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아시안게임 논란에 입을 열었던 선동열 감독. 박정훈 기자
[일요신문] 선동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역대 최초로 선임된 야구 대표팀 전임 감독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됐다. 그는 이전까지 대표팀 투수코치를 역임하다 지난해 7월 감독직에 올랐다. 임기는 2020 도쿄올림픽까지 약 3년이었지만 부임 1년을 갓 넘어선 시점에 중도하차하게 됐다. 지난 1년간 그와 국가대표 야구팀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허니문’은 아시안게임부터 ‘삐걱’
지난 7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입에 많은 시선이 쏠렸다. 역사상 최초의 대표팀 전임감독 발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KBO는 이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대표팀 운영에 관한 업무를 넘겨받은 후였다.
‘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은 선동열 감독에게 붙게 됐다. 이 같은 KBO의 결정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에서의 성과에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대표팀 투수 코치로서의 오랜 경력이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선수시절 전설적 투수 출신인 그는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는 투수 코치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의 국제대회에 나선 바 있다.
선 감독의 첫 임무는 부임 4개월 차에 열리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였다. 결승전에서 일본에 현격한 차이로 패배를 당했지만 질타보다는 박수가 쏟아졌다.
허니문 기간을 이어가던 선동열호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에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예비 명단에 이어 최종 명단이 발표되자 선발된 일부 선수들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야구팬들은 이전부터 오지환, 박해민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군경팀 입단 기회를 거부했다. 이들은 이전까지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경험도 없었다. 팬들은 지난 2014년 대회에서 ‘구단별 미필 배분 논란’을 기억하고 있었다.
LG 프랜차이즈 스타 오지환은 특히 여론의 융단 폭격을 맞았다. 상무 입단을 포기하면서도 “국가대표 선발을 기대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선 감독도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를 생각했지만 후보가 마땅치 않아 한 포지션이라도 잘하는 선수를 뽑았다”며 선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표팀 행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 같은 설명은 충분치 않았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대회에 나선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대만에 패배하며 어렵게 금메달을 획득했고 논란의 중심이었던 오지환이 컨디션 난조를 겪으며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대회가 마무리됐지만 선 감독과 일부 선수들은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은 대회 전후로 논란에 대한 상세한 해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는 축구에서 황의조 발탁이 ‘인맥 논란’으로 번진 상황에서 이례적인 브리핑으로 정면 돌파를 택한 김학범 감독의 태도와 대조(아시안게임에서 황의조 선수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활약을 했다.)됐다.
침묵을 지키던 선 감독은 대회 폐막 이후 한 달 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10월 4일 기자회견을 “대표팀 선발 과정은 전력 구축을 최우선으로 공정하게 진행됐다”면서도 “다만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10월 중순으로 예정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출석이 예정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계속되는 침묵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었다.
네티즌들과 소셜미디어에서 의견을 나눴던 손혜원 의원. 사진=손혜원 의원 페이스북 캡처
선 감독에게로 쏠린 비난의 화살이 방향을 튼 것은 국감이 진행되면서부터였다. 사상 최초로 국감에 나선 대표팀 감독에게 문체위 의원들은 질타를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봉이 얼마인가”, “선수 관찰을 위해 현장을 찾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시각에 따라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오며 의원들에게로 여론의 역풍이 불었다.
많은 화제를 낳은 선 감독의 국감 출석에 손 의원은 이후로도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자신의 뜻을 밝혔다. 댓글로 네티즌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선 감독의) 연봉이 과하다”면서도 “사퇴하는 것은 반대다. 사과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로도 아시안게임의 여파가 잊혀 질 법도 했지만 논란은 지속됐다. 이번엔 정운찬 KBO 총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선 감독부터 시작된 대표팀 전임감독제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 감독이 TV로 선수들을 관찰한 것에 대해서도 “불찰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정 총재 또한 야구계 입장을 적절히 대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선 감독은 11월 14일 사퇴 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그는 기자회견문에서 “국감에 출석했을 때 한 국회의원이 ‘우승이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게 사퇴결심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손 의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었다. 또한 정 총재의 발언에 대해서도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을 비로소 알게 됐다. 자진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선 감독의 사퇴 소식이 알려지며 손 의원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부 네티즌들은 손 의원의 사퇴를 요청하거나 ‘손 의원을 야구 대표팀 감독으로 추천한다’는 청와대 청원글까지 게시하고 있다. 이에 손 의원은 선 감독 사퇴와 관련해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의원실에서는 “사퇴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고 손 의원 소셜 미디어에서도 야구 관련 언급이 없었다.
정운찬 KBO 총재가 10월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향후 대표팀 운영은 어떻게?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야구는 계속된다. 지난해 APBC, 올해 아시안게임을 치른 야구 대표팀은 향후 2년간 프리미어12와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자리와 코칭스태프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다만 운영 방향에 대해서는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선 감독에서 성사된 전임감독제는 그간 야구계의 염원이었다. 대표팀이 지속성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표팀 감독직은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폭탄 돌리기’ 하듯 지도자들 사이에서 떠밀렸다. 한 때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 방안이 채택되기도 했지만 이내 유명무실해졌다.
이에 현행 전임감독제 유지에 대한 의구심조차 드는 상황이다. KBO 관계자는 “아직 향후 운영에 대해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전임감독제 지속 여부나 감독 후보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는 내년 1월로 예상되는 KBO 이사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 감독이냐 대회별 감독이냐를 떠나 새로운 감독의 선임은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다음 국제대회인 프리미어12까지는 시간적 여유(2019년 11월)가 있다. 선 감독 부임 당시 함께 거론되던 이들은 조범현, 류중일 감독 등이었다. 다만 류 감독은 그 사이 LG에 취임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외에도 김진욱 감독이나 대표팀 감독으로 성과를 낸 바 있는 김경문 감독이 소속팀 없이 후보군에 오를 수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