 마음에 이 오진 것이 ‘뚝보 곰새끼’ 하면서 미친 듯이 나를 쓰러뜨립니다. 자신의 옷도 벗고 내 옷도 익숙하게 벗깁니다. 서로의 나체만이 남습니다. 서로의 국부가 교면스러운 빛을 발하면서 한껏 부조되고 그 위에 온갖 충격이 요동쳐갑니다. …둘 사이에는 막막한 각고의 바다만이 있습니다. 그 감미로운 바다 심연 구렁텅이에 우리는 빠져갔습니다. ‘좋지 응? 여보 좋지?’ 그는 내 귀에 대고 흐느끼면서 속삭였습니다. ‘으응, 좋아’ 숨질리듯이 나는 응답했습니다. 어느덧 기진하여 둘은 널부러집니다”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 소설이 형법상 음란한 문서에 해당된다고 하여 69년 4월 음란 문서제조 등의 혐의로 작가를 기소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이에 불복한 검사의 상고도 기각됐다. 대법원은 75년 12월29일 “무릇 문학작품의 음란성 여부는 그 작품 중 어느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 논할 수는 없고 작품 전체와 관련시켜 이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이 인간에 내재하는 향락적인 성욕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매듭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니 이 소설은 음란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0여 년 후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와 장정일씨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되레 유죄판결을 받자 음란물 시비 논쟁은 다시 극에 달했다.
92년 음란 시비에 휘말린 <즐거운 사라>는 3년여간에 걸친 지루한 공방전 끝에 유죄가 인정됐다. 92년 12월28일 1심 재판부는 마 교수에 대해 음란물 제조 및 배포죄를 적용,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검찰측과 피고인측에서 각기 추천한 ‘감정인’, 작가 하일지와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민용태 교수가 재판부의 명령으로 소설에 대해 공동 감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위 감정인들은 이 소설의 음란성을 부정하는 감정서를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시 서울대 법학과 안경환 교수, 서강대 영문학과 이태동 교수, 신경정신과 의사 겸 시인 신승철 박사로 하여금 소설을 감정케 했는데, 안 교수와 이 교수는 ‘음란성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신 박사는 ‘음란성이 부정된다’는 취지의 감정서를 제출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소설의 음란성을 인정하고 94년 7월13일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95년 6월16일 대법원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시는 이런 내용이었다.
▲ 마광수<즐거운 사라> | ||
이러한 행각은 처음 만난 남자와의 섹스, 중학 동창생과 동성연애, 그룹섹스 등 기이하고 난잡한 성행위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라’는 한국과 한국인을 멸시하고,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우월하다고 찬미한다. 대학 교수를 변태성욕자와 음탕한 인물로 등장시키고, 여대생과 교수 간의 맞담배질을 미화시킨다.
‘사라’가 새로운 섹스 상대를 찾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 전체의 묘사 방법이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성행위를 선정적 필치로 묘사하고 있고, 더구나 이러한 묘사가 양적, 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구성이나 전개에서도 예술성, 사상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않다.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밖에 인정되지 않는다.”
재판부는 소설의 묘사 방법과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려는 의도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작가 장정일씨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도 음란성 시비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사건이다. 지난 97년 1월6일 오전 10시 서울지방검찰청에 소환돼 출판 경위 등을 조사받은 장씨에게 씌워진 혐의도 역시 ‘음란 문서 제작 및 판매혐의’였다.
장씨는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당시 장씨의 변호를 받은 이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장씨도 마 교수의 경우처럼 유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38세 유부남인 작가 ‘제이’가 서울과 여러 도시를 다니며 18세 여고생 ‘와이’와 벌이는 괴벽스럽고 변태적인 섹스행각의 묘사를 크게 문제 삼았다.
변호를 맡은 강 전 장관은 장씨 소설의 주제를 고려해 달라고 재판부에 강력히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소설이 당시 사회의 개방된 성 관념보다 음란하지 않다고는 볼 수 없다며 장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마 교수나 장씨의 사례에서 나타난 법원의 음란물의 판단 기준은 소설 내용과 묘사가 ‘성적수치심과 성적 도의 관념을 현저히 해치느냐’의 여부였다. 그러나 당시 법조계 내에서는 유죄를 내린 재판부의 판단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검찰과 재판부의 시각이 일원화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무렵,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천국의 신화>는 이씨가 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97년 1월 출간된 만화다. 이 작품도 출간되자마자 음란성 시비에 휘말렸다. 더구나 성인용과 청소년용으로 나뉘어 출간된 <천국의 신화>는 “비록 성인용이라 할지라도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른바 ‘청소년 유해론’ 시비까지 더해져 위기를 맞았다. 수사를 맡은 서울지방검찰청 형사1부 소년전담팀 검사들이 ‘청소년 유해론’을 밀고 나선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검찰은 조사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성인용 <천국의 신화>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고, 청소년용은 전체면 중 29장면이 미성년자에게 잔인하고 난잡한 폭력과 성문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보호법을 적용, 이씨를 약식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