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짜뉴스 및 SNS 찌라시 유포자 색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1월 초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 대책 마련을 지시한 직후 급조된 분위기다. 심지어 ‘1인 당 가짜뉴스 1건을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가 경찰 해당 부서 내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을 필두로, 각 부처마다 가짜뉴스 관련 대책 마련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경찰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골프장 동영상’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안 모두 SNS를 타고 유포, 전파된다는 점과 허위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보니 경찰은 이를 같은 맥락에 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골프장 동영상’부터,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 등의 찌라시는 경찰 수사에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경찰 등 사정당국 내부에서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가짜뉴스’의 영역이 판단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 수사를 하기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앓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 골프장 동영상 수사 본격화
경찰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골프장 동영상’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SNS 등에 유포된 영상은 모두 3건. 문제의 영상들은 국내 유명 증권사 전 부사장이 같은 증권사를 다녔던 여성 애널리스트와 골프장에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의 ‘찌라시’와 함께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을 통해 확산됐다. 남성은 물론, 한 여성의 경우 신상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영상 속 남성이라는 소문이 돈 전 부사장 이 아무개 씨는 11월 19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이튿날인 20일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해당 영상들 속 여성이라고 찌라시가 돌았던 A 씨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해당 영상의 당사자라고 소문을 낸 사람을 찾아달라”며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고소장은 서울경찰청에 제출됐지만, 수사는 앞선 남성 고소 건을 담당하고 있는 영등포서에서 맡기로 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해당 영상의 남성은 내가 아니”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11월 26일 출입기자단과의 정례간담회에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동영상 유포자를) 추적해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경찰은 최초 유포자에게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할 방침이다.
# 계속되는 찌라시 수사…경찰, 19건 수사 중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한 경찰이 수사 중인 악성 루머 사건은 모두 19건이다. 이 가운데에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된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 씨 찌라시는 물론,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와 블랙핑크 멤버 제니 간 염문설이 담긴 연예인 찌라시도 포함됐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9월 12일부터 가짜뉴스 특별단속을 시작해 10월 20일 기준으로 55건을 단속했다”며 “이 가운데 36건에 대해서는 삭제·차단 요청을 했고 19건은 내사·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민갑룡 경찰청장.
경찰 관계자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 담긴 찌라시를 중심으로, SNS에서 빠르게 유포되는 가짜뉴스도 고소 고발이 들어온 건에 대해 함께 수사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수사 건수가 많은 점은 경찰들이 힘들어 하는 대목이다. 보통 최초 유포자를 잡기 위해서는 10단계가 넘는 유포자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한 단계를 확인할 때마다 짧게는 3~4일, 길게는 1주일 넘게 시간이 걸리기 때문.
앞선 경찰 관계자는 “제한된 수사 인력으로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19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과 마포경찰서, 영등포경찰서 등에서 나눠서 수사를 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연예인 찌라시 그렇다 치고 정권 비판만 가짜뉴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 관련 비방글로 모두 고소·고발에 따라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짜뉴스에 대한 기준부터 모호하다는 우려도 경찰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5년 넘게 온라인 상 찌라시 유포 사건을 전담해 온 경찰 관계자는 “악의적인 연예인 관련 찌라시는 광고 등 연예인의 경제적인 이익 피해가 상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선을 그은 뒤 “그런데 정부는 다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악의적인 거짓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씨 관련 악의적인 소문이 돌지 않았냐. 그런데 이번 정부만 유독 예민하게 이를 경찰 수사까지 하라고 몰아붙인다”고 비판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 특위’를 구성한 뒤 지난 15일 구글코리아 본사를 방문해 유튜브 콘텐츠 104건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정부를 비판하는 콘텐츠에 강경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경찰이 적발했다는 가짜뉴스와 민주당이 삭제를 요청한 유튜브 콘텐츠들이 정부 비판하는 내용뿐이라는 점이다. 실제 경찰이 밝힌 가짜뉴스 수사 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추진은 기습 남침을 도우려는 것이다” “북한에 쌀을 퍼줘서 쌀값이 올랐다” 등이다. 여당이 삭제를 요청한 가짜뉴스 역시 통계청장 코드 인사논란, 청와대 업무추진비 부당사용 폭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 등 정부를 향한 악의적인 비판 내용들뿐이다.
법조계에서조차도 공권력을 동원해 가짜뉴스를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는 누구 것’이냐는 답변에 대해 정호영 당시 BBK 특별검사팀은 ‘MB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니까 이제는 ‘다스는 MB 것’이 되지 않았냐”며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도 정권마다 바뀌는데 가짜뉴스라고 단속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 변호사 역시 “유언비어는 십중팔구 허위지만, 그 중 한두 개가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며 “악의적인 유언비어는 물론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가짜뉴스 유포자를 처벌하려 하는 점, 이 맥락에 연예인 찌라시를 끼워 넣어 함께 수사하는 점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