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을 나서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양진호 회장을 둘러싼 ‘웹하드 카르텔’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양 회장은 이제껏 정치계와 법조계의 인맥을 관리하느라 큰 공을 들여왔다. 단순 관리를 넘어 철저한 기록이 뒷받침된 관리였다. 이 관계자는 11월 28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양 회장은 평소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인맥 형성에 온 힘을 기울였다. 좁게는 지역 기반의 권력자였고 넓게는 멀리 보며 법조계와 정치계를 좌우 없이 잘 ‘관리’해 왔다. 내가 봤던 주요 인사와의 만남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양 회장은 최측근에게 ‘관리’를 담당시켰다. 정확한 ‘관리 내용’을 장부 형태로 정리해 보관했다. 이 장부의 행방은 지금 묘연한 상태”라고 말했다.
양진호 회장이 이제껏 보인 수집벽과 저장벽 때문에 ‘양진호 장부’가 있다는 이 관계자의 증언은 힘을 얻는다. 양 회장은 자신의 칼 수집벽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고스란히 남긴 바 있었다. 단검부터 사무라이 도검까지 여러 종류의 칼을 각각 수집했다. 유형의 물건만 수집한 게 아니었다. 양 회장은 자신의 회사 직원에게 채팅 앱을 깔게 한 뒤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직원의 통화와 문자 내역 6만여 건을 몰래 수집하기도 했다. 양 회장 논란이 수면 위로 나온 건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 때문이었다. 폭행 장면을 촬영해 모두 저장하는 등 ‘수집’과 ‘저장’에 집착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양진호 회장을 둘러싸고 나왔던 한 교수의 폭로는 이 관계자의 말에 신빙성을 더한다. 양 회장에게 폭행 당했다고 주장한 한 현직 교수는 11월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2013년 12월 2일 양 회장이 집단 폭행 및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3시간에 걸친 폭행이 잦아들자 양 회장 동생 양진서, 양진서 친구 등 5명은 신체 수색을 시작했다. 코트랑 옷을 주머니를 뒤져서 전화기를 빼앗고 휴대전화의 잠금 장치를 풀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때렸다”고 했다.
폭행 상황 설명과 더불어 나온 피해 교수의 폭로에는 양 회장의 집요한 수집벽 성향이 잘 드러났다. 그는 “양 회장이 통화 내역, 문자, 카카오톡, 사진첩 등을 모두 확인했다. 특히 연락처를 보면서 내 가족 사항을 파악했다. 나한테 볼펜을 주면서 가족들 이름을 다 적으라고 강요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전화기에 저장된 이름과 맞는지 일일이 대조했다”고 말했다.
피해 교수는 자신의 피해를 수사 기관에 알렸다. 이 과정에서 양진호 회장과 거대 권력의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사건 발생 4년 뒤인 2017년 6월 피해 교수는 양 회장을 포함 자신을 폭행한 사람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허나 폭행에 가담한 양 회장의 동생만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양 회장을 비롯 가해자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피해 교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이 탄원으로 성남지청은 4월 서울고등검찰청의 ‘재기 수사명령’을 받았다. 허나 반 년 가까이 지나도록 양 회장 수사 결과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형사 사건의 1차 처리는 보통 3개월이 걸린다.
그는 ”집단 폭행 사건이 있은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돈과 당시의 옷가지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혹시라도 양진호의 지문이 묻어 있다면 수사의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며 “고소장에 증거물을 보관하고 있으니 필요한 경우 제출하겠다고 분명히 기재했지만 신고를 했을 때 경찰이 증거물을 제출하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녹음 파일도 있다고 했지만 제출하라는 말도 없었다. 심지어 협박에 관한 혐의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피고소인 조사에서부터 검찰 조사에서까지 제대로 수사가 안 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너무 많다. 양 회장은 단 한차례 조사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양 회장과 법조계의 유착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양진호 회장은 현재 경찰과 검찰, 법원으로 이어지는 각 단계별로 맞춤형 전관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피해 교수의 대리인 신민영 변호사는 “양 회장이 이번 재판에 경찰 출신 변호사를 여럿 선임한 거로 안다. 경찰 단계에서는 경찰 전관을, 검찰이면 검찰 전관을, 법원가면 아마 법원 출신 전관을 3번에 걸쳐서 환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아마 그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여기에 양진호 회장과 국정농단 사태의 서막을 열었던 네이처 리퍼블릭 게이트의 핵심 인사 최유정 전 변호사의 연결 고리가 하나씩 드러나자 이런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2015년 양 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건 최 전 변호사였다고 나타났다. 정운호 전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 관련 게이트 때 판사 출신 최 전 변호사는 재판부 로비에 쓰겠다며 부당 수임료 100억 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돼 10월 25일 대법원에서 징역 5년6월 추징금 43억 125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양 회장의 회사 한 직원은 “최유정 변호사 같은 경우에는 ‘재판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이런 거 내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럼 실제로 무죄가 나온다’고 했다”고 전했다.
장부의 향방은 현재 묘연한 상태다. 장부가 있다고 주장하는 업계 관계자는 “장부를 누가 가지고 있든 사건화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른바 ‘관리’ 받은 인사가 좌우를 망라하고 여러 기관을 넘나들어 누구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경찰 내부 관계자는 “지금 장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제까지 사이버수사대와 광역수사대를 시켜 양 회장의 웹하드 카르텔과 직원 폭행 및 강요를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 관련 의혹도 일부 드러났다. 이 수사는 다른 부서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비자금 관련 수사도 하는 중”이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