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창업 기업에 대한 지원 중단도 문제지만 유통센터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빈 사무실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점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센터에는 수십 개의 공실이 있는데 기업을 입주시키지도, 활용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공유재산 낭비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힘든 상황이다.
더구나 신기술창업센터 외에도 서울시는 초기창업자에게 제공하던 창업 공간의 운영을 종료하고, 신규 입주사 모집도 중단하는 등 예비창업자를 비롯한 기업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신기술창업센터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창업보육과 경영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 기관이다. 한때 50여 기업이 입주해 꿈을 키워 나가던 이곳은 지금 10여 개 남짓한 업체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들도 머지않아 사무실을 비워야 할 처지다.
신기술창업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산업진흥원(SBA)이다. 최근 입주 기업들은 서울산업진흥원으로부터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사무실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신기술창업센터를 없애고 유통센터를 만들기 위해서 이 같은 통보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업체는 “우리 회사는 입주 당시 3년, 2년, 1년 이렇게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더 이상 계약 연장 심사가 없다면서 이번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무실 이전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공공기관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회사를 내쫓아도 되는 건지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신기술창업센터는 그동안 저렴한 임대료로 사무실을 제공해오며 좋은 평판을 쌓아 왔다. 서울의 높은 임대료를 감안하면 이 같은 정책은 초기 창업기업이나 성장 과정에 있는 기업을 지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 중 하나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수차례 서울시의 높은 임대료 부담을 거론하며, 창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 지원하겠다는 발언을 해 온 바 있다.
하지만 서울산업진흥원의 신기술창업센터 폐쇄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격이라,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일요신문’이 지난 27일 서울산업진흥원 유통센터를 찾아 신기술창업센터의 유통센터 전환 이유를 묻자 유통센터 운영팀 직원은 “담당 직원들이 모두 외근 중이라 답해줄 수 없다”고 했다. 28일 통화에서는 내용을 알고 있지만 “대답해도 되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했다.
또 다른 직원은 “창업센터를 유통센터로 변경하는데 서울시와 협의가 없었을 리가 없다”고 자신했지만, 이들의 말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경제진흥본부 경제정책과에 확인한 결과 “신기술창업센터의 운영은 서울산업진흥원의 ‘고유사무’로 창업센터를 유통센터로 전환하는 결정을 서울시와 협의한 바 없다”고 답변했다.
서울시는 “위탁사무에 대해서는 지도, 감독을 하지만 고유사무의 경우 협의할 의무가 없어 의견교환이나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유통센터 전환 책임에 선을 그었다.
서울산업진흥원이 상급기관인 서울시와 협의 없이 신기술창업센터를 없애고 유통센터를 확대하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세웠다는 지적이다.
29일 서울산업진흥원은 “서울시 중소기업을 위한 ‘유통 지원사업 활성화의 일환’으로 2016년도부터 신기술창업센터에서 서울유통센터로의 기능 전환을 추진 중에 있다”는 회신을 보냈다.
이어 3차례 입주사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고 타 센터로의 이전을 희망하는 경우 이전 비용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전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타 센터로의 이전은 높은 입주 경쟁률로 인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서울시가 유통 지원을 위해 창업 지원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산업진흥원이 서울시로부터 수탁해 운영하고 있는 구로스타트업센터도 지난 6월을 끝으로 더 이상 입주기업을 모집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 6월 폐쇄한 장년창업지원센터와 청년창업플러스센터 용산, 강남 청년창업센터, 강북 청년창업센터의 연이은 운영 종료도 이 같은 맥락이라는 반응이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불과 며칠 전 베이징 창업도시인 중관촌을 방문해 “서울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글로벌한 창업도시가 가능하다”며 “우리나라 창업자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창업지원을 강조했다.
하지만 박 시장의 포부와는 달리 서울시의 창업 지원 축소와 정책 후퇴는 창업자의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사고 있다.
김창의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