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에는 ‘검찰 수사’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도였다면 지금은 전직 대법관 및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 찬반부터 재판 관여 법관 탄핵 여부까지, 판사들마다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다. 그런 가운데 전에 없었던 대법원장에 대한 화염병 테러까지 발생하면서 법원은 한층 더 뒤숭숭하다. ‘무너진 사법 신뢰’에 대한 책임론 후폭풍도 불가피해 보인다. 삼권분립의 한 축, 사법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11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수사 초반,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재판부의 잇따른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수사에 차질을 빚었던 검찰. 하지만 임종헌 전 차장을 구속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사전 구속영장을 동시에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해 영장이 청구될 경우, 이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법원 행정처의 실무를 담당했던 임종헌 전 차장은 재판 관여 관련 의혹들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두 전직 대법관이 이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하는 형태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은 11월 25일 박병대 전 대법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불러 조사했다. 19일 첫 조사 이후 네 번째 검찰 조사였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23, 24일 연속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검찰은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한 박 전 대법관을 상대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위 확인 행정소송 개입 여부 등을 추궁했고,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으로 근무한 고 전 대법관을 상대로는 부산고법 판사가 연루된 부산지역 건설업자 뇌물사건 재판 개입,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 소송 개입 등을 확인했다.
두 전직 대법관은 검찰 조사에서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식으로 지시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법원행정처 차장(임종헌)으로 이어지는 지시 체계에 확신을 가지고 두 전직 대법관 영장 청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두 전직 대법관이 혐의를 부인한 탓에, 영장 청구 가능성이 더더욱 무게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환을 위해서는 ‘지시를 받아서 했다’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줄 진술이 필요하고 이를 일부 받아 내는 데도 성공했다”며 “상급자와 실행자 모두 서로 다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이지 않냐. 전직 대법관에 대한 영장은 청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각이 되도 크게 부담스러울 것은 없다”고 분위기를 전달했다.
# “판사 수만큼 생각이 다르다”
모든 판사들의 꿈인 대법관까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처지에 놓이자 법원 내 분위기는 말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법원 관계자는 “수사 초반 영장전담 재판부가 수사 확대를 잘 막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등 청와대의 일침 이후 완전히 흐름을 뺏겼고 그 뒤 법원이 맥없이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법원은 더욱 첨예하게 분열되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철저하게 검찰 시각 중심의 기사들이 언론에 나오면서, 사건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판사들이 검찰 브리핑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법관대표회의에서 관련된 판사들에 대한 탄핵 안건이 통과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실제 법관대표회의는 11월 19일 법관대표 총 119명 중 114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판독립 침해 등 행위에 대한 헌법적 확인 필요성에 관한 선언 의안’을 현장 발의해 논의했다. 그리고 유효투표 105명 중 찬성 53명과 반대 43명, 기권 9명 등 1표차로 의안을 의결했다. 동료 판사를 대상으로 한 탄핵 관련 안건이 법원 안에서 발의 및 논의되고, 가결까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결정에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전산망에 탄핵소추 검토 의결은 정당성을 갖지 못한 정치적인 행위라고 비판하며 이를 의결한 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1월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재판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법관의 탄핵 소추를 판사들이 선제적으로 국회에 촉구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매일매일 법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브리핑 및 소환을 할 때마다 판사들 생각은 더 나뉘고 있다”며 “최근 법관대표회의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탄핵을 결정했는데, 지금 법원은 판사들 숫자만큼 사안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라고 보면 된다”고 우려했다.
자연스레 판사들 서로가 생각을 숨기는 분위기다. 또 다른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배석 판사들에게 절대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다”며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을 토대로 내 생각을 설명했다가 ‘적폐’처럼 몰리는 것이 싫어서 누가 물어봐도 입을 다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 흔들리는 법원…절체절명의 위기
그런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을 태운 출근차량이 화염병에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조계는 ‘무너지는 사법 신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11월 27일 오전 9시 10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던 70대 남성 남 아무개 씨가 김명수 대법원장 승용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화염병에 붙은 불이 승용차 조수석 앞바퀴에 옮아붙었으나, 다행히 김 대법원장은 다치지 않았다.
그동안 재판결과를 두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례는 많았지만 대법원장을 상대로 직접 물리력 행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추락한 사법부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