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불법수술로 인한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10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무자격자 대리수술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공동 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경외과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국정감사를 통해 “국립중앙의료원 정 아무개 과장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한 의료기기 업체의 사장과 직원에게 42건의 대리수술을 시켰다는 내부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당 진술에는 ‘척추성형술을 할 때 한쪽은 정 과장이 하고, 반대쪽은 의료기기 업체 사장이 한다’, ‘(의료기기업체 직원이) 뼈에 스크류를 박기 위해 망치질을 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의료업계 관계자들은 의사들이 의료기기 사용법을 사전에 완벽히 숙지하지 못하다 보니 함께 수술실에 들어간 의료기기 업체 직원에게 대리수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대리수술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의료기기 특성상 계속해서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다 보니 의사들이 이를 사전에 완벽히 숙지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의 의료기기 업체 직원이 대학에서 업무와 관련된 학과를 졸업한 데다 회사 차원에서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교육도 하다 보니 의사보다 기기 사용에 능숙하다”며 “의사들은 치료행위에만 전문가지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 보니 새로운 의료기기가 수술 중 오작동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의사는 “의료기기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복잡해지다 보니 사실 이를 가장 잘 다루는 건 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이다. 또 인체에 이식하는 의료기기의 경우 적게는 수 십만 원에서 수 백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의사가) 새 제품을 개봉해서 연습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의료기기 사용 방법을 배우기 위해 영업사원에게 수술실 참여를 요청하는데 영업사원이 하나 둘 지시하는 것이 대리수술로까지 이어지고 그게 관례화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도 의료기기 업체 직원의 수술실 입실 자체를 금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와 달리 이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일부 다국적 의료기기 회사들은 실제 수술실과 유사한 교육실을 만들고 의사들이 수술 전 의료기기를 충분히 실습해 볼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협회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의사가 의료기기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 이유로 외국에서도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수술실 출입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료기기 업체 직원은 레이저포인터를 이용하는 등 환자의 몸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또 외국의 경우 ‘의료진이 아닌 자가 수술실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식의 지침이나 법률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영업사원들에게 대리수술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기기 업체는 병원과의 계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대리수술 권유를 뿌리치기 힘든 처지라고 토로한다. 하지만 영업을 위해 불법행위에 동참한 의료기기 업체가 피해자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윤일규 의원실 관계자는 “병원과 의료기기 업체의 관계는 갑을관계인 건 사실이다. 또 워낙 업계가 좁아 (대리수술 권유를 거절해) 병원 눈 밖에 나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영업이 힘들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전공의 수련 과정부터 대리수술의 심각성을 교육하고, 대리수술로 환자가 사망할 경우 고의성을 인정해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닌 보다 엄격한 잣대로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리수술에 의한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11월 22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의료사고 피해자 및 유족 등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대리수술을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수술실 내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1월 20일 대리수술 의혹을 받는 파주 소재 병원과 소속 의사를 검찰에 고발하며 대리수술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지만,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상당히 잘못된 접근이다. 만약 근무지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의사가 부담감을 가지고 수술을 하다 보면 부작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에서 1년에 200만 건이 넘는 수술이 진행되는데, 이런 장면이 서버에 저장되어 있으면 해커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수술 장면은 의사들도 섬뜩한데 이런 장면이 유출되면 국민이 받을 충격은 상당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