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스타트업을 방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북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이재명 경기지사가 북측대표단과 교류에 대한 논의를 하던 14~17일,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등을 연이어 만나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회담을 이어나갔다.
마치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이재명 경기지사가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그림으로, 항간에 떠도는 당내 갈등과는 잠시나마 거리가 있어 보였다. 특히 이재명 경기지사는 리종혁 부위원장으로부터 빠른 시일 내 북한을 방문해달라는 초청까지 받으며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탄력을 붙였다는 평을 받았다.
더구나 지난 21일 열린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도 미국은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 남북 철도 도로 연결 착공을 연내 추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비핵화 문제가 남아 있지만 북미 2차 정상회담의 성사가 가까워지면 남북관계 진전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게 되면 접경지인 경기도의 역할은 보다 강화될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이번 아태 평화 국제회의는 UN의 제재가 미치지 않는 농업, 산림, 보건의료, 체육, 관광 분야의 교류를 활성화할 전망이다. 최근 보도가 이어지는 옥류관 고양시 유치설도 이와 같은 골자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수많은 민간 교류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를 이번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회의의 면면을 되짚어봤다.
#최초의 지자체 방문, 11년 만의 산업시설 참관
리종혁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대표단(송명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정책부실장, 조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연구원, 박철룡 조선중앙박물관 관장, 리용남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책임연구원)은 지난 14일 오후 7시 46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초청해 준 아태평화교류협회와 경기도, 고양시를 비롯한 기관에 사의를 표한다”는 짤막한 인사를 남긴 북측대표단은 15일 오전 판교테크노밸리를 방문하며 본격적인 일정에 나섰다.
판교테크노밸리 방문은 2007년 기아자동차 공장 방문 이후 11년 만에 이뤄진 북측 인사의 산업시설 참관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리종혁 부위원장은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하고 비약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주를 만방에 떨치자’는 방명록을 남겼다.
리종혁 부위원장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시험 운행 중인 제로셔틀(자율주행차) 시승에도 나섰다. 리종혁 부위원장은 제로셔틀에 시승한 뒤 소감을 묻는 질문에 “마침 제로셔틀이 시험단계니 우리가 실험동물이 된 셈이죠”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테크노밸리를 둘러본 후 굿모닝하우스에서 가진 오찬에는 파주 장단콩과 쌀, 개성 인삼, 장단 율무와 사과 등 남북한의 접경지역인 ‘장단군’ 식재료로 차려진 ‘평화밥상’이 준비됐다. 장단군은 한국전쟁 이후 파주시 장단면과 황해도 장풍군으로 나뉜 옛 행정구역으로 분단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통한다. 장단군의 재료들은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자문을 받아 명란무만두, 새우관자어선, 돼지안심냉채, 장단사과샐러드, 잡곡밥, 개성인삼향연저육, 장단사과닭찜, 장단콩물타락죽 등의 메뉴로 재탄생했다.
오찬에 앞서 이재명 경기지사는 리종혁 아태위 부위원장에게 남측에서 발간한 이기영 작가의 소설 ‘고향’을 건넸다. 이기영 작가는 월북작가로 리종혁 부위원장의 선친이다. 책을 건네받은 리종혁 부위원장은 짧은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내용을 반복해서 살펴보며 애착을 드러냈다.
오후에 방문한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농기원의 기술력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한편, 남북화해의 뜻을 전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농기원은 북측대표단에 자체 개발한 장미 신품종 ‘레드포켓’과 ‘딥퍼플’로 제작한 꽃다발을 선물하고 경기미로 만든 궁중떡 ‘두텁떡’과 ‘쌀빵’, 식혜를 대접했다.
특히, 농기원 홍보영상을 시청한 간담회에서 북측대표단에겐 제주도 화산암반수인 ‘삼다수’를, 남측엔 백두산 화산암반수인 ‘백산수’를 각각 비치한 것은 경기도의 세심한 배려가 빛난 장면이었다.
# 아시아 태평양 각국에서의 진정한 평화 실현을
16일엔 이번 방남의 주된 목적인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북측대표단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 이화영 평화부지사,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중국, 필리핀, 몽골, 카자흐스탄,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호주 등 해외 9개국 관계자가 참석해 한반도 평화를 넘어 동북아시아 평화경제 공동체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것을 기대하게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례 없던 평화의 마중물이 될 이 자리가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앞당기리라 믿는다”는 환영사를 전했고, 리종혁 부위원장은 답사에서 “일본은 침략과 약탈, 학살 만행을 저지른 전범국가로, 이제라도 조선인 강제납치 연행과 관련한 모든 진상을 철저히 조사 규명해 세상에 공개하는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라고 일본을 강력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진상규명과 유골 봉환 등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함께 대응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동발표문도 채택했다. 발표문에는 ▲강제동원에 대한 전쟁 범죄규정 및 규탄 ▲일제가 강요한 인적, 물적, 정신적 수탈에 대한 진상조사와 실태 고발을 위한 협력 ▲강제동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 조형물 등 평화공원 조성 ▲희생자 유해 발굴 유골 봉환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재단 설립 ▲국제대회 및 토론회, 전시회 방문 등 교류 협력사업 진행 등의 내용이 담겼다.
리종혁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대표단은 국제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는 물론 경기도가 보여준 세심한 배려와 환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화영 평화부지사는 국제대회 이후 진행한 백브리핑에서 “북측 대표단이 이재명 경기지사를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했다”고 밝혔다.
북측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을 수차례 요청할 만큼 이재명 경기지사의 남북교류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그리고 이런 적극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에 훈풍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재명 경기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손을 내민 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 의견을 뒷받침하듯 이재명 경기지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든 평화의 길을 경기도가 다져 나가겠다”며 평화정착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창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