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칠성음료 신용협동조합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벌어져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피해자의 진단서.
1999년 서울 서초구에 있는 롯데칠성음료 신용협동조합에 입사한 A 씨(49)는 지난 10월 뇌경색증 진단을 받았다. 수년간 지속된 직장 내 괴롭힘이 화근이 됐다.
A 씨는 일반회계 차장으로 근무하던 중 2017년 2월 경 2016년 결산에서 적자가 발생한 책임을 지고 새로 부임한 노동조합이사장 등에게 사직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한다. A 씨는 결산 적자를 이미 회사에 보고한 상태였으며, 최저 시급에 따른 임금인상과 식비단가상의 회계상 문제였다고 반발했다. A 씨가 사직을 거부하자, 회사 측은 2017년 4월에 대기발령을 내리고 그해 7월에 A 씨를 기존 금융사업팀에서 수탁사업팀으로 전보를 내리면서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A 씨는 결산 적자의 책임을 묻는 과정과 징계의 정당성을 다퉈볼 소지가 있었지만 징계를 수용하면 다시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와 기대로 정직처분을 수용했다.
반면 회사는 A 씨의 예상과는 달리 10월 복귀 뒤 회계와 관리업무만 담당했던 그를 지방 분점식당 조리원으로 전보명령을 내렸다. A 씨는 정직처분을 받으면 본인이 자진해서 사직서를 낼 것으로 회사가 판단했지만 이에 불응해 보복 인사 조치를 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인사 대기발령 조치를 강행한 회사 측은 책상이나 의자 하나 없이 A 씨를 근무대기 시키며, 사업장을 벗어나지도 사무실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조치했다. A 씨는 10월과 11월 초까지 청소실과 화장실 등 사업장내 주변 시설을 오가며 대기상황을 보고하는 등 인격적인 모욕도 감당해야 했다.
A 씨가 11월 하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전직 구제신청을 한 뒤에야 사무실로 들어가며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회사의 괴롭힘은 이어졌다. A 씨가 업무에 복귀했지만, 그는 부하직원 밑에서 기존 업무가 아닌 단순 관리입력 업무 등을 맡았다. 능력은 없었지만 성실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A 씨에게 돌아온 것은 회사 측의 업무 과중이었다.
통상 2~3명이 맡을 업무분량과 범위를 A 씨에게 맡긴 것이다. A 씨는 처음 몇 달 간은 적응하기 위해 출근과 퇴근 시간을 연장하면서 업무에 매달렸다. 그럼에도 시스템과 입력 방식이 바뀐 업무는 신규 업무와 같았고 A 씨는 손에 익숙할 때까지 업무시간 연장 등을 회사에 요구하며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근무시간에 해결하지 못한다며, 실수 등을 이유로 A 씨의 능력이 유치원생, 초딩 수준이라고 몰아붙이며 능력 부족을 지적했다. 오히려 회계업무의 결재 방법이나 업무처리 절차를 변경하여 업무 부담을 늘리기까지 했다고 A 씨는 주장했다.
A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고충처리 상담과 보직변경신청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상사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시간을 조금 더 달라는 요청에도 “20년 동안 일했으면서 그것도 못하냐”, “사람 참 피곤하게 한다” 등의 면박과 으름장만 듣게 됐다.
더 큰 문제는 회사 측이 회색지대에 놓인 A 씨에 대해 불합리한 행위들을 서슴없이 자행했다는 점이다. A 씨는 사실상 좌천성 임시 인사 후에 회사 측의 감시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무실내 설치된 CCTV로 A 씨 등 직원을 감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회계와 대출 업무 등 금융 관련 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된 CCTV가 A 씨 등 직원 감시로 쓰여진 것이다.
롯데칠성음료 신용협동조합 내 직원 괴롭힘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CCTV로 직원들의 근무태도 등을 감시한 정황들. 출처=제보자
실제로 CCTV 앞에 놓여 있던 A 씨의 책상 등을 상사가 지켜보면서 타박한 정황도 감지됐다. 회사 측은 A 씨에게 “근무시간에 왜 이렇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느냐”, “일 좀해라”, “책상에 똑바로 앉아라” 등 수시로 근무태도를 지적했고, CCTV 업체를 불러 CCTV 영상을 휴대전화로 연결하는 방법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급기야 대기발령 기간에도 사업장 어디에 있느냐? 등 A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하려한 정황이 SNS 등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A 씨는 마치 꼬투리를 잡기 위해 작정한 것 같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A 씨는 고충처리위원과의 상담을 정식으로 요청하자 회사 인사담당자는 자기가 고충처리위원이라고 했다가, 다른 소재지에 있는 고충처리위원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한 뒤 막상 상담 약속을 받으면 업무를 이유로 가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A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신협 측은 인터뷰 대신 서면질의 답변에만 응했다. 회사 측은 A 씨의 부당인사나 괴롭힘 등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A 씨가 오히려 결산회계 적자 상태 은폐 등 허위보고를 일삼아 경영상 심각한 오류를 불러일으켰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른 징계조치로 정직 처분을 했고, 지방 급식사업 소속으로 인사발령 후 A 씨가 거리상, 직무상 이유로 거부해 원래 직무인 회계담당으로 타 사업장 근무를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거부해 현재 근무하는 곳으로 인사명령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A 씨가 주장한 업무과중에 대해선 적응기간을 2개월 가량을 준데다 18년 경력인 만큼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였다고 해명했다. A 씨가 맡고 있는 임무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라고 못박았다. A 씨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당황스럽고, 허위보고 징계와 인사조치는 회사 업무상 필요한 조치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CCTV 관련사항은 업무상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취재과정에서 또다른 제보자의 사연도 나왔다. 신협의 특별회계를 당담했던 여직원 C 씨는 지난해 겨울,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다.
C 씨는 2017년 가을, 육아휴직 복귀 하루 전 문자로 인사발령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았다. 집이 경기도 성남이었던 C 씨는 원래 서초동의 사무실로 출근하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사무실로 발령이 났다. 일방적인 인사발령 문자에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장 아이를 맡아줄 사람을 구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했지만 회사에서 복직 하루 전 문자 한통으로 인사발령을 낸 것이 뭇내 서운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C 씨는 한달 반 동안 장거리 출퇴근을 하다 아이와 거리상의 문제 등으로 결국 자진 사직을 결정했다.
C 씨가 육아휴직 복귀 하루 전날 오후 회사 측으로 통보받은 인사발령 관련 문자.
C 씨는 16개 공장에 대한 부가세 신고와 급여 등 업무 자체가 한 두명이 하기엔 과중한 자리였지만 13년 동안 해온 회계 업무인 만큼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일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사장은 C 씨를 불러 “하는 일이 뭐냐”며 “표 작성을 수시로 시키는가 하면 보고를 분 단위까지 체크하며 업무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일을 만들어 사람 피를 말리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C 씨는 자신의 육아휴직 중에도 회사 일을 돕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C 씨는 A 씨의 현재 업무와 같은 일을 맡았었다. 또 C 씨는 자신이 육아휴직 전 인수인계를 한 직원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엑셀 등 회계업무 경험이나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40대 여직원이 직원 채용공지도 없이 업무를 맡은 것이 수상하다고 했다. 취재결과 이 여직원은 이사장의 지인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신협의 경우 자사와는 별도의 법인 형태로 모든 운영체계가 자사와 상관없이 진행된다”며 “이같은 의혹이나 논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못을 박았다. 실제로 1975년 설립된 신협은 롯데칠성음료 노조조합원들을 위해 식당과 직원대출 등 외식업과 식음료 및 조합원 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신협의 이사장은 조합위원장이 겸임하고 있고, 이사회는 조합원 4명과 롯데칠성음료 임원 4명과 본사 감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16개 공장 등에서 매년 30억 원 이상의 급식 운영을 감당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지원 속에 노조가 신협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한편, 기자는 신협 이사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부재 중이라는 답변과 함께 회사 측의 서면질의로 대체하겠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서면에서 조합의 이사장은 비상근 명예직이며, 기타 세부적인이고 구체적인 일은 본부장을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답했다.
결국 A 씨는 지난 달 인사담당자에게 또 다시 질책을 받다가 쓰러져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A 씨의 병명은 뇌경색증. 사고가 아닌 질병으로 인한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은 산재로 인정받기가 어려워 산재처리도 되지 않아 A 씨는병가와 연차 등으로 치료 기간을 충당하고 있다.
A 씨를 지켜본 노무사는 “A 씨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 수년 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다 자신의 잘못만을 걱정하는 등 안타까운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정작 직원에게 경영책임을 묻고 부당 인사조치에도 자진 사직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이어가고 있는 점은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더 안타까운 점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폭행이나 해고 및 임금체불이 아닌 이상 처벌이 쉽지 않은 점이라고 덧붙였다.
업무 복귀를 앞두고 있는 A 씨는 회사 측의 괴롭힘이 계속되지는 않을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은 20년 가량 몸담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다며, 보직이 변경되는 부당함이 있더라도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만 없기를 조심스레 바랄뿐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이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만큼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법적 개선이 절실해 보인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
처벌 사각지대 ‘직장 내 괴롭힘’ 10명 중 7명 최근 직장 내 갑질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유형별로는 임금 체불이 가장 많았으며 부당한 해고 및 업무지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괴롭힘을 동반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8~9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 20~64살 직장인 1506명 중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당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73.3%에 달했다. 괴롭힘 행위자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는 77.5%가 “상급자”라고 답했다. 반면 반발하거나 적절한 대처를 해봤다는 응답자는 극소수였다. 괴롭힘 피해자의 60.3%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으며 가해자에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응답자는 26.4%에 불과했다.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는 응답자는 이보다 적은 12%였다. 직장 내 괴롭힘의 사례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엽기적이고 잔혹한 행위들이 눈에 띈다. 구체적으로는 소주병을 들로 내리치려는 듯 위협하기, 고객들이 보는 영업장에서 목 조르기, 외투에 넣어둔 생리대를 불쑥 꺼내 직원들 앞에서 흔들어대기, 부하 직원에게 그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허리띠로 내려치기 등이다. 영화에서나 나오던 비상식적인 일들이 현실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괴롭힘의 사유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등 사소한 것이 대부분이다. 여러 명의 동료사원들이 자신을 제외하고 어울려 다니거나 대화 또는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낮은 단계의 따돌림 역시 직장 내 괴롭힘에 속한다. 이렇게 은밀하게 이뤄지는 직장 내 괴롭힘은 당사자가 느끼는 큰 고통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더 심각한 것은 문제제기 이후에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했지만 가해자에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절반 이상(53.9%)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는 응답은 39.3%로, 회사가 나서서 개선을 노력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피해자들은 문제제기 이후 업무상 부당한 대우나 불이익을 입거나(31.1%)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29.5%) 악의적인 소문이 퍼지는 것(26.9%)을 경험해야 했다. 최근 벌어진 한진 총수일가와 양진호 회장의 갑질 행태가 사회적 충격을 준 점도 사실상 놀랄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국회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연말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만연해진 것은 법의 공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 만큼 근로기준법 등을 개정해 폭언과 갑질 등에 대한 규정을 포함시킨다는 기대다. 그럼에도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분명하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10건이 넘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발의됐지만 그 중 국회를 통과한 것은 한 건도 없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매우 불명확하다”며 “법이 시행된다면 사업장에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법안 통과에 제동을 걸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휩쓸려서 애매한 자구 규정을 정확히 안 한다는 것은 법사위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근로기준법과 형법의 사각지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만큼 국회는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느 때보다 힘을 받고 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