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마이크로닷의 부모님이 1998년 충북 제천 낙농가 연쇄 도산 사건의 사기 피의자로 지목돼 논란을 낳았다. 사진=마이크로닷 인스타그램
신 씨의 부인 김 아무개 씨 역시 남편과 뜻을 같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에서 ‘계주’ 노릇을 했다는 그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곗돈을 들고 자취를 감췄다. 이들이 바로 마이크로닷의 부모로 지목된 사건의 피의자들이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기까지 피해는 각양각색이었다. 한 사람에게 소액으로 여러 번에 걸쳐 돈을 빌린 적도 있어 정확한 피해 액수조차 알지 못했다. “피해자들끼리 계산한 결과 총 20억 원 상당으로 추산됐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은행계좌로 송금한 것도 아니고 현금으로 주는 식이어서 돈을 빌려줬다는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다. 차용증조차도 없었다. 피해자들은 서로 집 안에 수저가 몇 벌인지 다 알 정도로 신 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절친한 친구부터 동창, 친인척들은 신 씨를 믿고 돈을 빌려줬다고 말했다. 신 씨 가족이 사라진 뒤에도 그를 믿고 기다린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큰아버지가 피해를 입었다는 한 피해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의 고소 시기가 제각각인 건 그 탓”이라며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신 씨로부터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아는 사이니까 바로 고소를 하기보단 ‘조금 기다려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기다리다 결국 참지 못한 피해자들이 고소를 진행했고, 충북 제천경찰서가 사건을 수사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을 뜬 이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사건은 ‘기소중지’로 청주지검 제천지청에 넘어가 20여 년 동안 문서 창고에 묵혀있어야 했다. 이 긴 시간 동안 피해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거나 생활고로 병마를 얻기도 했다. 당시 피해자들 가운데 신 씨의 정부지원금 연대보증을 해준 집들이 다수였고, 이들은 단순히 신 씨 부부에게 돈을 빌려준 피해자들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렸다고도 전했다.
2016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마이크로닷 부모님의 사기 사건 글을 올려온 한 네티즌이 마이크로닷과 그의 형 산체스에게 SNS 차단된 것을 확인했다. 사진=네이트판
그렇다면 마이크로닷은 이 사건을 전혀 알지 못했다가 이제야 알게 된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먼저 이 사건이 처음 지적된 것이 2015~2016년이라는 점이다. 당시 마이크로닷이 음악전문채널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에 출연하면서 국내 인지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가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자 네이트판, 네이버 뉴스 댓글 등을 통해 “제천에 살고 있는 주민”이라고 밝힌 네티즌들이 ‘1998년 제천 낙농가 연쇄도산사건’의 사기 피의자가 마이크로닷의 부모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고 ‘온라인 풍문’으로 사그라졌다.
그런데 이 네티즌들이 무대를 옮겨 마이크로닷과 산체스의 SNS에 댓글로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제가 직접 나서 이들의 댓글을 삭제하거나 더 이상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차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네이트판에 이 사실을 처음 올렸던 네티즌은 “2016년에 신재민(산체스)이 자기 엄마 사진을 올린 게시물 하나에 내가 댓글을 남기자 사진도 지우고 나를 차단했더라. 그런데 내가 댓글을 남기지 않았던 신재호(마이크로닷)도 나를 차단한 것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이런 까닭에 이들 역시 지속적으로 온라인상에 제기돼 온 신 씨 부부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제천경찰서에 따르면 신 씨 부부는 현재 미체포 지명수배 상태다. 그런데 부인 김 씨가 2015년 8월 중순경, 마이크로닷의 ‘쇼미더머니4’ 본경연을 보기 위해 한국에 문제없이 입국했다는 사실이 본지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지명수배 피의자의 경우 해외 출입국기록이 곧바로 수사기관에 알려지지만, 당시 제천경찰서나 청주지검 제천지청은 김 씨의 입국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난 2015년 8월 산체스가 올린 트위터 글. 사진=트위터
더욱이 신 씨 부부는 거액의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피했다는 피의자로 보기엔 다소 대담한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아들이 출연하는 채널 A 예능프로그램 ‘도시어부’ 뉴질랜드 편에 함께 출연한 것.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대형 한인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신 씨 부부는 지난 3월 16일 ‘도시어부’에 모자이크 없이 출연했다. 이름과 나이는 밝히지 않은 채 ‘마닷(마이크로닷) MOM’ ‘마닷 DAD’로만 소개됐다. 일부 피해자들 가운데는 이 방송을 보고 이들을 알아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후 신 씨 부부는 지난 8~9월 사이 운영하던 한인식당을 판 것으로 확인됐다.
식당은 팔았어도 여전히 신 씨 부부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거주하고 있고, 아들인 마이크로닷과 산체스가 한국에 거주하는 이상 수사는 재개될 수밖에 없다. 이들 부부에게 적용된 혐의인 사기와 배임의 공소시효는 7년이지만 해외 도피한 1998년부터 시효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다만 현 상황에서 수사 재개는 신 씨 부부의 자진입국에 달려있다. 뉴질랜드 정부의 강제 추방이나 범죄인 인도 청구의 경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이유다. 한편 제천경찰서 관계자는 “이들의 자진 귀국을 종용하고 있지만 신병 확보를 위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신 씨 부부는 사건이 공론화되기 시작하자 YTN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권을 만드는 데 2~3주가량 걸린다. 여권을 만드는 대로 한국에 귀국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것”이라며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해결할 것이 있으면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