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의원.
특유의 치고 빠지는 반반 행보의 특징은 ‘전략적 모호성’이다. 반반 전략을 쓰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보수와 진보보다는 ‘중도’, 기존 여야보다는 ‘제3지대’에 가깝다. 명분은 있다. 기성 정치권 심판이다. 2012년 대선 직전 혜성같이 등장한 안 전 의원은 ‘진보냐, 보수냐’라는 질문에 “나는 상식파”라며 중도화 전략을 내세운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대선 전 귀국한 자리에서 3대 과제로 ‘정치교체·대통합·패권청산’을 꼽았다. 기성 정치와 각을 세우는 차별화 전략이다. 역대 반반 행보를 보였던 후보 대다수가 ‘외부수혈’ 인사였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통한 중도화 전략은 어느 정도 유효했다.
이 전략은 종종 ‘제3의 길’로 치환됐다.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꼈던 20% 안팎의 무당파는 역대 선거 때마다 제3의 후보를 찾아다녔다. 민주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정주영 국민당 후보를 시작으로, 1997년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2002년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2007년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등이 제3지대를 형성했다. 가깝게는 2012년 대선판을 흔들었던 안 전 의원도 여당도 야당도 아닌 무소속 지대에서 ‘새 정치’를 추구했었다.
명분 못지않은 실리도 있다. 모든 세력과의 ‘적대적 공생관계’ 형성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지지율의 지지대’로 작용한다. 판단을 유보한 보수·진보와 여야 지지층도 초반에는 강한 비토를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양다리 걸치기’ 작전이 일정 정도 지지율의 추가 하락을 막는다는 의미다. 안 전 의원을 비롯해 반 전 총장, 고 전 총리 등이 새로운 바람을 타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차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반반 전략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내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여권 중진 의원은 “중도화는 선거 전략상 필패 카드”라며 “선거 때마다 전국적 세력도 당내 조직도 없는 이들이 제3지대 깃발을 들지만, 중도에서 좌우를 포섭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좌우 포지션을 정한 뒤 중도 확장 전략을 ‘보완재’로 쓸 수는 있지만, 그 반대는 기존 선거문법에 역행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그랬다. 이들의 등장은 창대했지만, 그 과정은 허허벌판 그 자체였다. 기성 정당을 거부하고 제3지대 깃발을 꽂은 후보들은 역대 대선에서 모두 실패했다. 기성 정치권에 몸담은 후보들은 당 주류의 ‘불쏘시개’에 불과했다. 마지막 동아줄이던 지지율마저 하락하면, 기다리는 것은 날개 없는 추락뿐이다. 한때 ‘박근혜 대세론’을 격침했던 안 전 의원도 20% 안팎에서 지지율이 정체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야권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밀렸다. 아마추어 리더십 논란은 덤이었다.
반 전 총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2월 1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정치교체의 명분이 실종됐다”며 “정치교체 이루고 국가 통합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말했다. 지지율 정체 후 보수진영에서조차 ‘반기문 대망론’을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인식하자, 불명예 퇴진을 선택했다는 게 정설이다. ‘고건 대망론’이 무너진 과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참여정부 말기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레임덕(권력누수)에 시달리자, 비노(비노무현)계에선 ‘고건 대망론’을 띄웠다. 당 주류 일각에서도 ‘고건 카드’로 대선 정국을 돌파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저격수로 나서며 ‘고건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노 전 대통령은 “고건 씨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여권 대선후보 불가론의 시그널을 보냈다. 고 전 총리는 “자기부정”이라고 반발했지만, 여권 내 ‘고건 대망론’은 일시에 꺼졌다.
반반 잔혹사 데자뷔는 연말·연초 정국에서도 여의도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친박계 구원투수로 거론되는 황교안 전 총리도 반반 프레임에 갇혀있다. 황 전 총리는 지난 9월 20일 친박계인 유기준 윤상현 김진태 박대출 정용기 윤상직 의원 등과 서울 마포에서 한 오찬회동에서 내년 초 예정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해 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에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며 즉답을 피한 황 전 총리는 두 달여간 간보기 정치만 했다. 황 전 총리와 자주 만나는 유기준 의원은 11월 27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전에는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확률로 0%였다면 지금은 40∼45%”라고 밝혔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중도화 전략을 쓴 역대 반반 후보들과는 달리, 정치권에 발도 들여놓기 전 진한 ‘보수 색깔’이 덧씌워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가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인 황 전 총리가 한국당에 입당하는 것은 우리에게 땡큐”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친박계 내부에선 황 전 총리의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관계자는 “정치적 상처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야당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황 전 총리가 나서봐야 제2의 김병준이 될 것”이라며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사로 통하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친박계와 황교안 조합은) 함께 망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황 전 총리가 당권 대신 대권에 직행할 것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황교안 딜레마’도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일부 친박계의 황교안 카드는 방패막이 활용을 위한 전략적 카드에 가깝다. 비박(비박근혜)계와 혈전이 불가피한 당권 경쟁에서 새 인물을 앞세워 ‘친박 재건’을 위한 불쏘시개로 쓰려는 포석이다. 정우택 의원 등 일부 친박계는 “황 전 총리는 검증이 안 됐다”며 옹립에 소극적이다. 현재 친박계 내부에선 ‘내년 초 전당대회→6월 보수대통합 정계개편’ 등 단계적 정계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권 탈환에 나선 친박계의 구상이 어그러진다면, 황교안 카드의 유효기간은 최대 1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현실정치 경험이 없는 국무총리 출신들이 살벌한 정치현장에서 살아남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보수진영이 내년 상반기 중 정계개편을 위한 전당대회를 추진할 방침을 정함에 따라 보수대연합의 한 축인 안 전 의원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 전 의원이 특유의 간 보기 정치 탓에 정치 재개 후 반반 행보와 화법을 벗어날지는 미지수다. 이 경우 안 전 대표는 보수대연합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잃은 채 종속변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두 번(2012년·2017년) 대선과 지방선거(2014년·2018년), 한 번의 총선(2012년) 등을 거치면서 안철수 효과는 소위 약발을 다했다.
그를 따르던 참모진과 지지층도 대거 떠났다. 전국 단위 선거만 다섯 차례나 치렀지만, 그의 리더십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은 “향후 그의 역할은 있겠지만, 구심점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바미스럽다’(이도저도 아닌 바른미래당의 정체성을 꼬집는 말) 비판에 직면한 손학규 대표도 입만 열면 “개혁보수부터 개혁진보까지 아우를 것”이라고 말한다. 바른미래당 두 축이 반반 잔혹사에 노출된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
폐암 이겨내고 측근은 의원직 승계 여의도 전략가 김한길에 쏠리는 시선 “김한길을 주목하라.” 최근 여의도 정가에선 ‘판 메이커’ 김한길 전 의원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김 전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불출마를 선언한 뒤 정치권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정계개편 때마다 ‘복귀설’에 나돌았지만, 그는 여의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두 사건으로 김 전 의원이 이름이 여의도에 오르내렸다. 하나는 제27대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한 오세정 전 바른미래당 의원의 후임으로 임재훈 전 국민의당 선거관리위원회 조직 사무부총장이 의원직을 승계한 것이다. 임 의원은 대표적인 김한길계로 꼽힌다. 1995년 새천년국민회의에서 당 홍보와 조직, 직능부장을 맡았던 임 의원은 이후 민주당 지방자치국장, 새정치민주연합 사무부총장, 국민의당 대표 특보단장 등을 거쳐 바른미래당 비례대표로 원내에 입성했다. 20대 총선 당시 안 전 의원 측근으로 분류되던 신용현 오세정 박선숙 채이배 의원 등이 비례대표 선순위를 받은 것과는 달리, 김한길계인 임 의원은 12번을 받는 데 그쳤다. 야권 한 관계자는 “임 의원의 원내 진입으로, 김 전 의원의 보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사건은 김 전 의원의 폐암 투병 극복기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신약치료 등에 매진했다. 최근 예능프로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대로 가면 완치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향후 정계개편에 따라 ‘김한길 역할론’이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김 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가다. 1997년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꾀한 국민의정부의 개국공신으로 불렸다. 2000년 제37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소속 의원 20여 명과 함께 중도개혁통합신당 추진에 나섰다. 친노(친노무현)계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것도 이때다. 2012년 대선 후 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그는 안철수 전 의원과 손을 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뒤 비노(비노무현)계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당 안팎에선 “김 전 의원이 킹메이커를 넘어 킹에 도전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이후 20대 총선 직전 안철수 탈당에 힘을 보태면서 국민의당 창당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통합 등 보수 양당 체제에 균열이 발생한다면, 김 전 의원이 전매특허인 ‘중도 중심’의 헤쳐 모여가 정국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