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탈당에는 비슷한 수순이 존재한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의 최근 행보는 충분히 탈당을 떠올리게끔 한다. 박은숙 기자
#기본형
의원들은 다른 정당으로 옮길 때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명분을 쌓는 데에 집중한다. 먼저 당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 것이 그 시작이다.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 있던 시절 지도부를 향해 “국민은 먹고 사는 문제나 안보, 국방 문제 등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민주당은 이와는 동떨어진 문제에 매몰돼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6년 탈당한 뒤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강길부 무소속 의원도 한국당에 몸담고 있던 시절 홍준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최근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당 대표가 보여준 언행은 실망을 넘어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 사퇴를 촉구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한 달여간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이어오다가 홍 전 대표가 “조용히 나가라”고 요구하고, 강 의원이 탈당하며 상황은 종료됐다. 현재 강 의원은 민주당 입당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탈당을 고려하는 의원들은 당 지도부에 불만을 제기한 뒤 당 의원총회, 의원모임 등 공식행사 참여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당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6월 지방선거 패배를 책임지기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런 그가 한동안 상임위원회 회의에만 참석할 뿐, 당과 관련된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탈당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유 의원이 지난 10월 바른미래당 지역위원장 공모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며 예상 밖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그동안의 행보를 미뤄봤을 때 그가 탈당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와 각을 진 뒤, 또는 거리를 둔 뒤 의원들은 현수막 작업에 들어간다. 지역구에 내거는 현수막에서 자당의 로고와 상징색을 제거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이 정당과는 관련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 탈당설은 이미 제기가 돼 왔었는데, 그가 추석연휴 동안 지역구에 내건 현수막이 그의 탈당설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 현수막은 민주평화당 상징색인 초록색이 아니었고 당 로고도 없었다. 오히려 민주당을 연상케 하는 파란색이었다. 김 의원은 아직 당을 떠나지 않았지만, 정치권은 그의 탈당이 임박했다고 예상한다.
정작 이렇게 바닥 작업을 하지만 막상 탈당 의사를 물으면 답변을 피하기도 한다. 기자들이 “탈당할 것이냐”, “○○당에 입당할 것이냐”라고 물으면 “지금으로선 아니다”라면서도 “내년엔 모르지만…”이라고 여지를 두거나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라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이언주 의원도 이 수순을 밟고 있다. 이 의원은 자신에게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라고 경고한 손학규 당 대표에게 “대표는 반문(반문재인)인가, 친문(친문재인)인가”라고 맞서며 각을 세우기 시작했고, 22일 당 의원총회에 불참했다. 최근 그의 지역구에 걸린 현수막에서는 색깔과 ‘바른미래당’이 빠졌고, 탈당 여부를 묻는 질문엔 단호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죄와 벌’ 형
당을 해치는 자들이 받는 일종의 ‘형벌’이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2016년 ‘친인척 채용’ 논란을 빚었다. 스스로 탈당하지 않으면 당 입장에선 곤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 윤리위원회가 어떤 징계수위를 내놓든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은 서 의원에게 탈당을 압박했고, 그 결과 서 의원은 탈당했다. 그는 “저는 오늘 제 생명과도 같은 민주당에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당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양해를 부탁드리며 분골쇄신하겠다. 철저히 반성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서 의원 탈당은 좋은 선례로 회자되고 있다.
6월 지방선거 직전, ‘이부망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정태옥 한국당 의원 또한 막말의 책임을 지고 탈당했다. 그 과정은 ‘초스피드’였다. 6월 10일 이부망천 발언을 했고, 다른 당은 물론 한국당 내부에서도 “경박한 잘못된 발언”이라는 높은 비판이 제기되자 정 의원은 고심에 빠졌다. 당 지도부는 11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정 의원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려 했으나, 정 의원은 이보다 하루 전인 10일 저녁 자진탈당계를 제출했다.
#패거리 형
당이 분당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형태다. 자신의 탈당을 위해 명분을 쌓고 대중들로부터 수용받기 위해 메시지를 던지는 점은 ‘기본형’과 비슷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까운 사례로 바른정당(구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왔다. 탈당 시점에서 30명 안팎의 의원들이 대거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고, 몇몇 의원들이 입장을 번복하며 최종적으로 29명의 의원들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을 차렸다.
바른정당은 “국정농단 세력과 연대는 없다”고 새누리당과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19대 대선을 준비했다. 하지만 유승민 대통령 후보의 낙선과 함께 실패를 맛본 바른정당 의원들 중 대부분은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갔다. 바른정당은 의원 9명으로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고, 결국 국민의당과 통합해 지금의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2016년 국민의당 의원들의 새정치민주연합 집단 탈당도 같은 패거리 형이다. 이들 역시 ‘친문(친문재인) 패권’을 내세우며 지도부에 강하게 반발했고 탈당과 창당, 합당을 거쳐 지금의 바른미래당이 됐다.
#야망 형
바른미래당 소속이던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다. 그런데 그가 바른미래당 소속일 때보다 무소속일 때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여론조사가 공개되자 그의 탈당 고민이 시작됐다. 당시 기자가 원 지사 측에 탈당에 대한 의사를 묻자 관계자는 “당선 유불리만으로 (탈당 여부를) 결정하진 않을 것이다. 선거 때문에 그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곧 조용히 탈당했다. 그리고 당선됐다.
#간보기 형
황영철 한국당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으로 옮겼지만, 이후 대선을 앞두고 홍준표 당시 한국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그렇게 한국당으로 입당을 시도했으나 갑작스레 “저의 부족한 판단으로 혼선과 실망 끼쳐드린 점을 사과드린다”며 바른정당 탈당계 제출을 보류했다. 그리고 다시 같은 당의 유승민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이후 대선이 끝나고 난 6개월 뒤, 황 의원은 다시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