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울시는 학교 시설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역 주민이나 단체가 교육에 지장 없는 범위 안에서 학교시설을 이용케 하려는 목적이었다. 인근 학교 시설을 이용하려는 건 지역 주민의 오랜 염원이었다. 이 조례 제정으로 학교장은 인근 지역 주민의 자유로운 학교 시설 이용이 제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 무용지물인 서울시교육청 예약 시스템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서울시 조례가 제정되자 2013년 초 학교 시설을 예약하는 ‘학교시설 유무선 예약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예약 시스템은 지역 주민이 예약하고 일선 학교 행정실에서 이를 관리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모두 예약불가로 해놓은 성동구의 한 학교 예약 시스템. 사진=서울시교육청 유무선 예약 시스템
문제는 대부분의 학교가 이 예약 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품이 더 드는 까닭이다. 보통 행정 교직원이 예약 시스템 관리를 담당한다. 교직원은 자기 업무를 소화하기도 바빠 예약 시스템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게다가 운동을 원하는 지역 주민 방문과 각종 사업체의 이용 요청은 주말에 몰린다. 이를 관리하려 주말에 출근할 교직원은 찾기 힘들다. 이렇다 보니 예약불가를 띄워놓고 개방을 하지 않는 학교가 대다수였다. 실제 예약 시스템에서 대부분 학교는 시설을 아무 이유 없이 ‘예약불가’로 표시했다.
한 교직원은 “이 예약 시스템을 아는 사람도, 관리하는 사람도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자기 업무에 바쁘다 보니 굳이 이 업무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거 관리하려 주말에 출근할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교장과 잘 아는 사람이 연 단위로 계약해 학교 시설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특정인에게 몰려 있는 영등포구의 한 학교 예약 현황. 사진=서울시교육청 유무선 예약 시스템
예약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학교도 일부 있었다. 허나 1년 내내 특정인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는 게 현실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학교는 2016년 3월부터 최근까지 2년 넘게 한 단체에만 임대했다. 올해부터는 아예 단체 이름으로 예약을 받았다. 그 전까진 최소 개인 이름으로 받긴 했다. 그 개인은 모두 단체 운영진으로 확인됐다.
7일 오전 마포구의 한 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단체. 이 체육관은 단체 2곳에 장기 임대됐다. 학교는 예약 시스템에 아예 예약을 받지 않도록 해 놨다. 사진=현장 취재 및 서울시교육청 유무선 예약 시스템
한 학교는 아예 예약 시스템에 ‘사용불가’ 표시를 해 두고 뒤로 특정단체에 학교 시설 이용 권한을 몰아줬다. 11월 7일 오전 6시 40분쯤 ‘일요신문’이 직접 방문한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선 배드민턴 동호회 27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체육관 현관문 앞에는 이 단체 외 또 다른 단체 등 2곳이 이 학교 체육관을 오전 오후로 나눠 독점한 시간표가 걸려 있었다. 교육청이 만든 예약 시스템상 이 학교 체육관, 강당은 사용불가 X 표시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이 만든 예약 시스템은 허울만 좋은 깡통이었다. 행정과 현실은 따로 놀았다. 이렇다 보니 예약 시스템에는 온갖 불만이 폭주했다. 예약 시스템의 자유게시판에는 2013년 3월부터 현재까지 게시물 50건이 올라와 있다. 개시 때 환영 인사 1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게시글은 모두 민원과 서울시교육청의 답변이었다. 초반에 서울시교육청은 “자유게시판은 답변이 불가한 게시판임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쓴 뒤에도 민원에 각각 답변을 달아주긴 했었다. 친절의 기한은 2016년 4월까지만 유효했다. 그 뒤부터 서울시교육청은 일체 게시판 민원에 대응하지 않았다.
1월 25일 한 시민은 예약 시스템 자유게시판에 “이 사이트는 시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인지요? 밑지는 셈치고 예약을 걸어보았는데 3년 전에도 현재까지도 나아진 건 없군요. 사용 2개월 전부터 예약할 수 있게끔 돼 있어서 ‘한 번 더 속아 보자’ 하고 해봤는데 역시나네요”라며 “이미 오프라인이든 다른 계통이든 연간 계약이 돼 독점 사용되는 곳도 많습니다. 관련법령은 그냥 허울인가요? 하기야 독점 사용하면 짭짤한 연간 수입도 보장되겠네요.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 모임이나 비인기 종목은 꿈도 꾸지 못하겠습니다. 본연의 목적보다는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에 불과한 현실이 아쉽습니다”라고 적었다.
# 예약자도 학교도 예약 시스템을 이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현실
학교 시설을 이용하려는 부류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한시적 단체 운동을 하려는 지역 주민 집단, 동호회 등 운동단체, 시험 대행 등을 영위하는 사업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다른 문제는 사업체의 학교시설 이용이다. 학교는 불투명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시험 대행 업체는 서울시교육청이 정해 놓은 임대료 외 웃돈을 학교 쪽에 주는 경우도 생겨났다. 강남 등지의 지하철역 인근 학교는 임대료 외 웃돈까지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부동산 시장과 흡사한 형태다.
웃돈은 인건비 형태로 얹어진다. 학교는 보통 관리 감독 인원을 학교 쪽에서 투입하겠다는 이유로 시설 임대료 외 인건비를 받는다. 파견 인원을 형식상으로 부풀려 인건비를 받아 챙긴 뒤 실제 한두 명만 보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입사 시험 등이 펼쳐지는 학교 현장에서 수험생 관리 감독을 맡은 인력 대부분은 시설을 이용하는 회사 직원이다. 이 인건비가 아예 권리금화됐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부풀려진 인건비를 학교에서 누가 어떻게 쓰는지 알려진 바 아직 없다.
더 큰 문제는 업계에서 차명 계좌로 돈을 보냈다는 증언까지 나오는 상황이란 점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자금을 두 개로 나눠 하나는 학교에 공식적으로 입금하고 다른 자금은 학교 관계자의 차명 계좌로 보낸 적도 있다”고 했다. 결국 학교 입장에서는 예약 시스템을 이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품이 더 들고 임대료 외에 발생하는 매출의 유혹도 뿌리치기 힘들다. 매출을 교육청이 파악하면 좋을 일 없다.
# 시혜성 예산으로 전락한 학교시설 개방 지원
현재 구조로 학교는 꼼수로 깜깜이 매출을 올리고 이 실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이 주는 지원금도 덤으로 타갈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학교 시설 공개에 적극적인 학교에 연 9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시는 30억 원을 보탠다. 서울시는 서울 지역 주민이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교육청에 개방을 독려해 달라고 예산까지 지원하며 부탁하는 입장이다. 허나 서울시교육청의 학교시설 개방 지원은 본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시혜성 예산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시교육청은 앞선 연도 학교 공개 실적을 기준으로 학교를 7등급으로 나눠 예산을 집행한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올해 ‘학교시설 개방에 따른 학교운영비 및 시설보수비 지원 현황’에 따르면 현재 이 예산은 특정인이나 일부 단체에 독점적으로 시설을 공개한 학교나 사업체에 시설을 공개한 학교에도 여과 없이 집행됐다.
성동구의 한 학교는 학교 시설 개방 1등급을 받았지만 6명에게만 학교 시설을 독점 공개했다. 사진=서울시교육청 유무선 예약 시스템
올해 학교시설 개방 지원 1등급을 받은 학교 대부분은 특정인, 특정단체에 전속 개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의 한 학교는 1등급을 받아 지원금을 타갔는데 실제 이 학교는 2017년 5명에게만 체육관을, 1명에게만 운동장을 독점적으로 개방했다. 다른 1등급 학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약 시스템에는 ‘예약불가’로 가득했지만 1등급을 받아 예산을 받은 곳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시교육청이 예약 시스템 기준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제출한 실적을 기준으로만 예산을 내리는 까닭이다. 현행 방식만 따져 보면 서울시교육청은 자신이 만든 예약 시스템을 키워나갈 의지가 전혀 없다. 최소 예약 시스템을 잘 운영할 취지가 있었다면 예약 시스템에 근거한 자료로 예산을 내렸어야 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일부 단체나 사업체에 연간 단위로 공개하고 웃돈을 받은 뒤 그 자료를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하면 또 다른 눈먼 돈이 나오는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의 탁상행정에 시민의 세금은 본래 목적과 다른 학교로만 계속 사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약 시스템은 사용자 편의를 위해 만들었지만 관리 주체는 학교다. 학교 입장에서는 시설 개방이 주요 업무가 아니고 굳이 이걸 써야 할 필요성이 없어서 우선순위가 뒤처져있는 건 맞다. 개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이 아직 나온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서울시 “예약시스템 운영할 묘안 있다” 핵심은 관리 인력 확충이다. 학교 시설 공개에는 반드시 품이 드는데 이를 관리할 인력이 일선 학교에서 부족하다. 학교는 굳이 관리 인원을 배정해 이를 운영할 마땅한 이유도 없다. 당근책으로 제시된 예산은 꼼수로도 타낼 수 있는 상태다. 모든 학교 시설을 무조건 서울시교육청 예약 시스템을 거쳐 공개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허나 이 역시 누가 관리감독할 거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예약 시스템 자체를 지자체가 운영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학교가 교육감 소관 자산이고 결정 권한이 각 학교장에게 있어서 쉽지 않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 예약 시스템을 운영할 방안을 준비해 놨다고 알려졌다. 공유 기업 등 대안이 충분히 갖춰져 서울시교육청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일선 학교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조금만 도와준다면 서울시는 예산도 투입하고 함께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밝혔다. [최] |
범죄율 올라간다고? 되레 ‘주민 감시’ 활성화 될 수도 학교 시설 이용객이 늘면 범죄에 취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조례 제정 때부터 꾸준히 나온 반대 이유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범죄율은 인구 증가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지역 밖 외부인의 유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까닭이다. SBS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5대 강력범죄는 서울 중구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중구는 서울에서 거주 인구가 적은 구다. 서울 중구 외에도 5대 강력범죄는 거주인구 대비 주간인구 증가가 많은 곳에서 빈번한 경향을 보였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에 대한 애착과 지역민으로서의 책임감, 평판 관리의 필요성 등이 낮기 때문에 갈등이나 대립이 범죄로 좀 더 쉽게 이어지는 경향이 높다”고 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외부인의 유입이 많은 곳은 되레 사람들 사이의 감시 체계가 약하다. 지역 주민으로서의 책임감도 찾기 힘들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학교 인근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서 보통 일어나기 마련이다. 지역 주민의 출입이 잦아지면 학교 인근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지역 주민 감시에 놓이게 된다. 현재 일선 학교에서는 단체나 단체 대표 1인과 계약을 한 뒤 별다른 관리감독을 하고 있지 않다. 7일 오전 취재진이 한 학교를 찾았을 때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경비실은 비어있었고 출입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았다. 한 학교 관계자는 “학교 시설 관리 감독 체계는 외부에 줬을 때 더욱 강력하게 통제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1명이 임대를 신청하면 실제 100명이 오는지 200명이 오는지 학교에선 확인도 안 한다. 학교에 오는 사람의 신분증조차 검사하지 않는다. 이걸 충실히 할 인력도 별로 없다”고 했다. [최] |
“교장과 친한 동호회가 쉽게 이용하더라” 현장 목소리 들어보니 대부분 학교는 특정 동호회와 연간 계약을 맺고 공간을 임대한다. 동호회에서는 다양한 지역 주민의 시설 이용을 반대하는 편이다. 매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고 금액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동호회는 장기계약시 임대비용을 절반 정도 할인 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동호회 대부분이 지역 주민으로 이뤄져 있기에 별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동호회가 곧 지역 주민으로 이뤄졌는데 이게 독점이라고 볼 수 있냐”고 했다. 이에 대해 한 학교 관계자는 “한 종목 동호회도 여러 개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 동호회 가운데 학교 시설을 가장 쉽게 이용하는 곳은 교장과 친한 사람이 소속된 동호회였다.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데 지역 주민의 다양한 참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장기계약을 하더라도 운영의 묘를 살려 각자의 시간대와 이해관계를 잘 정리할 수 있는 관리감독자가 필요한 현실이다. 허나 학교는 그런 역할을 하기 힘들다. 제3의 주체가 개입돼 좀 더 투명하게 관리하면 지역 주민과 학교가 공생할 수 있는 구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예약 시스템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바로 비인기종목 등을 차별하는 현행 동호회의 독점 방식이었다. 막상 주말에 학교 학생이 학교 운동장에 방문해도 예약이 이뤄져 있으면 놀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도 제기됐다. 이 문제는 되레 현행 학교의 무분별한 공개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학생이 운동장으로 놀러오는 시간은 매우 뚜렷한 경향성을 보인다. 세밀한 관리로 이를 피해서 운영하면 될 일이다. 학교는 방학 때문에 1년의 절반 가까이를 놀리는 유휴시설이다. 그런 몇 가지 이유로 시설을 그냥 비워 놓는 건 국가 재산을 낭비하는 꼴”이라며 “핵심은 임대한 단체와 학교 학생의 방문 경향 데이터를 축적해 오차를 줄이는 일이다. 그걸 할 수 있는 주체만 있으면 얼마 안 돼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