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 이건희→이재용 체제 개편의 변곡점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우면서 삼성그룹은 사실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로 전환된다. 하지만 지배구조는 여전히 ‘이건희-삼성생명-삼성전자’였다. 하루 빨리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의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마침 이때부터 삼성 지배구조는 급격히 개편된다.
이 회장이 건재하던 2013년 말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인수한다. 이어 2014년 7월 제일모직의 화학부문이 삼성SDI에 흡수되면서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해 12월 제일모직은 기업공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삼성에버랜드 상장은 삼성이 오랜 기간 부인하던 작업이었지만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 후 반 년도 안 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시도도 있었지만 너무 서두른 탓에 매수청구권이 쏟아지며 좌절된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서 첫 고배를 마신 사례여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해에는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을 한화그룹에 넘기는 ‘빅딜’도 이뤄진다. 공교롭게도 이후 한국승마협회 회장사가 한화에서 삼성으로 바뀐다. 2015년 5월 삼성은 상장한 지 채 반 년에 안 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계획을 발표한다. 미국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반대 캠페인에도 결국 합병은 이뤄진다. 뒤이어 2016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이 이뤄진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세종대로 서울정부청사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삼바 사태…지배구조 개편 지연 불가피
201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기준을 바꾸면서 삼성물산도 득을 봤다. 연결재무제표 작성 대상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본잠식을 피하면서 삼성물산도 약 1조 8000억 원의 부채증가 부담을 덜게 됐다. 제일모직과 합병 이후 주가 내리막을 겪던 때였다. 자회사 문제로, 그것도 이재용 부회장의 아이템으로 꼽히던 바이오 사업에서 부채가 급증할 경우 상당한 부담일 수 있었다. 특히 회계기준 변경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이 이뤄지면서 삼성물산은 정부의 금산분리 공세에 대해 결정적 ‘방패’를 보유하게 됐다.
금산분리가 강제화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경우 이를 그룹 내부적으로 흡수할 곳은 삼성물산이 유일하다. 문제는 24조 원에 달하는 재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후 주가 고공행진을 거듭했고 올 4월에는 장중 한때 60만 원에 달하며 시가총액만 40조 원에 육박했다. 당시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가치만 20조 원에 달했다. 이를 삼성바이오로직스 2대 주주인 삼성전자에 매각하면 20조 원의 현금이 만들어진다. 5조 원대의 세부담이 발생하지만 삼성물산 자체 자산을 활용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정도의 자금은 마련할 수 있었다.
이번 사태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이 같은 시나리오는 당장 어렵게 됐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폐지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이번 사태만 넘기면 본질 사업가치를 바탕으로 다시 주가 상승을 노릴 여지는 남은 셈이다.
# 불확실성 제거…전화위복 되나
지난 7일 바이오젠이 2조 2478억 원 규모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을 넘겨받으며 지분율을 49.9%로 높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파생상품 부채 1조 9336억 원을 털어내게 됐다.
이제 바이오젠이 투자차익을 현금화하려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상장해야 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아직은 적자 기업인 데다 이번 분식회계 논란까지 겪으면서 국내 상장은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 나스낙 상장은 가능할 수 있다. 삼성이 한때 추진했다가 국내 여론에 밀려 접었던 방안이지만 이번엔 바이오젠 입장에서 적극적일 수도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이 이뤄진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에는 호재다. 주가가 오른다면 금산분리에 대응할 삼성의 ‘방패’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넘기려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삼성전자 주주들의 동의다. 수익성과 장래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로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삼성이 오히려 바이오사업에 집중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숨은 변수는 있다. 증선위는 이번 분식에 대해 검찰 조사를 의뢰했다. 책임 소재를 밝히는 과정에서 최순실 사태로 대법원 재판을 남겨 놓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자칫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
바이오 터진 날 위장계열사까지… 삼우, 삼성 품에 안길 때 25억 이익→81억 손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여부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판단이 나온 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위장계열사를 두고 신고하지 않은 혐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삼성바이오와 위장계열사 모두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삼성물산의 계열사와 관련이 깊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는 1976년 설립돼 설계와 감리업무를 주로 해왔다. 1982년까지 삼성의 계열사였지만 이후 회사 임원으로 주주가 바뀐다. 공정위는 이후 회사 임원이 차명으로 지분을 소유했을 뿐 실소유주는 삼성이었다고 판단했다. 2013년까지 감사보고서상으로 삼성과의 관련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014년부터 눈길을 끄는 움직임이 드러난다. 2014년 8월 설계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삼성물산에 매각한 게 결정적이다. 물적분할 후 매각은 일종의 사업양수도다. 매각 대금은 회사에 귀속된다. 처분이익은 불과 33억 원이었다. 2013년까지 25억 원의 세전이익을 내던 설계사업부는 2014년 8월까지 81억 원의 세전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삼성으로 넘어간 설계부문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로 이름을 바꾼 후 2014년 8월 20일부터 연말까지 683억 원 매출에 14억 원의 세전이익을 기록한다. 이후 삼우종합도 삼우씨엠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어 자회사이던 서영엔지니어링 지분 70%도 삼성에 매각하기로 한다. 흑자기업이던 서영 역시 지분매각이 이뤄지던 2014년 26억 원의 적자를 내고, 삼성으로 넘어가자마자 2015년 다시 28억 원의 흑자로 돌아선다. 설계부문과 서영을 떼어낸 삼우씨엠은 매출이 600억 원대로 줄어들고 연간 세전이익도 20억 원대로 반토막이 난다. 주주구성도 오묘하다. 2013년까지 ‘임직원과 개인주주 100%’에서 2014년 ‘임직원 100%’로 바뀐다. 2014년에는 1억 원의 유상증자와 69억 원의 중간배당이 이뤄졌다. 2015년 삼우씨엠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주주구성이 허인 대표(15.8%), 이호준(0.8%), 우리사주조합(77.3%)이다. 즉 임직원이 아닌 개인주주들이 2014년 보유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넘긴 것이다. 주인 없는 회사가 된 것이다. 2018년 상반기 현재 삼우씨엠은 매출 398억 원 세전이익 33억 원의 안정적 경영실적을 보이고 있다. 주주구성은 같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