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혜경궁 김씨가 쓴 트윗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의 특혜채용 의혹을 거론한 것이 법적으로 처벌 받으려면 특혜채용 의혹이 허위임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 지사 논란의 판이 커지면서 더불어민주당 당내 갈등으로 불이 번지는 모양새다. 친문 지지자들은 ‘이 지사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이 지사를 당에서 축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현재 당 내에서는 크게 반영이 안되고 있다. 당의 가장 큰 결정권을 쥔 당 대표가 이 지사에 관한 언급 자체를 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더불어민주당의 미래를 생각하는 당원토론회’에 참석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는 ‘혜경궁 김씨’ ‘형님강제입원’ 등 논란에 휩싸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 “내용을 잘 모른다. 기자간담회에서 말을 다 했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이 대표는 이날 “이승만·전두환·박정희 독재까지 쭉 내려오고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했지만, 바로 정권을 뺏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우리 정책을 다 도루묵으로 만드는 경험을 했다”면서 “복지 정책들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20년 이상 집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표는 “10년 집권해봤자 무너뜨리는 데 불과 3·4년밖에 안 걸린다. 금강산도 개성공단도 복지정책도 무너졌다”며 “우리가 내후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2022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는 준비를 지금부터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30년간 정치를 했는데,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내년에 잘 준비해서 국민께 신망을 받아 대선까지 압승하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 논란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대신 내년 총선, 대선에 관한 이야기만 한 셈이다.
이를 두고 이해찬 대표도 ‘찢 묻었다’는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찢 묻었다’는 이 지사가 형수에게 했다는 욕설과 관련지어 만든 단어다. 흔히 찢 묻었다는 이 지사와 친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일각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은 곧바로 제명하면서 이 지사를 감싸주고 있다. 그 핵심이 이해찬 대표’라거나, ‘이 대표가 약점 잡힌 것이라도 있냐’며 이 대표 비토 의견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화영 경기부지사가 이재명 지사와 이해찬 대표를 이어주는 ‘핵심고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의혹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게 민주당 내부의 목소리다. 이재명 지사를 이해찬 대표가 두둔할 이유가 없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 대표는 이 지사 문제에 강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지사에 이 대표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이 지사 문제를 넘어 국정운영, 당 지지율 등 여러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라며 “이 지사 개인 지지율이 꽤 높게 나온다. 이 지사 지지자들은 민주당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민주당 지지율의 일부를 이 지사가 가져가면 민주당 지지율은 30%대 이하로 주저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최근 20년 집권을 더 강조하는 이유도 이 지사 개인보다는 더 큰 판을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2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를 받아 지난 26~28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를 보면, 민주당 지지율은 9주째 하락세를 맞으며 37.6%로 집계됐다. 약 1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취임 후 처음으로 50%대가 깨졌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즉 이 상황에서 이 지사 논란까지 키웠을 때 득될 게 없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화영 부지사와의 관계도 사실이 아닌 측면이 있다고 한다. 이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부지사가 생각만큼 밀착된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빠지고 있고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해찬 대표 스탠스는 이런 현실적인 측면에서의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라며 “이재명 지사를 지지하는 비문은 이 지사가 제명되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지사 얘기 섣불리 했다가 갈라치기되는 현상도 나올 수 있고 그 와중에 지지율이 더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측면의 설명도 있다. 바로 프레임 전쟁이다. 이재명 지사는 본인이 점점 피해자 혹은 거대권력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찰이 혜경궁 김씨 트위터 소유주는 이 지사 아내라고 결론 내리자 이 지사는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선택했다”고 ‘이재명 죽이기’ 차원에서 설명했다. 7월 성남지역 조직폭력배 국제마피아파 연루설이 나왔을 때도 “거대 기득권 ‘그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종북·패륜·불륜몰이에 이어 조폭몰이로 치닫는다”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이 상황에서 이 지사를 이 대표가 제명하는 게 ‘피해자’, ‘희생양’ 프레임을 굳히는 데 도움만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 신율 교수는 “예를 들면 경찰에 이어 검찰도, 재판에서도 ‘이재명이 거짓말했다’고 나온다고 하더라도 프레임에서 ‘피해자’라는 게 먹히면 진실 여부와 상관 없어질 수도 있다. 오히려 제명을 당하면 이 지사에게 좋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문준용 이슈를 꺼내 든 것도 전선을 뚜렷하게 만들고 지금의 싸움을 주류 대 비주류, 가해자 대 피해자, 친문과 비문의 싸움이란 프레임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해찬 대표는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사결과 발표뿐만 아니라 재판까지 침묵은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재판결과까지 기다리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이 이 지사와 선을 긋고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예찬 시사평론가는 “반드시 제명이 아니더라도 검찰이 기소하면 당원권 정지를 적용한다거나 선 탈당 후 해명이 되면 그때 복당 요청 등 다양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며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이 지사가 검찰에 기소되거나 1심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비난을 덜 받을 수 있다. 현재 이해찬 대표 스탠스로 비춰봤을 때 법원에서 형이 확정돼야 제명할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을 이 지사 때문으로 해석하는 인사들은 이 지사가 기소나 유죄가 됐을 때 ‘빨리 이 지사 문제를 처리하지 않아 그동안 지지율이나 깎아 먹고, 이 대표는 뭐했나’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 대표가 이 지사의 1심 선고가 확정돼야 이 지사 제명에 나설지 그 전에 ‘잠재적 폭탄’으로 인식하고 제거에 나설지 선택의 기로에 있는 건 분명한 셈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