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0월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이해찬 막후 조정자 역할론 내막은 이렇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앤장(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시대는 막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이 꾸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해를 넘기면 집권 3년차를 맞는다. 문 대통령 ‘두 남자’(이낙연 국무총리·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정 장악력은 한층 높아졌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포스트 문재인’을 꿰차고자 서서히 이동 중이다. 이 대표가 이들 사이에서 ‘속도 조절 및 링 등판’을 주도한다는 게 막후 조정자 역할론의 핵심이다. 여의도 안팎에선 여권 차기 대선주자가 ‘이손’(이해찬의 손) 안에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 대표의 막후 조정자 역할론은 이미 가동한 모양새다. 일단 ‘속도 조절’이다. 그는 이재명 지사의 거침없는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 지사는 자신을 수사한 분당경찰서 지휘부를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만류로 11월 6일 고발을 철회했다. 이 지사 측 백종덕 변호사는 “당의 공식 요청을 대승적으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원조 강성인 이 대표가 강성 신주류인 이 지사의 돌출행동을 제어한 셈이다.
백 변호사가 언급한 당의 공식 요청 주체는 이 대표였다. 이 대표는 이 지사 측에 “경찰 고발은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으니 다시 검토하는 게 좋겠다”고 전달했다. 이 지사 측이 예정대로 분당경찰서장과 수사과장, 팀장, 담당 수사관 등 4명을 피고발인으로 한 고발장을 수원지검에 제출했다면, 경찰과 집권당의 광역자치단체장이 정면 대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의도 안팎에선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이 대표가 비노(비노무현)계 이 지사를 링 안으로 끌어올리려는 장기적 포석”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 대표와 이 지사는 6·13 지방선거 당시부터 ‘전략적 제휴설’에 휩싸였다. 친문(친문재인) 직계인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당내 경기도지사 경선에 출마했을 때 이 대표는 이 지사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지사 측 인사들은 8·25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대세론’을 지원했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이화영 전 의원은 현재 경기도 평화부지사다.
문 대통령 좌우에 포진한 ‘이낙연·임종석’도 이 대표의 막후 조정 대상이다. ‘호남 대권주자론’의 원투펀치인 이들은 최근 물밑 암투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 대표의 또 다른 과제는 ‘내상 없는 내부경쟁 체제’ 형성이다. 그래야만 시너지효과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정·청의 최고 수뇌부인 3인방은 매주 일요일 서울총리공관에서 만찬회동을 한다. 경제정책 등 현안 관련 논의가 주를 이루지만, 차기 행보에 관한 얘기도 오갈 것으로 추측된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 핵심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천거했다. 청와대도 이를 인정하면서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줬다. 무늬만 총리라는 비판에서 책임총리로서 위상을 찾은 것이다. 당 내부에선 이 총리를 놓고 “참여정부 ‘이해찬 국무총리’ 이후 가장 막강한 총리”라는 말도 들린다. 이에 대해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 총리에게 힘이 실리는 문제와 차기 대권주자로서 경쟁력은 다른 문제”라며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임 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재인 정부 2인자다.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가 주도한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였다. 임 실장의 위상은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이 예정된 집권 3년차 때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의 관전 포인트는 임 실장이 움직이는 시점과 방향이다. 최근 친문계 사이에선 ‘김정은 답방 후’ 임 실장의 다음 행보가 본격화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임 실장 향후 플랜은 ▲통일부 장관 등 부처 장관 ▲21대 총선(서울) 출마 ▲차기 서울시장 도전 ▲차기 대선 직행 등 다양하다. 임 실장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권 잠룡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에선 김부겸 장관 등이, 광역자치단체에선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김경수 지사 등이 차기 대권주자로 꼽힌다. 이 중 ‘영남 필승’론 후보인 김부겸 장관은 이 총리와 막역한 사이다. 이 총리의 관계망 근원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등에서 함께 활동했다. 김 장관 측근 일부는 8·25 전당대회 때 이해찬 캠프에서 들어갔다. 박 시장도 이 대표와 가깝다. ‘시민이 권력을 이긴 것’으로 평가받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시장은 이 대표가 몸담았던 ‘혁신과통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김경수 지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다. 친노계 막내급이던 김 지사는 2016년 4·13 총선과 2018년 6·13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친문 핵심→포스트 문재인’으로 진화하고 있다. 당 주류인 친노·친문계가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분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대표의 막후 조정 역할론은 계파 구심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관리대상은 당에도 있다. 추미애·송영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직전 민주당 수장이었던 추미애 의원은 8·25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를 지지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친문 직계의 힘을 제어할 대표는 이해찬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인 송영길 의원은 당시 “공정한 선거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만 친문 직계에 맞서 친노계와 86그룹이 전략적 제휴를 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들의 관계설정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대표는 정계은퇴를 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정국 한복판으로 불렀다. 유 이사장은 2007년 대선을 끝으로 사실상 민주당과 연을 끊었다. 2010년 6·2 지방선거 직전 국민참여당을 창당한 유 이사장은 이후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에 몸담았다.
일각에선 정권 중후반기로 갈수록 이 대표의 힘이 세지는 것은 되레 차기 대권주자의 존재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경우 킹과 킹메이커의 경계선은 모호해진다. 당 안팎에서 ‘이해찬 대망론’을 띄울 수도 있다. 당·청 간 갈등은 물론, 당 내부 분열이 노골화할 수도 있다. 취임 후 거침없는 이 대표의 행보를 보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야권의 비판 공세를 예상했음에도 5·24 해제를 비롯해 토지공개념, 국가보안법,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등의 이슈를 주도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고 말했다. 집토끼 잡기를 위한 일종의 판 깔기라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취임 후 첫 현장 최고위원회를 보수의 심장인 경북 구미에서 열었다. 동진전략을 통해 산토끼 잡기에도 나선 것이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때 ‘실세 총리’였던 이 대표가 이제는 ‘실세 대표’가 된 격”이라고 말했다. 10월 26일 연 전당대회 캠프 해단식은 이 대표의 위상을 짐작케 했다. 수백 명의 당원이 이례적으로 1박2일 일정으로 행사를 가졌다. 선거를 치른 지 두 달 만에 캠프 해단식을 가진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20년 집권론’과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당내 혁신과 민주적 소통을 통해 긍정적 평가를 얻어야 20년 집권도 가능하다”며 “억측을 막기 위해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 대표가 마지막 공직”이라고 피력했다. 하지만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킹메이커를 넘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대표에게 막후 조정 역할론은 일종의 ‘꽃놀이패’다. 이 대표가 킹메이커를 하든 킹을 하든, 흔들리는 쪽은 친노계가 아니다. 원조 친노와 결이 다른 친문계와 야권이다.
윤지상 언론인
예산·입법 심사 좌우? 문희상·손학규 ‘연말정국 키맨’ 부상 예산·입법 심사가 본격화하면서 두 정치인이 주목받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다. 20대 후반기 국회를 이끄는 문 의장은 예산부수법안 지정과 직권상정 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 손 대표는 보수 야당의 한 축인 바른미래당(30석)을 이끌고 있다. 현 국회가 ‘여소야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른미래당은 연말정국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예산안 등의 운명이 문 의장과 손 대표의 관계설정에 달린 이유다. 70대인 문 의장(1945년)과 손 대표(1947년)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이들은 손 대표가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한 2007년 대선부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2016년 10월 21일까지 한배를 탔다. 하지만 계파는 정반대였다. 문 의장은 친노(친노무현)계 원로다. 참여정부 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반면 손 대표는 비노(비노무현)계를 대표하는 주자였다. 손 대표 탈당 이후 두 정치인의 운명은 엇갈렸다. 문 의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입법부 수장으로 격상했다. 민주당과 결별한 손 대표는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미묘한 물밑 기 싸움도 엿보였다. 가을정국의 뜨거운 감자였던 청와대의 ‘국회 방북 동행 요청’이 대표적이다. 문 의장은 9월 10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 및 여야 정당에 3차 남북정상회담 동행 방북을 요청한 지 1시간 만에 ‘불가’를 통보했다. 국회 부의장단과의 회동에서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말했지만, 속사정은 있었다.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문 의장은 취임 초부터 통일부 고위공무원을 국회의장실에 파견 받는 등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남북 국회회담 추진도 핵심 과제다. 문 의장은 손 대표가 합류하면 국회 부의장단 등이 모두 갈 것으로 판단하고 바른정당에 의중을 파악했다. 양측 간 사인 오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문 의장 측은 손 대표가 청와대의 제안을 수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손 대표는 “문 의장에게 전날(9일) 방북 초청 연락을 받고 불참을 결정해 문 의장에게 회신했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여권 관계자는 “문 의장 측이 손 대표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캐스팅보트인 바른미래당이 만만치 않은 힘을 과시한 셈이다. 다만 손 대표가 연말정국에서 존재감을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야권 관계자는 “손 대표의 약한 리더십은 ‘바미스럽다’(이도 저도 아닌 바른미래당의 정체성을 꼬집는 말)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