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 바둑동호회 발족 당시의 모습.
[일요신문] 가족, 직업, 종교 외에 살아가며 또 소중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노후까지도 가지고 갑니다. 요리일 수도 있고, 독서일 수도 있습니다. 골프일 수도 있고 등산일 수도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일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다양합니다. 취미생활이 없다면 삶은 단조롭고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제 취미는 독서와 바둑인데, 어느 날부터 삶이 메마른 느낌입니다. 책은 구하기가 힘드니, 한국에 가서 가져와야 합니다. 요즘은 한국엘 거의 안가니 이젠 읽을 책이 없습니다. 바둑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웠으니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 바쁜 고3 때도 바둑을 두다 져서 밤새 반성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 기억이 납니다. 그 상대들은 대학에 가서 대학대표로 나간 친구들입니다. 미얀마로 온 뒤 어느 날 한국서 바둑판과 알들을 선물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제 방에는 그 바둑판과 흑백의 돌들이 깨진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엔 미얀마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려고 가져왔는데, 아이들이 바둑은 어렵다고 안두고 알까기만 해서 다 깨졌습니다. 상대가 없으니 둘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는 교민도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제 인사가 혹시 바둑 안두십니까, 였습니다. 취미가 골프이거나 하이킹자전거, 테니스 등 동적인 게 많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둑을 두게 되었습니다. ‘알파고 유’라는 사람입니다.
바둑동호회 임효택 사무총장(왼쪽).
이 사람은 아예 외국인이 안 사는 먼 마을에서 사업을 합니다.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했는데, 바둑도 좀 특이합니다. 양곤에 가면 최고 고수랍니다. 그래서 양곤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성 앞에 알파고를 붙이다니. 그날은 무승부로 끝을 내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바둑 두는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금세 친해집니다. 서로의 성격, 마음을 알게 됩니다. 바둑은 사람의 삶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몇 달 후 알파고 유와 양곤에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시골 고수’들의 방문입니다. 양곤은 여기서 너무 먼 곳이라 자주 갈 수는 없습니다. 양곤에는 바둑동호회가 있습니다. 2년 전에 발족했습니다. 주말에 바둑모임을 가집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바둑으로 서로 하나가 됩니다. 이 동호회를 만든 임효택 사무총장은 삼성전자에서 퇴직, 그후 삼성 멤버들과 미얀마로 진출한 운영자였지만 결국 혼자 남아 사업을 합니다. 미얀마는 돌아가는 회사도 많고, 아직 개발도상국이라 사연도 많습니다. 마치 바둑판 같습니다. 아직은 승부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알파고 유(왼쪽)와 함께.
바둑의 중반전 같은 시기의 미얀마 그리고 한국 사람들. 할 일이 많습니다. 삶은 소박하고 심플하게 살 수도 있고, 큰 그림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바둑과 같습니다. 교만한 시도, 탐욕을 부린 수는 여지없이 쓰라린 고통을 감당해야 합니다. 한 수 한 수의 미래를 집중력을 다해서 읽어야 하고, 최선의 선택을 수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결국 바둑도 삶도 허물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삶과는 달리 바둑은 이기든 지든 상대를 원망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즐겁게 마주하게 됩니다. 오히려 자기를 반성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바둑은 ‘자기를 성찰하는 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며 반드시 필요한 자기 성찰. 그것을 배우는 연습장이라고. 주말인 오늘, 양곤 K65 한식당 2층에는 회원들이 모여 그 돌들의 경쾌한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