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경기도 동호인 바둑리그에서 우승한 군포시팀
[일요신문] 그녀는 4년 전 이별을 선언했던 바둑과 다시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 바둑이 재결합하도록 이어준 대회가 경기도 동호인 바둑리그였다. 23세 그녀는 “상처만 남았던 바둑, 이번 리그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바둑이 즐거웠어요”라고 고백(?)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원에 다니며 배웠던 바둑이었지만,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을 보며 승부는 조금씩 상처가 되었다. 바둑 외에도 다양한 관심사가 생기면서 마음을 접고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바둑세계를 떠난 지 4년이나 흘렀는데 느닷없이 대학 선배와 교수님이 대회 참가를 권유했다.
이젠 바둑돌 잡기가 어색하고, 7단과 8단을 오가던 인터넷 바둑사이트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머릿속에 가물가물한 정도지만, 마음속 한 조각 남은 아쉬움과 아련한 갈증이 다시 바둑판 앞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2018 경기도 동호인 바둑리그에 여자선수로 참가한 윤지수 선수(시흥시)는 “모든 분이 열심히 둬서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정말 진지하게 뒀다. 4달 동안 대회에 참가하면서 바둑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났다. 바둑만 공부했던 시절에는 승패가 그대로 상처가 되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즐겁게 바둑을 뒀다. 다만 예전 실력이 안 나와 아쉬움이 남는다. 대회를 마련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바둑협회 소속 14개 시군이 참가한 경기도 동호인 바둑리그.
‘아마바둑대회’란 이름을 단 바둑대회가 1년 내내 끊이지 않고 전국 각 지역에서 열리지만, 진짜 아마추어를 위한 대회는 드물다. 따로 생업을 가지고 살면서 가끔 반상이 그리웠던 숨은 고수들은 프로실력 이무기들이 나오는 아마대회에선 예선 1회전조차 버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경기도 바둑인은 발상을 바꿨다. 자신만의 바둑 무대를 가지고 있는 고수는 빼고 진짜 동네고수들이 즐길 수 있는 대회를 만들자는 생각. 이런 의도가 경기도 동호인 시 · 군 바둑리그를 탄생시켰다. 각 시 · 군 협회에서 남자 4명, 여자 1명으로 팀을 만들어 출전하는데 여자선수는 연구생 출신은 나올 수 없다. 남자선수도 내셔널리그 선수는 참가하지 못한다. 시도 협회 회장 등 임원도 출전할 수 있지만, 인터넷 기력 5단 이하로 제한을 뒀다.
동호인리그에서 다시 바둑돌을 잡은 윤지수 씨.
학창 시절 잠깐 바둑을 접했다가 일상에 치여 바둑세계와 멀어졌던 젊은이, 늦깎이로 배운 바둑에 한창 승부욕이 불타오른 중년, 함께 둘 친구가 없어 바둑판과 멀어졌던 백발의 기원 3급. 이렇게 바둑을 두고 싶어도 무대가 없었던 왕년의 고수들이 지난 8월부터 매달 한 번씩 모여 한을 풀었다.
2018 경기도 동호인 시 · 군 바둑리그는 11월 25일 화성시 푸르미르 호텔에서 마지막 13라운드를 치르고 올해 일정을 마쳤다. 이번 리그도 경기도와 경기도 체육회가 후원하고, 경기도 바둑협회가 주최 · 주관했다. 지역바둑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대회를 열어 13개 시군이 참가했고, 올해는 14개 팀이 나왔다. 경기도 바둑협회 박종오 사무국장은 “내년은 25개 지역까지 팀을 더 모아 수준별로 1, 2부 리그를 진행할 계획이다. 4개월 동안 고생한 선수들과 각 시군 바둑협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각 팀 참가비는 거의 대부분 상금으로 지급했다. 상금은 우승팀 700만 원, 준우승팀 500만 원, 3위 두 팀은 300만 원씩, 5위 4개 팀은 200만 원씩, 9위 8개 팀은 150만 원씩이다. 3위까진 상금 외에 상장과 상패도 주어졌다.
올해 개인 다승상에선 광주시 김기유 선수가 12승으로 남자 1위, 용인시 유선영 선수가 9승 무패로 여자 1위에 올랐다. 군포시는 승점 50점으로 우승, 화성시가 승점 47점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공동 3위는 부천시와 의정부시가 차지했다. 경기도 바둑협회 정봉수 회장은 폐막사에서 “바둑이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는 길이 무엇인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경기도부터 힘을 합쳐 나아가자”라고 말했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