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성인용품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시장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간담회를 연 것은 국내 시장 잠재력이 크고,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21일 서울 중구 코트야드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에서 열린 성인용품 ‘텐가(TENGA), 한국진출 2주년 간담회’에서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맨 앞)가 모델들과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있다. 고성준 기자
일본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코트야드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한국법인 텐가코리아를 설립한 지 2년 만에 여는 것으로 성인용품 브랜드가 언론을 대상으로 사업 진출 전략을 발표한 것은 업계 최초다.
이날 간담회에는 텐가의 창립자인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가 처음으로 내한해 기업 설립의 배경, 새로운 브랜드 소개, 향후 사업방향 등을 직접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는 “2005년 창업 당시 일반 소비재 상품과 달리 성인용품은 제조사의 정보와 가격, 사용법 등 설명이 제대로 표기돼 있지 않았으며 디자인도 위화감이 드는 제품이 많았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성을 양지로, 누구나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바꿔 나가기’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텐가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텐가는 현재 미국, 중국, 대만, 유럽에 거점을 두고 세계 60개국에 진출해 있다. 올해 7월 기준 누계 출하 수 7000만 개를 돌파해 출하량 기준 세계 1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총 1034만 개의 판매량을 올려, 3초에 1개꼴로 판매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아직까지 성에 대해서 다소 보수적이라 성인용품 시장이 양지로 나오지 못한 채 쉬쉬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텐가코리아 관계자는 “일본에서 ‘텐가’는 성인용품을 넘어 하나의 명사로 통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성인용품의 카테고리에 묶여 음성적이고 숨겨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이러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번 기자간담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기자간담회를 준비하면서도 성인용품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주최 측에서 기자간담회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서울 내 여러 호텔에 문의를 넣었지만 몇몇 호텔은 성인용품 간담회라는 사실에 장소 대여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야노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일본 성인용품 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2093억 엔(약 2조 966억 원)이었다. 이는 한국의 라면시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한국은 2000억 원대로 추정할 뿐 정확한 시장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텐가가 국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신제품을 소개하고 공식 매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까닭은 국내 성인용품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는 “현재 한국인의 성인용품 사용 경험은 18.3%로 낮은 편”이라면서도 “성인용품 판매 매장의 증가, 소비자들의 성인용품에 대한 높은 수용력, 온라인상에서 제품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 등으로 봤을 때 충분히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텐가 매출은 얼마나 될까. 텐가코리아 측은 “아직 기대하는 수준을 거두지 않아 정확한 매출이나 영업이익, 이익률 수치는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는 “2년 전 한국법인 설립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10배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인용품 시장이 점점 확대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 명동, 이태원, 홍대입구 등을 비롯해 부산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성인용품 매장이 세워지고 있다.
한국의 성인용품 시장이 더욱 확대되기 위한 핵심 요건으로 텐가 측은 ‘가격’을 꼽았다.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는 “텐가코리아 한국법인 설립 전에는 우리 제품이 한국에서 일본보다 3배 높은 가격에 판매됐고 정식 진출 후 가격을 많이 낮췄지만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처음 접하는, 구매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대기업 성인용품점 직접 가보니…신분증 검사 필수 국내 대기업의 유통매장에서도 성인용품 코너를 만들었다. 신세계그룹이 지난 6월 선보인 만물상 잡화점 ‘삐에로쑈핑’에서다.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 내에 있는 삐에로쑈핑 매장의 성인숍 입구. 박정훈 기자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에 위치한 삐에로쑈핑 한편에는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이 있다. 가림막을 젖히고 들어서면 성인용품이 진열된 코너가 나온다. 하지만 성인용품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내부 코너에 상주하는 직원들에게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미성년자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누가 봐도 미성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자조차 예외는 없다. 신분증 검사를 받고 매장 안에 들어서니 자위용품과 콘돔을 비롯해 코스튬, 수갑, 밧줄(?) 등 온갖 희한한 용품들이 보인다. 넓지 않은 내부에는 방문객 5~6명이 구경을 하고 있다. 삐에로쑈핑 직원은 “하루 평균 100명 넘게 방문하며 주말에는 400명 이상 들어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부분 성인용품에 대한 호기심에 그냥 구경하러 온 손님이 많다고 한다. 실제 구매하는 손님은 10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 앞서 직원은 “비록 한 명이 사지만 한 번에 많이 사간다”며 “얼마 전에는 한 고객이 50만 원어치를 사가기도 했다”고 귀띔한다. 서울 중구 두타몰도 성인용품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국내 성 인식이 많이 향상됐다고 보고, 과거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성인용품을 양지로 끌어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삐에로쑈핑 내 성인용품 매출에 대해서는 “개별 매출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