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11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최근 청와대 주요 관심사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9월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다 지난 29일은 50%대마저 깨졌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민주당 지지율 역시 비슷한 추이를 보이며 30% 후반으로 떨어졌다. 특히 여권 핵심 지지층이라고 할 20대 지지율 하락은 문 대통령에게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김정일 답방과 같은 북한 이슈를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현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친문 핵심부가 얼마 전 여야 합의로 성사된 채용비리 국정조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일각에선 ‘박원순 청문회’라고도 불리지만 자유한국당의 속내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 친문 의원은 “자유한국당은 현 정권 핵심 과제인 일자리 정책을 파헤치기 위해 국조를 밀어붙였던 것이다. 만에 하나, 여기서 비리 등 문제가 터질 경우 지지율은 급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 내부와 친문 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야당의 국정조사 수용 요구를 받아들이자 불만을 쏟아냈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여러 채널을 통해 청와대 뜻을 전달했는 데도 불구하고 국정조사 합의가 이뤄져 유감”이라면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달릴 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씁쓸하다. 대통령 지지율 덕에 6월 지방선거와 재보궐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했던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당은 청와대와의 불협화음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예산안 통과와 민생 법안 처리 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국정조사를 받아들였다는 논리다. 실제 국정조사 합의 후 당에선 이런 뜻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이 청와대 눈치를 살피지 않고 제 목소리를 냈다는 부분에 있어서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더 이상 ‘청와대 거수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이해찬 대표의 입지가 오히려 더 공고해질 것이란 분석도 여기서 비롯된다.
당청은 ‘혜경궁 김씨’ 사건에서도 온도차가 확연하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핵심 친문 인사들 스탠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이 지사의 출당을 주장하며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여권의 다른 계파 의원들이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해찬 대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 지사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라는 오해까지 나올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평소 이 대표가 거침없는 직설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이처럼 정권 초와는 사뭇 달라진 당청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주류 세력 중심축인 친문과 친노 사이에 얽히고설킨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사실 친문과 친노는 결이 다르다. 친노 인사지만 비문이 있고, 친문이지만 친노와는 상관없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2016년 문 대통령이 영입해 배지를 단 친문 의원들이 후자에 속한다. 친문과 친노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목표로 두 차례 대선에서 손을 잡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딪힌 적도 많았다. 지난 대선 경선 때 친노 주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경선에 나오자 친문과 친노가 서로 난타전을 벌였던 장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친문과 친노 진영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 역시 지금까지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것은 아니라고 전해진다.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이해찬)와 민정수석·비서실장(문재인) 등에 발탁되며 핵심 요직을 맡긴 했지만 양측 사이엔 오히려 견제 심리가 더 컸다고 한다. 당시 친문 세력은 없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신주류에 대해 이해찬 대표가 이끄는 원조 친노 인사들이 불만을 털어놨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친노 인사의 말이다.
“노무현 대선 캠프 핵심은 이해찬 이광재 안희정 등 핵심 친노들이 속한 금강팀이었다. 나중에 문재인 이호철의 부산팀도 급부상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문재인 등이 청와대로 들어오자 친노 사이에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 ‘개국공신도 아닌데 믿을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 돌면서 비토 분위기가 흘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친구 문재인’을 워낙 신뢰했기 때문에 이는 표출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핵심 친노와는 껄끄러운 것까진 아니더라도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 때 청와대가 이해찬 대표 체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파다하게 돌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핵심 친문들로선 소통이 쉽지 않은 이해찬 대표보단 친문계인 김진표 의원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를 놓고 이해찬 대표 측이나 친노 중에선 아직도 불쾌해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친노 쪽에선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어줬는데 어떻게 김진표를 밀 수 있느냐고 그러더라”면서 “솔직히 그들이 주도했던 2012년 대선에선 졌다. 2016년 대선은 문 대통령과 친문이 이끌었다. 굳이 논공행상을 따지더라도 친노에게 돌아갈 전리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런 분위기들을 종합해보면 친문과 친노가 불협화음을 내는 게 그리 낯선 장면은 아니다. 현 정권에서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이해찬 대표 체제가 출범할 때 시간문제일 뿐,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채용비리 국정조사, 혜경궁 김씨 사건 등이 터지면서 양측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다음 총선 공천을 대비한 주도권 싸움 채비를 갖춰야 하는 시기다. 여기서 밀리는 계파는 차기 대선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친문과 친노 간 불협화음 뒤엔 또 다른 정치 방정식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수적으로 봤을 때 친문은 친노보다 우위에 있다. ‘일요신문’은 민주당 현역 의원 3명에게 의원들 성향을 분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50명 안팎이 친문으로 분류됐다. 이들 중에선 문 대통령이 영입한 이른바 ‘문재인 키즈’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범친문으로 넓히면 그 수는 60명으로까지 늘어난다. 전체 의석수(129석) 중 절반 가까이가 친문이라는 얘기다. 반면, 이해찬 대표 지지세력으로 꼽히는 친노계는 최대 20명이었다.
하지만 싸움은 머릿수로만 가지곤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실전이 벌어질 경우 친노의 패배를 단정하긴 힘들어 보인다. 우선 ‘일당백’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이해찬 대표가 친노를 이끌고 있다는 게 변수다. 이 대표가 다음 총선 공천을 통해 세 확장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친노와 친문은 공천을 놓고 일전을 겨룰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반발이 당내에 여전하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8월 전당대회 때 청와대의 김진표 지원설이 불거지자 오히려 이해찬 대표에게로 표가 쏠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 민주당 중진급 의원은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어느 정권에서나 중반기로 접어들면 집안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다음 대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이는 결국 대통령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을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자기 정치를 하고 있으니 무슨 국정 운영이 되겠느냐. 벌써부터 민주당이 대선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총선 공천을 두고 어수선하다. 그 중심엔 대통령을 도와야 할 친문과 친노 인사들이 있다. 아직 공개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물밑에선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안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국민들에게 외면 받은 근본적인 원인이 계파 싸움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