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2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가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힘든 상황임엔 분명하지만 이제까지 그래왔듯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경찰 조사 및 여러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 지사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반격의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변방의 이름 없는 정치인에 불과했던 이재명이 대선 주자로까지 성장한 이유는 특유의 정치력 때문이다. 여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경기지사까지 당선된 인물”이라면서 “마치 게임이 끝난 듯한 분위기지만 아직은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경찰 발표대로 부인 김혜경 씨가 트위터 ‘혜경궁 김씨’ 소유로 확정된다면 법적인 논란은 차치하고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 경우 정치적으론 재기 불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경찰이 경기지사이자 차기 주자인 이재명과 관련된 수사 발표를 할 때 단지 정황 수준의 증거만 갖고 했겠느냐. 검찰로 송치할 땐 보다 더 구체적인 자료를 넘긴 것으로 안다. 이 지사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아마 당혹스러워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유력 대선 후보가 곤경에 빠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여권에선 이 지사를 엄호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으로 도마에 올랐을 때 당 차원은 물론 소속 의원들이 앞 다퉈 수사기관을 비판했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오히려 이 지사를 출당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안민석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내가 이 지사라면 경찰의 판단을 존중한다. 만약 혜경궁 김씨가 내 아내라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했을 것”이라며 결단을 촉구했다.
이는 여권 주류 친문 진영에 퍼져 있는 ‘반 이재명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 지사는 그동안 친문계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대선 경선에서,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과는 경기지사 경선에서 각각 맞붙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감정의 골이 패였고, 친문 의원들 사이에선 ‘이재명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정치권에선 현 정권 핵심부가 ‘이재명 죽이기’에 나설 것이란 얘기가 끊임없이 돌기도 했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지사에게 ‘차기’를 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선과 경기지사 경선에서 상대 후보자(문재인·전해철), 그리고 친문 지지자를 향해 얼마나 험한 말들을 했느냐. 선거가 끝났다고 모든 걸 돌이킬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당의 소중한 자원이긴 하지만 우리와 함께 갈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수사기관 등을 동원해 이 지사를 죽이려 한다는 말은 허무맹랑하다. 이 지사가 뜨기 전부터 벌어진 일이 대부분이고 주변 관리를 하지 못해 생긴 것이다. 이 지사가 점점 주목을 받으면서 문제가 더 커진 것이다.”
이처럼 이 지사를 바라보는 친문계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는 혜경궁 김씨 사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사석에서 만난 친문 의원들과 관계자들은 “더이상 버티다간 망신만 당할 것” “출당이나 도지사직을 논의할 게 아니라 정계 은퇴를 선언해도 부족할 판” “이재명 김혜경 부부 모두 패륜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는 문제적 인물”이라는 강경한 목소리들을 쏟아냈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차라리 야당이나 언론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지사를 공격해줬으면 좋겠는데…”라며 이 지사를 향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이들 중에선 이 지사와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을 거론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 관심을 모은다. 이 지사에 대한 전선을 박 시장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권력을 중심으로 뭉친 친문계가 본격적인 미래권력 사수 작업에 나선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민주당은 이른바 ‘박원순 청문회’로 불리는 채용비리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박 시장이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는 노동계와 손을 잡는 듯한 행보로 친문계의 반감을 샀던 것을 감안하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에 대해 앞서의 한 친문 의원은 “솔직히 말하면 이 지사는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화력은 박 시장에게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어찌됐건 우리로서도 슬슬 차기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폭로 이후 회자되던 ‘안이박김 살생부’가 다시 화제를 모은다. 여권 차기 주자군인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을 차례로 낙마시킨 뒤 친문 핵심 인사를 최종 후보로 옹립한다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친문 의원들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친문 진영의 이러한 움직임이 결국 내부 권력 싸움으로까지 번질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미래권력을 놓고 주류들 간 힘겨루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낙연 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 친문 후보군들의 거취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창일 정치평론가는 “여권 주류의 차기 구도는 문 대통령 인적쇄신, 이해찬 대표와의 관계 설정 등 변수가 수도 없이 많은 고차방정식”이라면서 “어찌됐건 혜경궁 김씨의 ‘나비 효과’가 여권 정치 지형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코너에 몰린 이 지사가 ‘배수진’을 치고 친문계와 일전을 치를 것으로 점친다. 이 지사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도 “우리 편이 아닌 적이라면 싸워서 물리치는 게 이 지사 스타일”이라고 했다. 한때 이 지사는 친문계를 향해 손을 내밀기도 했었다. 10월 16일 이 지사는 “지난해 대선 경선을 되돌아봤을 때 (제가) 싸가지 없고 선을 넘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제 탓”이라며 “지금부터 복구하겠다”고 말했다. 차기를 위해선 친문계와 전략적 화해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지사는 수사 발표 후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라며 친문 진영과의 총력전을 선포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지사가 청와대를 정조준한 것”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친문계 인사들도 발끈했다. 친문 의원은 “우리가 경찰 수사를 좌지우지했다는 것 아니겠느냐.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을 향한 공격으로 읽힌다”라고 했다. 친문 전직 의원 역시 “이 지사가 정치적으로 핍박 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으려 하는 것 같다. 그 발언으로 친문계와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라고 말했다.
비문계에선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우선 여권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한 비문 의원은 “이 지사는 파이터형이다. 그가 마음먹고 덤비면 결국 친문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 눈엔 계파싸움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여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 이 지사를 너무 코너로 몰아선 안 된다”라고 했다. 몇몇 친문 의원들이 속도조절론을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비문 진영 결집이 빨라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의 비문 의원은 “친문계가 독주하고 있던 상황에서 우리는 불만이 있어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문 색깔을 뚜렷이 드러낸 이 지사를 필두로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가 재판에서 무죄를 받거나, 또는 경찰 수사 과정에 부적절한 외압이 있었다는 식의 변수가 등장할 경우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비문 세력과 손을 잡은 이 지사의 대권 가도는 오히려 더 빨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이 지사와 등을 돌린 친문과는 달리 비문계 의원들은 혜경궁 김씨 사건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자주 모여 대책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비문 의원은 “이 지사 건에 대해 당 지도부가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 뜻이 맞는 비문 의원들이 여러 번 모였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아무리 이재명이 미워도 우리가 오랜만에 배출한 경기지사다. 이 지사가 사퇴하고 만약 다시 선거를 치러서 진다면 책임질 수 있느냐. 친문이 말하는 20년 30년 집권론은 ‘그들만의 집권’인 것 같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이재명 도지사직은 어떻게 될까 12월 13일은 이재명 지사에게 운명의 날이다. ‘혜경궁 김씨’를 비롯해 여러 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혜경궁 김씨 이외에도 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등과 관련해 수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최대한 시간을 길게 잡고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아마 13일 가까이에 가서 결론날 것”이라고 귀띔했다. 세간의 관심은 이 지사가 과연 도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쏠린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혜경궁 김씨가 김혜경이라는) 경찰 발표가 사실이라고 전제할 때 이 지사가 선거기간 중 진실을 알고도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라며 “허위사실 유포를 통해 지방선거에서 이 지사가 당선됐기 때문에 당선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자들은 경찰 발표가 사실이더라도 이 지사가 도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유병익 변호사는 “부인의 행위로 남편 도지사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공직선거법 265조와 관련이 있다. 이에 따르면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배우자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 또는 300만 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그 후보자의 당선이 무효화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당선 무효는 유권자 매수 및 매수 유도 또는 기부금을 받는 등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면서 “혜경궁 김씨 사건은 위와 같은 경우와는 다른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되기 때문에 부인에게 징역형이나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도지사직은 유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유 변호사는 “경찰 수사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전제하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과 명예훼손이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형량은 벌금형 정도로 그리 높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이냐 진실한 사실이냐에 따라 죄질이 많이 다르기는 하나 대부분 벌금형이 내려지고 있고,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한 문제로 보일 경우에는 모욕죄로 변경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도 벌금형 규정이 있으므로 벌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나 정치인의 아내에게 벌금액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형량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실관계 및 유무죄에 대한 날선 공방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형량과는 별개로 트위터 계정이 김혜경 씨라는 결론이 나올 경우 이 지사가 도지사직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이 지사가 정치인에겐 치명적인 거짓말 해명으로 일관했다는 이유다. 설령 이 지사가 몰랐다 하더라도 김 씨가 트위터에 남긴 글들 중 부적절하고 과격한 내용이 많아 더이상 정치인으로서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