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으로 상장을 추진했던 기업들은 잇달아 기업가치 하락 여파에 따른 상장 철회를 정했고 코스닥 대장주 기업의 코스피 이전 상장 움직임까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이전 상장은 시장규모 축소, 투자자 기반 위축을 불러 다시 우량기업의 코스닥시장 신규 진입 자체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1월까지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64개사(스펙상장 제외)로 지난 8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이 전망한 105개사에 크게 미달했다. 금융위가 코스닥시장 신규 상장을 늘려 혁신성장 시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된다. 코스닥시장 대어로 주목받았던 카카오게임즈는 물론 인카금융서비스, KMH신라레저 등 11개 기업이 금융위의 신규 상장 지지에도 불구하고 기업공개(IPO) 추진을 철회했다. 올해 코스닥시장 신규 상장은 지난해 79개사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거래소에서 한 관계자가 주식시황판을 보고 있다. 최준필 기자
금융위는 증시 부진이 신규 상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설명하지만 시장에선 상장요건 개편이 코스닥시장을 향한 부정성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금융위가 상장요건 기준을 완화하면서 개인투자자 중심의 투기적 시장이란 인식이 커졌고 코스닥시장 상장 이점이 줄었다는 것. 앞서 금융위는 자본잠식요건 폐지에 더해 세전이익, 자기자본요건을 선택요건으로 단순화한 바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전문가는 “상장요건 완화가 ‘기술 중심 시장’이라는 코스닥시장의 경쟁력을 잃게 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코스닥시장 상장요건 완화는 국내 기업들의 상장 기회 확대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개인투자자 중심의 투기적 시장이라는 평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면서 “상장을 원하는 기업이 투자금 확보와 함께 기업 인지도 개선을 원하는 상황에서 상장기업의 질적 수준을 하락시키는 정책은 코스닥시장의 저평가만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위는 당초 코스닥시장이 미국의 나스닥(NASDAQ)같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길 원했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캐나다의 TSXV 같은 하위시장의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다. 일부 전문가는 코스닥 대장기업들의 코스피 이전 움직임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즉 투기적 시장이란 평가가 코스닥시장 내 대장주들의 탈출로 이어진다는 것.
올해 2월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셀트리온이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데 이어 최근 시가총액 1조 2000억 원 규모의 더블유게임즈가 코스피로 이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셀트리온에 이어 셀트리온헬스케어도 소액주주 중심의 주주운동연대가 발족,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주주운동연대는 지난 11월 25일 출범식에서 “코스닥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이전 상장을 추진한 41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76%(31개사)가 이전 상장 이유로 ‘기업가치 평가 개선’을 꼽았다. ‘기업 인지도 제고’와 ‘코스닥 침체 및 부정적 평판’은 각각 44%, 32%를 차지했다. 다수 기업이 코스닥시장 자체의 부정성 때문에 코스피로 이전한 셈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이어지면서 일각에선 코스닥시장이 ‘시장 활력 악순환’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를 내린다. 금융위 바람과 달리 신규 상장은 늘지 않는 상태에서 오히려 대장기업들이 이전함으로써 코스닥시장 전체 시가총액과 지수가 하락해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2100인 데 비해 코스닥지수가 아직도 700선에 턱걸이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코스닥시장의 이 같은 분위기는 또 기관투자자들의 탈출과 외면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전체 코스닥시장 침체를 촉진하고 있다. 기관투자자는 중소·벤처·기술기업을 발굴, 분석, 평가해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주체임에도 지난 10월 말 이후부터 지난 11월 중순까지 코스닥시장에서 1조 원가량을 빼냈다. 수급을 받쳐줄 매수 주체가 사라진 셈이다. 기관들은 코스닥시장의 비중을 줄이고 대형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투자자 중심의 투기적 시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이 미국 나스닥과 같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면 우량한 상장기업이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머물러야 할 근거를 제공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코스닥 상장 기업 중 절반, 공모가에도 못 미쳤다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한 이른바 새내기 상장사의 주가가 대부분 좋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62개 기업(지난 11월 29일 신규 상장한 2개사 제외) 중 31곳(50%)이 공모가를 밑돌았다. 코스닥 신규 상장 종목들의 평균 수익률은 10.87%였지만 공모가를 하회한 종목의 수익률은 마이너스(–)29.62%였다. 또 공모가를 넘어선 신규 상장사들 중 3분의 1은 전체 평균 수익률에 미치지 못했다. 공모가 상회 업체 30곳 중 10곳의 수익률은 3.77%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금융위가 코스닥시장 상장요건을 개편한 4월 이후 수익률이 낮게 나타났다. 상장요건 개편 이전인 지난 1분기 13개 신규 상장사 중 공모가에 미달한 곳은 4개사에 그쳤지만, 지난 3분기 신규 상장한 20개사 중 12개사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10월 증시 폭락 상황에서 계속사업이익요건과 자본잠식요건을 심사받지 않은 상장사는 증시 변동성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주가 하락기에는 통상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등을 통해 주가 부양에 나서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기업이 다수”라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