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은행지주가 내년부터 치열한 몸집 경쟁을 예고한 상황에서 롯데 금융계열은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카드는 은행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비은행 부문이다. 롯데카드의 규모가 크지 않지만 향방에 따라 업계 순위에 변화를 몰고 올 만한 규모다. 손해보험은 현재 KB금융만 영위하고 있는 업종이다. 부채성 계약이 큰 생명보험사보다 자본부담이 적고, 손익도 좋은 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금융계열사 매각을 결정하면서 지배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 후 지난 10월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신 회장은 이 같은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국내 일본 계열 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지배한다면 이들은 롯데지주 아래로 편입될 수 없다. 금융부문 철수로 일본 계열 회사들도 롯데지주 울타리에 들어올 수 있다. 이 같은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롯데지주의 자금력이다.
호텔롯데는 한·일 롯데그룹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고리다. 호텔롯데만 롯데지주가 지배할 수 있으면 기존 롯데지주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도 훨씬 높아진다. 기업공개(IPO)가 중요하다. 현재 지배주주인 일본롯데 임직원에게는 지분 매각을 통한 상장 차익 기회를 주고, 대신 롯데지주가 지배력을 갖는 방법이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핵심 사업인 면세점 부문의 실적을 살펴 상장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호텔롯데 지분을 확보하려면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하다. 상장 후 시가총액을 10조 원으로 가정하면 최소 30% 지분 확보에 3조 원이 필요하다. 호텔롯데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 후 투자부문을 롯데지주가 가져오더라도 액수가 조금 줄어들 뿐 1조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롯데지주는 지난 10월 롯데케미칼 지분을 인수하면서 대부분의 자금을 차입했다. 돈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롯데손해보험은 일본계 주주가 많아 매각으로 롯데지주에 유입될 현금은 없다. 롯데카드 매각 대금은 모두 롯데지주 몫이다. 롯데카드 매각가치 극대화를 위해 롯데손보를 묶어 파는 게 롯데지주에 유리하다.
상장사인 삼성카드 시가총액은 순자산의 56%가량이다. 통상 인수합병 시장에서 비상장사 기업가치는 10년치 세전이익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같은 방식을 모두 적용하면 롯데카드 기업가치는 1조 1000억 원 안팎이다. 롯데손보는 상장사여서 현 주가에 경영권 웃돈을 붙이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한편 롯데캐피탈은 롯데지주가 지분 26.5%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 매각 계획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롯데캐피탈 최대주주는 호텔롯데(39.37%)다.
현재 금융권에서 롯데카드 인수후보로 내년 출범할 우리금융지주가 꼽힌다. 우리카드는 시중은행 계열 카드사 가운데 가장 작다. 우리금융이 출범하면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 우리은행은 중대형 증권사를 인수 후보 1순위로 잡고 있다. 카드는 규제 강화로 수익 전망이 어둡고, 보험은 IFRS17 회계기준 적용에 따른 자본 확충 부담이 크다.
일각에서는 KB금융도 거론한다. 롯데카드를 KB카드와 합치면 신한카드를 제치고 카드부문 1위가 될 수 있다. 롯데손보까지 인수해 KB손보와 합병하면 손보업계에서도 현대해상과 DB손해보험을 제치고 삼성화재에 이은 2위를 굳힐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순위경쟁을 위해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할 이유는 적다.
다만 롯데는 유통계열사 위주로 고객 기반이 다져져 있어 은행계 카드사와 고객군이 전혀 다르다. 은행계 카드사가 인수할 경우 고객 기반 확장 등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 롯데카드가 신용카드 시장에서는 중하위권이지만 선불카드 시장에서 영향력은 상당하다. 자회사인 이비카드와 손자회사인 마이비는 교통카드 등으로 주로 쓰이는 선불카드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각각 26.3%, 11.4%다. 롯데에서 계열사 물량 보장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다면 인수 후보자들에게 꽤 매력적일 수는 있다.
최열희 언론인