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신임 정책실장(앞줄 왼쪽)과 임종석 비서실장(앞줄 오른쪽). 이종현 기자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우여곡절 끝에 교체되자 지난 6월 물러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둘은 교수 출신으로 청와대 요직에 발탁됐고, 현 정권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브레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의 홍 전 수석은 소득주도성장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장 전 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을 실천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깜짝 발탁된 인물이다.
둘은 김동연 전 부총리가 이끌던 경제부처와 그리 원활할 관계가 아니었다. ‘김앤장’ 불협화음은 익히 알려진 얘기고, 홍장표 전 수석 역시 김 전 부총리와 여러 부문에서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장 전 실장보다 홍 전 수석에 대한 불만이 더 많았다. 경제수석실과 더 부딪히는 업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면서 “어찌됐건 둘이 ‘김동연 패싱’을 주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홍 전 수석에 이어 장 전 실장까지 그만두자 문 대통령이 결국 ‘백기’를 든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는데,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선 문재인노믹스를 상징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수정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 참모들과 공직사회 간 파워게임에서 문 대통령이 관료들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한 친문 의원은 “개혁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청와대 참모들이 연이어 바뀐 것을 두고 문 대통령이 관료들에 포위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면서 “비슷한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참여정부 시즌2 우려가 확산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추측은 오산이었다. 한 발 물러서는 듯했던 문 대통령은 오히려 더 독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왕수석’으로 불렸던 김수현 사회수석을 신임 정책실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김 실장은 여권에서조차 정책실장 자리에 적합한지 의문부호가 달렸던 인물이다. 부동산 대책을 비롯해 그가 추진했던 여러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김 실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수현을 흔히 ‘정책 실세’라고 부른다. 진짜가 나타났다는 말이다. 경제부처로선 이리가 물러나고 호랑이가 온 격이다. 장 실장보다 상대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 신임이 워낙 두텁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문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남겨두고 싶은 ‘히든카드’였을 것이다. 이는 도마에 오른 소득주도성장을 고수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관료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읽힌다. 장하성 전 실장이 관료들을 처음 상대해봤다면, 김 실장은 참여정부 때 공직사회 벽에 부딪혀 좌절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청와대는 “경제 원톱은 부총리”라고 강조하며 김 실장에게로 지나친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김 실장의 ‘체급’을 비교해봤을 때 누가 실권을 갖고 경제를 주도할진 쉽게 짐작이 간다. 사실상 김 실장이 경제팀 원톱이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앞서의 기재부 간부는 “인사를 보면 대통령 의중을 알 수 있는데, 앞으로도 청와대가 주도권을 갖고 가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홍남기 부총리 후보자가 원톱이라는 청와대 말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김앤장’에서 ‘김앤홍’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재계 1위 삼성그룹 임원 역시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경제 원톱은 당연히 김수현”이라면서 “김앤장 시절보다 더 청와대로 힘이 쏠릴 것”이라고 점쳤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친문 인사들은 문 대통령 결단 뒤엔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 대상은 관료들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공직사회의 노골적인 반발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시작된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감, 코드인사, 청와대 참모 중심의 국정 운영 등이 겹치면서 관료들 불만은 팽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 정부에서 흔히 반복됐던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의 기 싸움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려줬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시급한 업무를 아무리 재촉해도 좀처럼 마무리가 되질 않았다. 아주 세세한 것까지 원칙과 기준을 들먹거리면서 문의를 계속하곤 한다. 그러는 사이 일 처리는 늦어진다. 청와대를 골탕 먹이는 방식이라고 하더라.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속만 앓는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한번은 일을 내려 보냈는데 회신이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담당자는 아무런 전달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청와대 오더를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일부 직원들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인 보이콧 아니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청와대가 보안을 당부한 민감한 내용이 정치권과 언론 등에 유출되는 일도 늘어났다고 한다. 부처 내에서 소위 ‘빨대’로 불리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맞물린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이 대통령에 보고되기 전 언론에 보도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담당부서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등 유출자 색출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빨대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그만큼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을 반영한다”면서 “이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권력누수는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공직사회를 상대로 한층 고삐를 조일 것이고, 김수현 실장이 그 ‘특명’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 김 실장은 경제부처들의 소득주도성장 관련 업무가 적절하게 추진되고 있는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청와대는 민정수석실 주도로 감찰을 강화해 공직사회 군기를 잡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치권에서 문재인 정부 집권 중반기의 ‘키맨’을 김수현 실장과 조국 수석으로 꼽는 이유다.
청와대의 이러한 스탠스는 정치권 ‘뜨거운 감자’인 임종석 비서실장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임 실장과 관련해선 총선 출마, 입각 등의 설이 나돈다. 어찌됐건 청와대에선 일단 나올 것이란 얘기가 정설로 통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구상 중인 ‘강력한 청와대’는 임 실장 없인 이루기가 힘든 그림이다. 친문 의원은 “임 실장이 자기 정치에 욕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당분간은 청와대에 머물면서 문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