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부탁이나 요청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또는 거절을 해도 내내 마음이 불편하거나 혹시 잘못한 건 아닐까 끙끙대는 경우도 많다. 설령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말이다(혹여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로 거절했을 경우에는 예외다). 그렇다면 ‘아니오’라고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네’라고 말할 경우에는 정말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질까.
무조건적인 ‘예스’보다는 현명하게 ‘노’를 외칠 때 삶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이 역시 그렇지 않다. 마지못해 ‘네’라고 말은 했지만 그 후에는 거절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부탁을 해온 상대방도, 그리고 이를 거절하지 못한 나 자신도 원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왜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걸까.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은 ‘아니오’라는 짧은 한마디가 왜 이토록 힘든지를 연구해왔다.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고 있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의견이 같다. 바로 ‘적당히 거리를 두는 능력이 있어야 삶의 질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즉, 무조건적인 ‘예스’보다는 현명하게 ‘노’를 외칠 때 삶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가 보도한 ‘아니오’의 기술에 대해 살펴봤다.
우리는 매일 수시로 ‘네’ ‘아니오’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는 편인가. 무조건적으로 ‘네’를 외치는 편인가, 아니면 ‘아니오’를 외치는 편인가.
독일의 웨딩 사진작가인 안드레 라이스너(42)는 얼마전 스스로에게 아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다. 변화의 시작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됐다. 천차만별의 다양한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직업인 만큼 그는 늘 고객과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었다. ‘너무 비싸다’ ‘스케줄을 조정해달라’ 등 요구만 늘어놓는 고객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이번 고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례한 요구를 하던 한 고객이 다시 한 번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순간 거부감이 일었다. 하지만 곧 “네. 물론이죠”라고 대답하는 자신을 보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곧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불쾌한 고객보다는 거절을 하지 못한 자신에게 더욱 더 화가 났다.
이처럼 ‘아니오’라고 명확하게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실 많다. ‘포쿠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자녀, 부모, 배우자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한다. 또한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직장 상사나 동료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하이델베르크의 소통전문가인 모니카 라데키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스스로 금기시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라이스너는 이런 금기를 깼다. 이틀 동안 고민에 빠졌던 그는 만일 계약을 취소할 경우, 수입이 줄어들 것이고 곧 구입할 생각이었던 비싼 카메라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정을 내렸다. 수화기를 들고 확실하지만 상냥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계약을 취소해야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더이상 라이스너는 무조건 ‘네’라고 말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아니오’라고 말하기 전에 늘 “나에게 거절해도 된다는 내면의 허락을 받는다”면서 “이로 인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훨씬 더 삶이 나아졌다”며 흡족해 했다.
이렇게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둘 때 되레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말하는 과학자들은 때문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기브 앤 테이크’의 저자이자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때때로 인생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도 말했다.
그랜트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경계를 설정하고,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근사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하면 활력이 솟고 자신감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랜트 교수는 스스로가 산증인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과거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강연이나 조언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적절히 거절하는 방법을 찾은 후에는 오히려 삶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사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절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거절함으로써 혹시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사이가 그렇다. ‘포쿠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 정서적으로 애착이 깊은 사이일수록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는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며, 바로 이런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못 내리면서 우유부단해지는 것이다.
전 광고카피라이터이자 저널리스트인 알렉산드라 라인바르트(45)는 이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저서 ‘인생의 똥차들과 쿨하게 이별하는 법’에서 그는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에피소드들을 소개했다. 과거 그는 친구, 배우자, 동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모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늘 시간에 쫓겨 열심히 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익은 뒷전으로 밀어 두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할수록 점차 불만은 쌓여갔다. 결국 참다못한 그는 하나씩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서서히 자신을 해방시켰다. 가령 부탁만 하는 자기중심적인 친구들과는 절교를 선언했고,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삶이 달라졌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점은 분명 있다고 ‘포쿠스’는 말했다. 거절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례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거절할 경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이로 인해 결국에는 관계에 금이 간다. 때문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세련된 방법이란 서로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데 있다. 거절은 가능한 정중하고 세밀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친구가 이번 주말에 이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당신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주말에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포쿠스’는 먼저 자신에게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가족들과 쉬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친구에게 솔직하게 ‘노’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표현을 통해서 친구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뜻을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령 “다음 주에 같이 가구를 보러 가자”라고 제안한다면 당신이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거절 의사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면, 거절당한 사람은 대부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관계 전문가들은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건설적으로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즉시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비논리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세련되게 ‘노’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먼저 ‘예스’라고 말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에게 ‘무엇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가?’ ‘무엇을 안 해도 될까?’라고 질문하면서 자신에게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저 ‘나는 모든 걸 원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만일 직장에서도 늘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자녀에게도 완벽한 부모가 되길 원하고, 배우자에게 잘하면서 친구 관계도 잘 유지하고, 게다가 골프도 잘 치려고 한다면 아마 머지않아 번아웃(탈진)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이처럼 모든 선택사항을 다 원할 경우 결국 ‘네’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기업고문이자 작가인 페터 크로이츠(52)는 “오늘날 우리는 딜레마가 아니라 멀티레마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선택의 역설’에 대해 말하는 크로이츠는 선택지가 너무 많을 경우 오히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충고했다. 많은 제안을 비교하는 데는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며, 종종 다른 선택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며 불안에 빠지기도 한다.
크로이츠는 자신의 내면에서 중요한 ‘예스’를 발견했고, 이를 실천했다. 과거 국제경영컨설팅회사의 경영이사와 비엔나대학의 조교수를 겸하고 있었던 그는 어느 날 사회적 명성과 안정적이었던 두 직장을 모두 그만두었다. 그는 “모든 것이 훌륭했지만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조금 더 자기 결정적으로 살면서 일을 하기를 원했다. 더 많은 자유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는 ‘예스’를 외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주변의 기대와 의무 때문에 마음 깊이 묻어둔 채 미뤄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가족이나 친구 관계는 서서히 병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컨설턴트인 레나테 다임러(68)는 “우리는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진정한 자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착됐던 패턴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다임러는 “궤도 변경은 자신에 대한 인내심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다. 그래야 자기 결정 능력이 향상된다. 의사결정에 방해가 되는 내면의 감정, 가령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경우에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건전한 논쟁을 할 수 없다.
긍정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행복과 만족감은 외부 및 물질적 환경보다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통제력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유를 확보하고, 이로써 행복과 만족감도 느낄 수 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유명한 문장인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처럼 삶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포쿠스’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에 더 익숙해지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아니오’라고 말하는 세련된 기술 어떤 요구나 부탁을 ‘잘’ 거절하려면 의사소통 기술과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잘’ 거절하면 상대와의 관계도 나빠지지 않는다. 1) 시간차를 둔다 누군가 부탁을 해오면 먼저 잘 생각해보겠다거나, 아니면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말한다. 민감한 상황일 경우에는 더욱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은 가능한 침착한 상태에서 내린다.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에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2) 포기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정말 그 부탁 때문에 다음 주말 내내 일할 생각이 있는가? 아니면 요양원에 있는 숙모를 방문하기 위해 주말에 예약해둔 공연을 포기해도 괜찮은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선순위와 목표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라. 3) 공감하면서 거절한다 당신의 ‘노’라는 결정은 아마 상대에게는 불리한 것일 것이다. 당신이 상대의 입장이 됐다고 가정해보라. 어떤 말로 거절을 하거나 취소할지를 생각해본다. 이해심이나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도울 수 없어서 유감이고, 왜 도울 수 없는지 이유를 설명하라. 4) 관계를 확신시킨다 비록 거절은 했지만 당신이 그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도록 한다. 믿을 수 있는 친구, 아끼는 동료라는 뜻을 확실하게 전하라. 5) 명확하게 말한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명확한 뜻을 전하는 것이 좋다. “나는 원래 휴일에는 일을 안 한다”라고 말하면 상대에게 협상할 여지가 없고,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래도 상대가 고집을 부린다면 동일한 말로 거절 의사를 반복한다. 6) 선한 제안을 한다 당신이 상대방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거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가령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맡아주거나 다른 해결책을 제안해주면 이미 충분히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는 뜻을 전할 수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