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을 주도한 ‘국본’이 결성된 명동향린교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사진=박혜리 기자
대한민국의 아픈 근대사를 간직한 향린교회가 도시재개발 사업에 따라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사실 향린교회 매각 가능성은 수년 전 명동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부터 거론됐고, 교회 자체적으로도 ‘교회재개발 대책위원회’, ‘터전위원회’ 등을 통해 이에 대비해 왔다. 하지만 내부 합의가 쉽지 않았고, 오랜 토론 끝에 지난 5월 13일에서야 교회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공동의회를 통해 향린교회 건물과 용지를 매각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8월 향린교회 당회가 작성한 공고문에 따르면 “5월 13일 우리 교회는 50년 동안 정들었던 교회 부지와 건물을 명동지역 재개발로 인해 매각하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며 “매각 추진 과정에서 노출된 이견으로 인한 갈등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일부 교우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당회는 매우 가슴 아프게 여긴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향린교회가 속한 명동 구역 제2지구 도시환경정비구역의 재개발 시행 예정자는 최근 중구청과 이와 관련해 사전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중구청에 따르면 시행 예정자가 제시한 계획안에는 제2지구는 주변과 유사한 업무시설로 조성되며 일부는 문화공원 부지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행 예정자는 2020년 5월 서울시의 사업승인이 나오는 대로 재개발을 본격 시작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명동 도시환경정비구역은 5지구로 나뉘는데 그동안 사업 시행 예정자가 나타나지 않은 2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개발을 완료했다”며 “아직 공식적으로 중구청에 신청이 들어온 건 아니지만 최근 제2지구 재개발 시행 예정자와 사전 협의를 하고 있다. 주민들과의 협의가 긍정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고, 시행 예정자가 들고 온 계획안도 꽤 세부적인 수준까지 결정되어서 머지않아 정비구역지정 신청서를 제출할 걸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오랜 협의 끝에 결정된 사안인 만큼 향린교회는 교회 매각과 관련한 언급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향린교회 관계자는 “내부 논의 끝에 교회 매각과 관련된 언급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교회의 대형화를 거부하는 교회 원칙에 따라 1993년 향린교회에서 분가한 ‘강남향린교회’도 얼마 전 도심 재개발에 밀려 인근으로 거처를 옮겼다. 내부 논의 끝에 매각을 결정한 향린교회와 달리 강남향린교회는 천막 예배까지 강행하며 끝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재개발을 막지는 못했다.
강남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향린교회는 아주 오랫동안 교인과 운영자들이 협의하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매각을 결정한 거로 알고 있다”며 “우리의 경우 주변 건물이 다 헐려도 끝까지 버텼으나 불가항력이었다. 한 달 반 전쯤 그곳을 나왔는데 사실 그전에도 이미 교회 건물 주변을 다 막아놔서 출입이 불가한 상태였다. 지금은 그 인근인 오금동 쪽으로 교회를 옮긴 상태다”라고 전했다.
건물 자체의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꾸준한 사회참여 활동, 평신도 중심의 목회운영 등으로 많은 교회에 본보기가 되었던 향린교회의 철거 소식에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가 2016년 작성한 ‘2025년 목표 서울특별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는 ‘을지로2가 현대건축자산인 보승빌딩과 향린교회의 외관 일부와 구조를 보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비계획을 유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향후 교회 건물 활용 방안을 결정짓는 데에는 향린교회의 입장이 중요하게 고려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개발 대상지로 선정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광교회’의 경우 ‘건물을 철거하라’는 교회와 ‘건물을 보전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서울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우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역사적 건물 존치 문제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의 입장이 중요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